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편히 울 수 있는 곳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마음은 덜 병들고 덜 아프게 될 테니까.

세상에 편히 울 수 있는 곳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마음은 덜 병들고 덜 아프게 될 테니까.

 

아빠가 돌아가셨다. 원래 심장이 안 좋긴 했지만 최근까지 건강하셨으니, 실로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점심을 먹고 있다가 그 소식을 들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엄마가 울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었다. 그 길로 뛰쳐나와 택시를 잡았다. 길 한복판에서 미친 여자처럼 울면서.

 

나는 원래 눈물이 많다.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TV에 나오는 30초짜리 광고를 보고도 펑펑 우는 게 나다. 근데 아빠가 돌아가셨으니 미친 듯이 우는 건 당연하지 않나? 근데 사람들이 날 보고 자꾸 그랬다. 울지 말라고.

 

울지 말아라. 그 얘길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유는 다양했다. 우선은 장례식을 잘 치르는 것이 중요하니 울지 말라고 했다. 나보다 더 슬플 것이 분명한 엄마를 잘 모셔야 하니 울지 말라고 했다. 체력이 떨어져서 쓰러질 수도 있으니 울지 말라고 했다(그나마 이건 좀 이해가 갔다). 제일 짜증 났던 건, 돌아가신 아빠가 맘 편히 가시지 못할 테니 울지 말라는 말이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빠가 내가 운다고 어딜 못 가? 그렇게라도 안 보낼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물론 이 말은 속으로만 했다). 여기서 제일 슬픈 건 엄마랑 나, 그리고 내 동생인데 누가 누구보고 자꾸 울지 말라는 건지. 세상에서 제일 가슴 아픈 일 앞에서도 울지 말라는 말이 이렇게나 난무했다. 그럼 대체 언제 울어야 하는 건데? 그럴 거면 눈물은 왜 있어?

 

장례식은 처음이 아니다. 2년 전에 날 업어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땐 사람이 죽었는데 식장 크기니 음식 선정이니 상복 대여니… 그딴 걸 결정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화가 났다. 상조회 사람들의 거듭되는 질문에도 괜히 열을 받았다. 물론 그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할머니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이 싫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좀 익숙해졌을까? 그럴 리가. 돌이켜 보면 할머니 장례식에서 내가 했던 일은 거의 없었다. 나를 둘러싼 엄마와 아빠, 그리고 외가 친척들이 하나의 방어막이 되어 주었다. 중요한 건 모두 ‘어른들이 알아서 할일’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죽음은 달랐다. 모든 게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설상가상으로 사망 사인에 대해 병원과 시비가 붙어, 엄마는 형사들과 경찰서에 가야 했다. 방금 남편을 잃은 부인을 경찰서로…… 병원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지만 참겠다. 어쨌거나 나는 장례식을 무사히 마쳐야 했다. 모든 걸 내가 선택하고 진행했다, 울면서.

 

그 전에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이 사회는 정말 눈물에 대해 야박하다는 걸 명확하게 깨달았다. 운다는 건 무조건 나쁜 일로 치부된다.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평정심을 잃고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 어른스럽지 않은 것, 스스로를 컨트롤 못 하는 것…. 이런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맘 편히 울 수가 없다. 정작 당사자가 제일 힘든 일인데 주변 사람 눈치를 보면서 “죄송합니다” 혹은 “미안해”를 연발해야 한다.

 

울면서 생각했던 또 한 가지.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못된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접할 기회가 없으니, 우는 사람을 보면 다들 표정이 굳어지며 당황한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기껏해야 “울지 마…” 정도. “네가 울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고백을 들은 적도 있다. (그게 지금 울고 있는 사람한테 할 소리야!?) 눈물 흘리고 있는 사람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뭘까? 단순하다. “괜찮아, 괜찮아.” 거기에 온기나 다독임을 조금 더하면 더 좋고.

 

어디에도 울 곳이 없다보니 마음속엔 쏟지 못하고 갇혀버린 눈물들이 조금씩 늘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 ‘견디고 있다’고 스스로 대견해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유 없이 뾰족해져 갔다. 자주 마음이 서늘해졌다. 괜한 일로 서운해했고, 조용한 원망이 늘었다. 사실 그것도 까맣게 몰랐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싸움이 하나, 둘, 셋, 넷…. 엄마와, 동생과, 애인과, 친구와 다툰 후 나혼자 고립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참았던 눈물들 속에 꽁꽁 갇혀버렸다는 것을.

 

혼자 많이 울었다. 출근하다가, 일하다가, 밥 먹다가, 일기 쓰다가, 자다가도 울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많이 슬프고, 내 마음 상태가 엉망이라는 점을 찬찬히 이야기해뒀다. 그렇게 나를 내려놓자 사람들은 내 울음에 조금 더 정직하게 반응해주기 시작했다. 슬픔이란 것을 가지고 (울면서) 함께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상처에 앉은 딱지처럼 딱딱하고 울퉁불퉁했던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려나갔다.  눈물을 나누는 사이’가 하나둘 늘어 갔다.

 

내 슬픔의 근원은 영영 해결될 수 없다. 세상에 없는 아빠가 다시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니까. 모두가 겪는 죽음이라 해서 내 슬픔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울 것이다. 슬픔을 슬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아빠의 죽음을 겪은 것처럼, 모두의 마음속에는 크건 작건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 흘릴 만한 일들 하나쯤은 품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나를 포함해 모두 울지 말라는 말, 하지도 말고 듣게 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편히 울 수 있는 곳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마음은 덜 병들고 덜 아프게 될 테니까. 그나저나 이 글을 쓰다보니 또 눈물이 나네.

 

 

Editor in chief 전아론 aron@univ.me

Illustrator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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