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보내줘야지!” 친구들은 방, 싱크대, 화장실 사진을 찍어 전송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나도 그사이에 껴서 찰칵 소리를 내며 몇 장 찍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보내진 않았다. 보낼 수 없었다. 그 무렵, 엄마 아빠는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희한하게 원인은 수십 개인데 결론은 언제나 ‘돈’이었다.
8학기가 끝나고 기숙사에서 나와야 하는데, 내가 엄마 아빠 싸움에 숟가락을 얹어줄 게 뻔해 마음이 불편했다. 대학생 대출, 보수가 센 알바 같은 걸 찾아봤지만, 속만 탈 뿐이었다. 매일 보증금이 싼 방을 찾아 헤맸다. 한바탕 발품을 팔고 돌아오면 늦은 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울먹임이 들려왔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유 있게 살고 싶다….” 절규 같은 한탄을 들을 때마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아서 쿡쿡, 마음이 욱신거렸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저렴한 기숙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내 생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한 달이 넘게 그런 생활이 반복되자 마음에 뾰족뾰족 미움의 싹이 올라왔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여력도, 의지도 사라졌다.
<짝퉁 패밀리>의 은수는, 36년간 이런 미움을 품으며 살아왔다. 손이 여물 때부터 일해 집안의 빚을 갚고 아버지가 다른 남동생 민수를 먹여 살려온 자신의 노고를, 가족들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민수의 아버지가 은수의 등록금을 훔쳐 달아나 대학을 못 가게 된 것도, 일 끝나고 알바 뛴 돈으로 민수의 운동화값을 내는 것도 오로지 은수의 ‘한’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전화 몇 통 안 받는 걸로 가족과 분리될 수 없는 그녀는, 1년간 제주에서 살길 소원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엄마의 죽음으로, 피가 반만 섞인 남동생이 짐 덩이처럼 그녀 앞에 남겨진다. 은수는 민수의 생부를 찾아가기도 하고, 보호시설에 보내는 방법을 강구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네가 걔 가족이잖아.”
가족이니까 희생을 감내해야 하고 모든 걸 감싸 안아야 한다는 말처럼 폭력적인 건 없다. 가족이니까 서로의 기분을 더 헤아리려 노력해야 하고, 고마운 걸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가족을 이어주는 끈은 ‘피’가 아니다. 나를 아낀다는 믿음이다. 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확신이다.
이사를 며칠 앞둔 밤, 오랜만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왜 연락이 안 되느냐고 서운해했다. 나는 내가 더 서운하다고 했다. 그간 묵혀놨던 것들이 터져 나왔다. “친구들이 집 보러 가서 엄마한테 사진 찍어 보낼 때, 난 그럴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그렇게 힘든데 난 신나서 집 보러 다닌다고 생각할까 봐.”
내 노력이 엄마한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괴로웠다고도 말했다. 한 달 동안 지독하게 자기 말만 했던 엄마가 잠자코 내 얘길 들어주었다. 코 훌쩍이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엄마가 말했다. “미안해. 항상 고마워.” 순식간이었다. 날 할퀴고 긁어대던 미움이 뭉툭해진 것은. 맥이 풀려서 웃음이 났다.
Editor 김슬 dew@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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