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it out」 권민기 (연세대 생활디자인학 11), 장도련 (연세대 경영 14), 김우현 (연세대 경영 11)
직접 담지 않아도 돼요. 그저 요즘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본 후, 한 가지 테마를 선택해주세요. (뒤죽박죽 너무 복잡하다면 ‘랜덤’도 좋아요.) 청계천 거리에서 사연 있는 책들과 몇십 년을 함께해온 ‘헌책 장인’이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 책을 직접 골라드립니다. 수많은 책 더미 속에서 뽑혀 당신 품에 안길 책들의 정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막 설레지 않아요?
청계천 헌책방 거리 활성화를 위해 ‘설레어함’을 기획하고 진행 중인 대학생들이 누군지 궁금했어요.
우현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액터스’라는 단체가 있어요. 저희는 그 안에서 청계천 헌책방 거리 살리기 활동을 하는 팀 ‘책 it out’이라고 합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가 1950년대에 형성된 곳이라 지금 대학생들에게 친근한 곳은 아닐 텐데, 어떻게 헌책방거리 재건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됐나요?
우현 헌책방 거리 살리기 활동은 저희 전 기수부터 시작됐는데요. 당시 팀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요즘 헌책방 거리가 사라져가고 있는데, 우리가 할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기획이 됐죠.
처음에 헌책방 사장님들께 이런 계획을 설명드릴 땐 반응이 어땠나요?
민기 처음엔 엄청 경계하셨어요. 대학생들이 뭔가를 같이해보자고 많이 제안했었는데 실제로 성과가 난 적이 없고, 책을 팔아주겠다며 몇백권씩 받아가서 잠적한 경우도 있었대요. 대학생이란 것 자체에 불신이 있으셨죠. 그래서 저희는 한 학기동안 매일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일을 도와드렸어요. 술도 같이 마시고.(웃음) 인간적인 유대감이 쌓이니까 자연스럽게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로 연결되더라고요.
‘설레어함’의 가장 큰 매력은 구매자는 테마만 고를 뿐, 어떤 책이 올지 모른다는 거예요. 미스터리 박스 형식은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민기 랜덤으로 화장품이 배송되는 ‘미미박스’라는 게 있어요. 거기서 인사이트를 얻어서 시작했어요. 점점 발전시켜서 테마도 나누고, 소비자들이 뭘 좋아할지 고민하면서 수정해가고 있는 중이에요. 우현 최근에는 정기 구독 형태를 고민하고 있어요.
일상 속 여유 한 모금, 빛나라 지식의 별, 새벽 2시보다 짙은 감성, 내가 성찰 고자라니, 영화를 보는 듯한 긴박감, 안 알랴줌(100% 랜덤). 총 6개의 테마를 선택 할 수 있는데, 테마 구분이 참 재밌어요. 어떤 기준으로 나뉜 건가요?
민기 첫 번째 기준은 테마를 봤을 때 어느 정도 연상은 되지만 어떤 책이 올 거라고 바로 맞출 순 없는?(웃음) 두 번째는 사장님들이 쉽게 고를 수 있는 주제여야 한다는 거였어요. ‘여유’ 테마엔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 ‘감성’ 테마엔 연애 소설이나 슬픈 소설… 이런 식으로요.
헌책방 사장님이 직접 책을 골라준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민기 인액터스 단체의 취지 자체가 그분들이 어려우니 단순히 봉사 활동을 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분들이 가진 역량을 분석해서 기회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헌책방 사장님들은 책을 오랫동안 다뤘다는 전문성이 있는데, 사실 요즘엔 그런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전혀 없거든요. 손님이 “이 책 있어요?” 물어보면 찾아주는 게 일상의 전부인 거예요. 사람들이 몰려와서 책을 읽고 지식을 공유하던 경험에 대한 향수가 있는데 지금은 그렇질 못하니까 무기력함도 느끼시고….저흰 그런 역량을 잘 풀어내서 사장님들이 북 큐레이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던 거죠.
오랫동안 헌책방을 지키고 계신 사장님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도 있을 것 같아요.
민기 본인의 일에 엄청난 애착이 있으세요. 그렇기 때문에 적자를 보면서도 계속 서점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이 꽤 계세요. 사실 전 무엇 하나에 그렇게 미쳐본 적이 없으니까 좀 놀랍죠. 멋있기도 하고.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청계천 헌책방 축제가 열렸잖아요. 거기서 두 권짜리 설레어함을 판매했는데, 사람들 반응은 어땠어요?
우현 사실 목표량만큼 팔진 못했는데 목표했던 것 이상으로 반응은 좋았어요. 사진 찍어서 SNS에 많이들 올려주시더라고요. 구매하자마자 다시 와서 너무 좋다고 또 사 가신 분들도 있었고, 같이 뭔가를 해보자는 제안도 두 개나 받았어요. 여러 가지로 성공적인 축제였던 것 같아요.
앞으로 준비 중인 이벤트나 프로젝트가 더 있나요?
우현 헌책방 거리 온라인 홈페이지를 만들 거예요. 사장님들의 온라인 역량도 좀 키워드리고요. 지금은 기존에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 중인데 수수료가 너무 높아요. 헌책은 사실 팔아도 남는 게 얼마 없는데 거기서 수수료가 떼어지니까 사장님들께 돌아가는 게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만의 플랫폼을 만들어서 ‘알라딘’처럼 키우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꿈은 크죠.(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설레어함’을 꼭 만나보라고 어필 좀 해주세요.
민기 ‘설레어함’ 배송을 준비하다 ‘이 책을 통해 가장 힘든 시기를 잘 보냈다’는 글귀를 본 적 있어요. 새로운 것만 찾고, 스마트한 소비를 중시하는 시대지만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도련 저도 네잎 클로버가 들어 있는 걸 보고 감동 받은 적 있어요.
민기 그리고 요즘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택배 오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그것만으로도 설레는데 ‘설레어함’은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친구한테 선물받아서 열어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Editor 김슬 dew@univ.me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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