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플레이스

대학 시절 내내, 나는 무식하고 무모했다. 좋아하면 하고 싫어하는 건 안 했다. 공부는 조금 하고 열심히 놀았다. 노는 게 너무도 좋았으니까. 지방에서 상경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맨날 ‘시내’만 가던 내게 서울이란 도시는 놀 것으로 가득했다. 부모님의 엄격한 감시망에서 독립했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약속이 없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잡지에 나온 맛집을 스크랩해서 죄다 가봤다. 어느새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핫한 장소를 많이 알고 있는 애’가 되었다.

 

클럽

21살 때 친구 따라 강남을 가봤다. 강남에 있는 힙합 클럽 이야기다. 대학생이 된 기념으로 클럽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결심은 진작 했었지만 TV 속 클럽 장면에서 본 ‘부비부비’가 떠올라 선뜻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이 된 해 처음 클럽 문턱을 넘으며, 친구한테 “내 손을 절대 놓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손을 정작 뿌리쳐버린 건 친구가 아니라 결국 나였다.

쿵쿵거리는 스피커 앞에 서서 사이키델릭 조명을 받으면 자아가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곳 공기가 만들어주는 온전함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일주일에 최소 네 번 이상은 클럽 도장을 찍었다. 노느라 얼마 안 되는 적금마저 깼다. 내 열정과 체력과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모두 클럽에 올인한 셈이다.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찼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연애

‘대체 남자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거지?’ 대학교 1학년을 꼬박 솔로로 지내고 든 생각이다. 태어나서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으니 길거리에 손잡고 다니는 커플들이 그렇게 신기해 보일 수 없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어찌어찌하다가 내 생애 첫 번째 남자친구가 생겼다.

상대는 인기 많은 스타일의 오빠. 모든 것이 당황스럽기만 했던 내게 그 오빠가 어울릴리 없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헤어졌다. 생애 첫 연애가 허무하게 끝나고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리움 탓이 아니라 ‘첫’ 연애에 막연하게 품었던 기대가 실망으로 끝났기때문이다.

하지만… ‘어버버’하다 끝난 연애를 시발점으로 많은 남자친구들을 (줄줄이) 사귀었다. 연애를 할 때마다 이전에 겪었던 시행착오는 반복하지 않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비정규직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첫날, 교수님은 ‘맏이가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했다. 눈치를 보다 몇 명이 천천히 손을 귓등까지 올리다 내렸다.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문과는 취업이 잘 안 돼서 보통 맏이들은 잘 안 오는데” 대학에서 처음 들은 교수님의 이야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국문과=굶는 과’이다. 휴학 한 번 안 하고 스트레이트로 졸업했다. 스트레이트 졸업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희귀하다. 우리과 동기들 중에 바로 졸업한 사람은 10명, 그중 대부분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들이었고 졸업과 동시에 갈 곳이 정해진 사람은 나 한명이라고 했다.

교수님은 아마 내가 정식 기자가 된 걸로 아셨을 수도 있지만 실은 한 달에 50만원(세금 떼고 48만 몇천원)을 받는 잡지사 어시스턴트였다. 교통비에 점심값을 빼면 도리어 일하는 게 적자인 셈이었다. 대학 때 대자보에서나 보던 ‘비정규직’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매우 불투명하고 기약이 없는 미래지만 부모님을 설득했다. “1년 안에 정규 에디터가 되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하겠습니다.” 어쨌든 글을 써서 먹고살고 싶었다. 어떻게든, 내가 속하게 된 작은 세상에서 살아 남아보고 싶었다.

 

피처 에디터

7개월 만에 어시스턴트 딱지를 뗐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피처 에디터가 다뤄야 하는 범위가 워낙 광범위하다보니, 정규 에디터는 됐지만 내 전문 분야가 없어 편집장님한테 까이기 일쑤였다. 뭔가 나만의 주력 분야를 발굴해야 했다. 적금을 깨가며 클럽 도장을 찍던 경력(?)을 살려 파티 문화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면을 채우기 위한 것만이 아닌 생생하고 실감 나는 파티 기사는 후기에 꽤 좋은 반응이 올라왔다. 진짜 경험하고 쓴 기사와 아닌 기사를 사람들은 귀신같이 알아보았다.

그러나 파티 기사만으론 내 존재감을 입증하기에 부족했다. 대학 시절 무수한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을 담아 연애 칼럼을 썼다. 연애는 일종의 인간관계이기도 했다. 많은 경험은 많은 배움이었다. 독자들로부터 고민 상담 메일이 폭주했다. 그간 마셨던 술들은 내가 주류 기사를 쓰는 데일조했고, 그동안 축적해왔던 핫 플레이스도 아이템으로 기획했다. 그렇게 조금씩 존재감있는 기자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 어떻게 잡지 에디터가 되셨어요, 라고 묻는다면 ‘다주,다무, 다연애’ 술을 많이 마시고, 춤을 많이 추고, 연애를 많이 했습니다, 라고 답할 수밖에.

 

뻔한 조언이겠지만 

‘열심히 놀고 좋아하는 걸 하세요’ 라는 말은 자칫 무책임하거나 재수 없어 보일 수 있다. 취업난에 힘든 청춘들이 과연 이런 얘기에 동의할까 싶기도 하고. 대학 시절의 나 역시 ‘후회 없이 노세요’라는 인생 선배의 말에 어느 정도는 시니컬했다. 하지만 어찌하랴. 그게, 지금 와서 느끼지만 인생의 진리인 것을. 쓸데없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사회에 나와서 보면 오히려 쓸모 있을 때가 많다. 아마 지금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사원증을 목에 건 순간 분명 생각날 거다. 대학 시절 열심히 놀았던 밑천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 언니(누나)의 이야기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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