사람을 한 가지 이미지로 규정하는 것, 음악의 의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 본인의 미래에 대해 앞서 단언하는 것을 경계하는 한희정의 예전 인터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자신을 애써 교정하지 않는 태도, ‘자연스러움’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 그녀에게나, 나에게나, 이 기사를 읽을 독자에게나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 장소에서 그녀를 대면하니 덜컥 겁이 났다. 인터뷰야말로 가장 부자연스러운 대화 아닌가.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질문할 내용을 정리하고, 대화의 흐름을 예측해야 하는 이 자리가 그녀에게 달가울 리 없을 텐데. 인터뷰를 좋아하시느냐는 바보 같은 질문에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당연한 대답을 했다.
“누가 좋아해요?” 허겁지겁 상황을 수습하며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그래도 인터뷰하다 보면 가끔 좋은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있지 않나요?
아뇨, 그런 적은 없고요. 이상한 질문은 많았어요.
어떤 게 있었나요? 준비한 질문지에 있으면 좀 빼두게요.
예를 들면, 제 작업물을 전혀 접해 보지 않고 질문을 하는 분들이 간혹 있었어요. 제 인터뷰지만 제 작업물에 대한 인터뷰이기도 하잖아요. 최소한 앨범은 한 번 듣고 그걸 기반으로 얘기를 나눠야 할 텐데 대충 검색해서 질문거리를 갖고 오니 대화가 안 되는 거죠.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제가 변명하려는 건 아니고, 정말 예전부터 앨범 열심히 들었던 팬이에요. 이번 인터뷰 준비하면서 생각났는데, 1집 활동하실 때 제가 블로그에 짧게 한희정씨를 찬양하는 글도 썼었거든요. 아, 그걸 여기서 인증할 수도 없고….
(웃음) 네, 고맙습니다.
지난 앨범의 ‘흙’ 이후, 팬들이 ‘홍대 머신’이라고 할 정도로 춤 기대를 많이 하는데 이번 앨범 타이틀도 ‘Slow Dance’예요. 근데 노래를 들어보니까 ‘Dance’보다는 ‘Slow’에 방점이 찍혀 있어요.
진정한 춤꾼은 느린 음악에서 더 빛을 발해요. 빠른 음악은 누구나 춤을 출 수 있잖아요. 사실 춤만이 아니라 뭐든 그래요. 제가 정말 느린 사람인데, 느리다고 남에게 핀잔을 들은 적은 있어도 제가 불편했던 적은 없거든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느린 게 너무 좋아요. 자전거를 탈 때도 주위를 살피면서 엄청 느리게 타요. 뭐, 속도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테니 억지로 ‘느리게 사세요! 느린 게 좋아요!’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요.
전 앨범에서 ‘순전한 사랑 노래’와 ‘오래오래’가 인상적이었어요. 분명 가사의 소재는 사랑 얘기, 키우는 고양이 얘긴데 거기서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더라고요.
제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뭔가 더 훼손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순전한 사랑 노래’ 같은 경우는 가사 완성하는 데 거의 반년이 걸렸고요. 구체적으로 얘기해서 귀를 기울일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등을 돌릴 사람들도 있거든요.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도 등 돌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돌이킬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누군가는 이 노래를 진짜 ‘순전한 사랑 노래’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오래오래’는 고양이랑 같이 살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얘기예요. 살아 있다는 건 지겹고 눈물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같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자고.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이런 얘기 민망해서 못 했을 텐데.(웃음)
가사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곡과 잘 어울려야죠. 어떤 곡이 있으면 거기 딱 들어맞는 텍스트가 있어요. ‘너의 다큐멘트’ 같은 곡은 그걸 못 찾아서 몇 년 동안 썼어요. 이 가사 붙여보고, 한동안 내버려뒀다가 다른 가사 붙여보고. 메시지는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보다는 사운드와 이미지가 중요해요. 발음했을 때 곡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그 소리가 어떤 이미지를 그려내는지.
지난 ‘흙’에 이어 이번 타이틀 곡 ‘Slow Dance’의 뮤직비디오도 찍으셨는데 뮤지션들에게 뮤직비디오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만약 다른 분께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했다면 그분은 찍는 내내 제 음악에 영상을 맞출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뮤직비디오를 만들면, 노래 만든 사람이 나니까 오히려 노래의 틀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래도 소속사에서는 더 잘 만드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사실 주변에선 “희정씨, 이젠 곡도 (다른 작곡가에게) 좀 받아서 만들면 더 잘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어요.(웃음) 작년에 제가 ‘내일’이라는 〈미생〉OST를 불렀을 때, 많은분들이 좋아해주셨고 그 노래를 통해서 절 알게 된 분들도 많아요. 근데 제가 만든 노래는 아니거든요.
가끔 생각해요. 내 곡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나? 음원 차트 1위 곡이 있으면, 절 아는 몇몇만 좋아하는 노래도 있을 수 있잖아요. 전문가가 아님에도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이유는 궁금해서예요. ‘직접 해보면 어떨까? 재밌을까?’ 그런 호기심과 도전들이 그나마 부질없고 의미 없는 생을 지속하게 해줘요.
예전 인터뷰에서 “자연스러우면서도 뭔가 있는 발성”을 추구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의미가 알 듯 말 듯 헷갈려요.
꾸미지 않는 목소리가 좋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부르는데 뭔가가 느껴지는 사람이 사실 노래를 아주 잘하는 사람인 거죠. 가을방학의 계피씨가 그래요. 엄청 자연스러운데 뭔가 있잖아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상아 언니 목소리도 너무 부럽죠. 전 그런 목소리로 태어나질 못해서.(웃음)
저도 저 나름의 어떤 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겉으로 딱 드러나진 않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들으면 그제야 좀 알 수 있는…. 노래 말고도, 꾸미는 걸 즐기진 않아요. 너무 꾸민 사람을 보면 좀 불편하고요. 그래도 남 앞에 서는 직업이다보니 너무 거지같이 보이진 않으려고 해요. 공연할 땐 좀 꾸미는데, 티도 안 나요.(웃음)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자연스러움’을 조금씩 잃게 돼요. 그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나도 모르게 맞춰 가는 거죠. 연예인은 그 스트레스가 더 클 것 같아요. 나답다, 한희정답다는 건 대체 뭘까요?
한희정이 어떤 사람인지 저도 점점 더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남들은 저를 더 규정하는데 전 스스로가 점점 더 낯설어져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데, 그래도 그 흐름 속에서 잃지 않으려고 하는 건 있어요. 규정하려 하지 않는 거? 의연함? 여유로움? 음, 모르겠어요. 뭐,저는 그냥 좀 재밌는 사람이에요.(웃음) 유머에 대한 끈, 이것만은 계속 놓지 않으려고 해요.
더더의 보컬로 가요계에 데뷔하셨는데,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지금은 제가 혼자 다 한다는 거? 혼자니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때로는 스스로 ‘이게 맞나?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땐 확신이 들기 전까지 작업을 안 하죠. 근데 더더는 제가 작곡자도 아니었고,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팀이라 많은 사람에게 호응을 얻어야 했거든요. 그게 싫어서 정반대 성격인 ‘푸른새벽’ 활동을 했던 것 같아요.
하루는 방송국에서 종일 대기하다가 풀 메이크업 하고 노래 한 곡 부르고, 하루는 냄새나는 클럽에서 재밌게 공연하고. 지금은 그 중간 지점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하나에 함몰되지 않게.
여러 팀을 거치며 15년 넘게 대중과 관계를 맺고 계시잖아요. 이제 적응이 좀 되셨나요?
사람이 제일 무섭지만 또 사람에게서 얻는 위로가 제일 커요. 친구가 별로 없었던 이유가, 무심한 성격 탓도 있는데 솔직히 좀 무서웠거든요. 알 수 없는 형체의 대중 역시 무서운 존재죠.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들 각자 다 하나하나의 삶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안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되겠더라고요. 그래도 정확히는 모르죠. 사실 대중이 정확히 뭔지 제가 어떻게, 아니 누가 알겠어요?(웃음)
한희정의 노래엔 항상 ‘관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요. 노래를 만들고 부르면서 관계에 대한 힌트를 좀 얻게 됐나요?
아직도 어려워요. 옛날보단 나아졌지만, 이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예요. 가장 가까운 가족들만 봐도 그들이 원하는 삶과 내가 원하는 삶이 다르잖아요. 핏줄이라 관계를 끊을 수도 없죠. 잘 이어나가려면 서로를 이해해야 해요. 최근엔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엄마가 순간적으로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아요. 나도 내가 낯선데 타인이야 오죽하겠어요? ‘이제 좀 알겠다’는 생각은 오만인 거죠.
Q&A 인터뷰에서 대답(Answer)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질문(Question)이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얘깃거리를 갖고 있어도 들을 수 없다. 직접 만나 본 한희정은 요약된 정답보다 희미한 질문을 손에 쥐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뮤지션 한희정을 만든 건 ‘나는 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 아니었을까. 노래를 하고,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뮤직비디오를 직접 찍고, 느리게 춤을 추면서 스스로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 누구니?”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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