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몇 번이고 마주치는 인연이 있다. 초등학교 동창을 같은 대학교에서 만나기도 하고 군대 선후임이었다가 회사에서 만나기도 한다. 문화계 바닥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여러 작품에서 합을 맞추는 콤비가 있다. 특히나 요즘 영화계에 이런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영화계 콤비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봤다.
김윤석은 무명시절이 길었다. 1988년부터 연극판에서 뒹굴었지만 3개월 동안 50만 원을 받는 것이 전부였던 가난한 삶. 결국, 회의감을 느껴 부산에서 라이브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오랜 친구였던 송강호의 회유로 다시 연기를 시작하면서 연극과 영화판을 오갔다.
결국, 2006년 영화 <타짜>의 아귀로 대종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조연상을 받는다. 그리고 잭팟이 터졌다. 2008년 <추격자>에서 4885를 외치며 그 해 7개의 남우주연상을 쓸어 담는다. 이 당시 김윤석은 박지성 맨유 시절이었다.
반면 강동원 입장에서는 다소 침체됐던 시기였다. 2004년 <늑대의 유혹>의 꽃미남 후광으로 간간하게 들어오는 CF 촬영을 하던 때였다. 그리고 김윤석과의 만남. 영화는 신선하고 재밌었는데 상을 받지는 못했다. 포텐은 다음 해 2010년 <의형제>에서 터졌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여러 번 오른 끝에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정확히 6년 만이다. <전우치>에서는 서로의 명치에 발차기를 후려 차대는 적으로 만났다면 이번엔 같은 편이다. 6년 동안 김윤석은 어두운 배역 전문배우가 되었다. 강동원은 10년째 ‘꽃미남 배우’ 타이틀을 유지 중이다. 두 사람의 호흡이야 안 봐도 잘하겠지. 그나저나 전편과는 좀 다른 역할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맘처럼 잘 안 되나 봐.
5년 전이다. 물론 그때도 지금과는 별 다를 바 없었다.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 <구름을 버서난 달처럼>을 연속 히트치며 각종 남우주연상을 휩쓸던 때였다.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것도 이때쯤이었다.
유해진 역시 <왕의 남자>, <타짜> 등에서 코믹 연기의 달인으로 떠오르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때였다. 2010년에는 <이끼>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는 예쁘고 섹시한 여자 친구까지 있었으니 뭇 남성들이 神이라며 떠받들던 때였다.
이 두 사람이 만나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이 고스란히 <부당거래>에 담겼다. 영화 개봉 당시에는 흥행을 하지 못했다. 그 후 각종 명대사가 히트하면서 많은 남성이 ‘열과 성을 다해서 두 번’ 봤다고 한다.
2015년 최고 흥행영화로 1,341만 명이 관람하며 역대 흥행영화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두 사람의 열연이 있었지마는 여기에는 유아인이 한몫했다. 도핑테스트가 필요한 연기. 이번에는 확실히 유아인 승이다. 뭐 어쨌든 두 사람이 한 영화에 나오면 무조건 이슈몰이가 되는 건 이제 공식이 됐다. 아닌가? 류승완 감독 덕분일지도…?
이때 조승우의 나이는 27세. <타짜2-신의 손>의 주인공이었던 탑(최승현)보다 어린 나이에 고니를 연기했다. 그 나이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포스. 심지어 10살 연상인 김혜수와의 베드신에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노련함까지 보여줬다.
물론 이 작품 전까지도 조승우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1999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서 이몽룡, 2003년 <클래식>, 그리고 바로 전해에는 <말아톤>에서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를 외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난 놈이라고 봐야지.
백윤식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였다. 그는 1970년 KBS 공채 탤런트 9기로 데뷔했다. 이렇다 할 작품이 없는 평탄한 배우생활이었다. 그러던 중 2003년 <지구를 지켜라!>를 통해 인생의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후 <싸움의 기술>, <타짜> 등을 통해 스승 전문배우로 급부상한다.
평경장과 고니가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이번엔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닌 검사와 언론의 논설주간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더니 진짜로 그렇게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두 사람의 연기도 다양한 색깔을 입었다.
조승우는 뮤지컬판에서 캡짱을 먹었다. 아니, 뮤지컬계의 고니가 돼서 뮤지컬 티켓의 밑장을 빼고 다녔다. 김혜수도 인정했다. “그는 내가 아는 연극배우 중에 최고였다”고.
백윤식은 <타짜> 이후에 <돈의 맛>, <관상> 등 열두 편의 영화를 더 찍었다. 형사부터 회장, 황희정승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역할을 소화했다.이 두 사람만 있었어도 대박이 났을 터인데 <내부자들>에서는 뵨사마까지 끼어들었다. 하…. 이건 뭐…. 충무로 뒤집힌다고 봐야지.
풋풋하다. 아니, 촌스럽다. 이 당시 전도연은 이제 막 신인 티를 벗은 여배우였다. 바로 전전년도인 1997년, <접속>에 출연하며 각종 영화상 신인상을 휩쓸고 난 직후였으니까. 지금의 김고은 정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그녀는 영화 <내 마음의 풍금>으로 대종상에서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병헌 역시 초짜 배우 시절이었다. 큰 비중 없이 여러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던 중 1999년 드라마 <해피 투게더>의 주연을 맡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같은 해에 개봉한 <내 마음의 풍금>으로 한 방을 노려보지만 아깝게 빗맞는다. 이병헌의 카운터펀치는 다음 해에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 이때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쓸어 담으며 남자배우로서 첫 성공을 거두게 된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병헌과 전도연이다. 두 사람은 17년이 흐르면서 국내 최정상 배우로 성장했다. 솔직히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지만 어쨌든 분량을 채워야 하니 쓴다. 전도연이 휩쓴 여우주연상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엔 입 아프다.
대박인 건수만 말하자면 2007년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수상, 2014년에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올해는 <무뢰한>으로 칸 영화제의 네 번째 레드카펫을 밝았다.
이병헌도 만만찮다. 드라마 <올인>이 히트치며 한류스타 ‘뵨사마’가 되었다. 한류에서 서핑을 타는가 싶더니 그 물살이 할리우드까지 넘실거렸다. 영화 <지아이 조>, <레드2>, <터미네이터:제네시스>에 출연하며 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한국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가 재미없어서일까 이병헌의 악재 때문일까. <협녀, 칼의 기억>은 보기 좋게 일찍 VOD로 노선을 갈아탔다.
천하의 이범수가 조연을 하던 시절이다. 1990년 대학 동기 공형진과 야심 차게 데뷔했으나 이렇다 할 대표작은 뚜렷하게 없는 상황. 대학 시절에는 입시학원에서 아르바이트 강사를 하기도 했는데 이때 제자가 김강우, 하정우, 현빈 등이었다.
어쨌든 그는 2003년에 이 영화에서 실제 나이보다 4배나 빨리 노화되는 조로증을 연기하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듬해 <싱글즈>, <슈퍼스타 감사용>에 연속으로 주연을 맡으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반면 이정재는 제법 충무로에서 침 좀 뱉고 다니던 때였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성공 이후 영화 <태양은 없다>, <시월애>, <오버 더 레인보우> 등 멜로와 액션 장르에 상관없이 남우주연상을 독식하던 때였다. 이범수와는 반대로 <오! 브라더스> 이후 약간의 하향세를 그렸는데, 2011년 <하녀>를 통해 다시 전성기가 찾아온다.
이 두 콤비가 무려 12년 만에 다시 만난다. 영화 제목은 <인천상륙작전>. 게다가 리암 니슨이 맥아더 장군으로 출연한다. 이건 뭐 쓸데없는 러브스토리만 넣지 않으면 무조건 1000만 각이다.
이정재는 주름이 늘었고 이범수는 뱃살이 나왔지만, 이 세 사람이 뭉친다는 건 충분히 기대되는 일이다. 총제작비는 160억 원 정도, 개봉일은 2016년 6월 25일 예정이다. 추성훈이 북한군으로 출연하는 것도 소소한 볼거리. “사라이 보고이찌? 아바는 사라이 때무네라도 욜씨미 촤룡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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