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도합 12년을 가만히 있었다. 어른들은 내가 가만히 있길 바랐고, 난 그들의 방식에 동의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좌우명은 어렴풋이 ‘착하게 살자’로 정해졌다. 착하게 살자는 다짐은 곧 ‘가만히 있자’였다.

 

졸업 후 만난 사람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비판하고 반대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모두가 맞는 말만 하는 건 아니었다. 과장과 비약이 난무했다. 처음엔 속으로 비웃었지만, 이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좌우명부터 버려야 했다.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석정현은 가만히 있는 것에 익숙지 않다. 기성회비가 등록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변호사 조들호를 찾아온다. 그동안 지불한 기성회비를 돌려받기 위해서다.

 

역시나 ‘가만히 있으라’는 압박이 들어온다. 과대표는 석정현의 행동 때문에 학생들이 받을 불이익을 들먹이며 “그럴 시간에 스펙이나 쌓는 게 개이득”이라고 충고한다. 살면서 많이 들었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던 말이다. 규칙(등록금을 내야 한다는)에 동의하고 현실(가장 중요한 건 스펙이라는)에 순응해야 현명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No!’라는 말에 돌아오는 건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괜히 오버한다’ 는 반응이다. 중요한 일은 과연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무엇이 ‘개이득’인지 잘 모른다. 모든 고민은 거기서 출발한다. 기성회비를 돌려받는 것이 중요할까, 아님 스펙 쌓기에 집중하는 게 중요할까. 섣불리 답을 내릴 순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가만히 있었다면 그 기성회비가 원래 자기 돈이 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석정현은 ‘오버’했기 때문에 몰랐던 ‘개이득’을 손에 쥐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은 틀렸다. 가만히 있겠다는 건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겠다는 것밖에 안되니까.

 

 

‘솔직하게 살자’로 좌우명이 바뀐 지 5년 정도 지났다. 자주 ‘오버’하고 때론 과장과 비약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게 낫다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동네변호사 조들호

해츨링 / 네이버

2013. 3.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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