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ging(디깅)’은 말 그대로 ‘판다’는 뜻이다. ‘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편견 없이 불특정 다수의 콘텐츠를 만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알잖아….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르, 바로 느낌이 안 오는 장르를 시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레어한 취향의 문화팀 리포터들이 준비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 각각 프랑스 영화, 다큐멘터리, 유럽 애니메이션, 고전 영화, 제 3세계 영화‘만’ 보고 여러분을 설득시킬 만한 매력을 낱낱이 해부했다.

 

1. 말 잘하는 그 영화, 프랑스 영화

프랑스 영화는 깊고 잔잔하다. 실제로 웅장한 효과음과 시선을 강탈하는 스펙터클 대신 대화 장면이 많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을 능란하게 녹여 넣기 때문에, 관객은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인물들의 심정에 동조하게 된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들을 집요하게 ‘말’로 풀어내 극장을 나설 때 생각할 거리를 한 아름 안겨주는 게 프랑스 영화의 매력인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거리감이 느껴진다면 코미디 장르로 시작해보자. 프랑스 영화의 개그 포인트는 황당무계한 상황에서 점잖게 내뱉는 인물들의 헛소리다. 헛소리를 내뱉는 인물들이 모여서 희한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 더 기가 막히다.

한 편 두 편 보다보면 당신도 어느새 프랑스 영화의 환상적인 말발에 중독될 거다.

 
<미치도록 사랑받으소서>

 

감독 │ 우니 르콩트

 

엘리자는 아들과 함께 파리를 떠나 고향으로 향한다. 30년 전 본인을 버렸던 친모를 찾기 위해서다.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계속 수소문하던 중, 아들의 학교에서 일하는 여자가 몸을 다쳐 그녀를 찾아온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차린다. 이 사람이 내 딸(엄마)라고. 아이를 버렸던 엄마와 엄마가 된 딸의 복잡한 감정이 담담하게 전해져온다.

 

<그냥 웃자고>

 

감독 │ 루카스 벨보

 

알리스와 니콜라는 부부지만, 알리스에겐 따로 애인이 있다. 니콜라는 알리스의 불륜을 알아채고 복수를 위해 아내의 내연남 가스파르와 친구가 된다.

상처받은 가스파르를 위로하고 자기 집에 있는 똑같은 물건을 추천해주는 등 뻔뻔한 연기를 하며 그들의 관계를 방해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터지면서도 서글프다.

 

Reporter 배대원

 

2. 영화 같지 않아 영화다운 영화,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는 ‘사실’에 바탕을 두어 현실성을 지니면서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들을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 매력적인 장르다.

물론 다큐멘터리 역시 사람의 손이 닿다 보니 주관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정해진 각본과 연출된 상황 하에 의도적으로 놓인 전문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큐멘터리를 볼 때 주의할 점은 장르가 가지는 신빙성이 높은 만큼 허구와 실제의 경계에서 모호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관객들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예민하고 세심한 비판적 시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건 영화니까’라며 수동적으로 앉아있는 시간이 고문과 같았다면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도전해보길.

 

<소녀와 여자: 나는 어디에 있나요?>

 

감독 │ 김효정

 

아프리카 여성들은 우기가 되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 성기 전체를 절제하거나 최소한의 공간만 남기고 전부 꿰매버리는 식이다.

하루 평균 6000명이 목숨을 잃는 일임에도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행해진다. 영화는 이 전통의 다채로운 결을 따라간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 전통을 지키려는 노인, 살기 위해 도망친 소녀, 고통을 성숙이라 강요하는 집단 등 진보와 보수가 혼재하며 충돌하는 사회는 소녀와 여자의 경계에서 길을 잃은 여성들처럼 위태롭다.

 

<경계의 저편>

 

감독 │ 로베르토 미네르비니

 

남미의 루이지애나에는 홀대받는 전쟁영웅, 미혼모, 실업자 등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모여살고 있다. 그들은 시민권을 상실해 제도적으로 구제받을 수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저마다의 삶에서 허덕이는 그들의 모습은 기존 영화에서 그려지는 자유의 나라 미국과는 거리가 먼, 현대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진실을 보여준다.

 

Reporter 임현경

 

3. 어른을 위한 낯섦, 유럽 애니메이션

보통 사람들에게 유럽 애니메이션은 ‘유럽 여행’보다도 낯선 키워드다. 그리고 그 낯선 느낌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우선 담백한 그림체에 걸맞게 서사에도 기름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가 아는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우연’에 기대어 사건을 끌고 나가지만 유럽 애니메이션은 우연성보단 개연성을 택한다. 밋밋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공감과 감정 이입의 여지가 크다.

‘담백함’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대담한 표현으로 반전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게다가 유럽 애니메이션은 전쟁, 망명, 생존 등 철학적인 주제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유럽 애니매이션에 대한 이질감은 일본과 미국이라는 대형 시장의 문법과 그림체에 익숙해진 우리가 취향을 확장하며 켜는 기지개 같은 것 아닐까?

 

<롱 웨이 노스>

 

감독 │레미 샤예

 

귀족 소녀 사샤가 조난당한 할아버지의 배를 찾으러 북극에 가는 탐험기. ‘성장 영화’라는 익숙한 틀 안에서 서두르지도, 억지를 부리지도 않은 채 소녀의 성장을 응시한다.

그 여정의 결말 또한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통해 성장한 등장인물과 관객에게 의미심장하다.

 

<매직 마운틴>

 

감독│안카 다미안

 

산악 탐험가이자 정치적 망명가인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녹였다. 인물들의 실제 사진을 보여주고, 아크릴 판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 관객을 끌어당긴다. 그 와중에도 담담한 유머는 잊지 않아, 어쩐지 마음이 더 묵직해진다.

 

Reporter 김유진

 

4.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이야기의 맛, 한국 고전 영화

영화를 보면 언제나 이야기가 남는다. 오랜 시간 회자되는 것은 잡다한 수다가 아닌 굵은 서사다. 그런 면에서, 고전이라는 훈장을 얻은 영화는 가벼운 수다보다 묵직한 서사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60년대 한국은 감독이 가위 하나만 들고 필름을 직접 잘라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부자연스러운 장면 전환과 오버하는 듯한 말투에 민망함은 안타깝게도 관객 몫이지만 영화가 끝나면 흑백에 가둬둘 수 없는 강렬한 이야기가 남는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 영화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꼽힌 걸작선들이 가진 힘은 대단했다. 복잡하지 않은 인물 구도를 쥐면서도 갈등을 깊숙이 엮어냈고, 그러면서도 강단 있게 결말을 끊어내는 힘이 묵직하다.

 

<육체의 문>

 

감독│ 이봉래

 

6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시대가 품은 욕망을 가장 문학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불우한 가정을 피해 상경한 소녀가 매춘부가 되고, 돈만 벌면 과거를 털고 결혼하리라는 욕망은 그녀와 같은 처지의 배다른 자매의 욕망에 부딪힌다.

갈등과 갈등이 깊어질수록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운명에, 마지막 문이 열리느냐를 관객들은 모두 숨죽이며 지켜본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

 

감독 │ 최하원

 

황순원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고, 젊은 시절의 배우 이순재를 볼 수 있는 영화. 6.25 전우였던 동호의 자살을 둘러싸고, 그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인공들의 갈등과 다양한 후유증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Reporter 공태웅

 

5. 지구본을 돌려봐, 제3세계 영화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 좀 더 다양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에겐 제3세계 영화를 추천한다.

이곳 영화의 가장 큰 매력? 빽빽한 사각의 고층건물 대신 부드러운 산의 능선이, 퀴퀴한 자동차 매연 대신 신비로운 안개구름이 스크린 가득 술렁인다. 숨겨진 콜롬비아의 정글이나, 에티오피아의 시골 마을에 가볼 일이 없는 우리에게 이런 경치를 눈에 담을 수 있는 기회는 소중하다.

이렇게 생소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재미도 있다. 아프리카, 남미라는 큰 뭉텅이로 바라볼 때는 보지 못했던, 개인이 지닌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고운 물감으로 형형색색 자신의 삶을 물들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벌써 막 궁금하지 않아?

 

<클레버>

 

감독│ 페데리코 보르지아

 

<클레버>는 우루과이 감독의 영화로, 싸구려 자동차를 ‘폼 나게’ 리폼 하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이혼남이 등장한다.

진정한 B급 소울이 충만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콕콕 쑤셔왔다. 이렇게 나와 같은 감성을 지닌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도 존재하고 있었다니!

나와 맞는 소울을 지닌 예술가들을 수집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양>

 

감독│ 야레드 젤레케

 

대다수 사람들에게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못 사는 나라’ 중 하나다. 에티오피아의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흥이 넘치는 사람들, 샤머니즘과 유대교가 섞인 독특한 문화를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양>은 거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개인의 이야기에 내재된 한 나라의 역사를 발견함으로써, 그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Reporter 김송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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