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평소 존경하던 교수님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글로만 뵙던 분이라 기쁘기도 하고 조금 긴장되기도 한 기분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 기분은 채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이어지지 못했다. 식당 종업원을 대하는 교수님의 태도 때문이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아주머니는 여러 가지에 서툴렀는데, 그때마다 교수님의 거리낌 없이 무례한 태도가 나를 아연하게 했다. 이제껏 약자의 편에서 약자를 변호해오던 이의 언행이라 보기 힘들었다.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를 대하는(정확히는 그런 높낮이가 모두, ‘하고’ 있습니까? 존재하고 그것이 또 사람을 분명하게 나눈다고 믿는) 입에 밴 말과 몸에 밴 행동이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떻게 살고 있을지를 짐작하게 했다.

 

그 뒤로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활자에 가려진 그의 맨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그가 촉발시킨 논의와 그의 글이 가진 가치까지 폄하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가 자신이 글로 쓰고 말해온 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 사실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것은, 그가 그런 자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는 자신을 지금껏글로 써 온, 강의에서 말해 온 그대로라 믿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주 가까운 이가 그 간극을 지적해주기 전까지, 어쩌면 지적해준다해도 불같은 화로 그 간극을 손쉽게 땜질해 버린 후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지 몰랐다. 그 뒤로는 그와 그런 가까운 자리를 가진 적 없다. 더 실망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 ‘불일치’가 나를 내내 어지럽게 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은 새롭다 할 수도 없을 만큼 흔하게 일어난다. 유학 시절 경험한 유럽 국가들의 선진적인 문화를 입에 마르도록 칭찬하던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부조리를 시전할 때, 복종을 강요하는 서열 문화의 폐단을 지적해오던 친구가 위계를 앞세워 후배들을 개인적인 경조사에 부려 먹을 때, 젠더 이슈에 지고한 관심을 기울이는 친구가 어제 백화점에서 자신이 코트를 입어 보는 사이 알아서 계산해놓지 않은 남자친구를 비난할 때, 동물복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연예인이 SNS에 선물 받은 송아지 백을 게시할 때, 심지어 그들이 “그래도 그거랑 이건 좀 다르지”라고 말할 때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거’랑 ‘이거’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차원의 세계라도 있는 걸까.

 

머릿속의 아는 것들은 우리를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당연하지만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한, 그렇게 살지 않는 한 우리 삶은 그대로일 것이다. 아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아는 것만으로는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쓰라고 소설가 김연수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요. 지행합일이라고 아는 바를 행동하면 사람은 바뀝니다. 그런 데 아는 걸 행동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이젠 책을 더 안 읽어도 될 정도로 아는 것은 무척 많은데요, 머릿속의 그 아는 것들은 저를 조금도 바꾸지 못해요. 현미밥에 채소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잖아요. 하지만 매일 그렇게 먹어야 바뀌는 거죠. 매사에 정직한 삶이 좋은 삶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죠.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 한은 그대로예요.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154

 

몇몇 진보 논객들이 트위터리안이되며 무너진 것은, 어쩌면 이 같은 언행불일치가 불러온 단적인 결과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타임라인에서 목도하는 그 혹은 그녀는 우리가 글과 강연과 활동으로 알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소한 언행이며 일상적인 태도가 드러나면서, 또 그것이 많은 팔로워들에게 공개되면서, 그들은 지금껏 숱하게 해온 말, 그러므로 그 자신의 태도에 배어 있어야 할 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그런 잘못에 팔로워들은 가차 없었다.

 

너무하다고? 너무한 것은, 오히려 그 잘못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며, 혹은 인정하는 것마저도 잘못된 방식으로 인정하며 헤어나기 힘든 구렁텅이로 빠지고만 님들이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좀체 듣고 싶지 않은 말 중 하나가 “그 사람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인데….” 하는 말이다. 흔히 잘못이나 실수, 무례를 범했을 때 그 잘못을 두둔해주거나 본성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잘못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이든, 그가 한 행동이 그 순간의 그 사람이며, 그가 뱉은 말이 곧 그 사람이다.

 

늘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순간, 그 잘못, 그 발언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생각해보면 우린 그런 말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는지. 사과 없이, 해결도 없이 ‘한 번의 실수’를 건너뛸 기회를 주어왔다. 또한 지금껏 그런 식으로 우리 자신에겐 또 얼마나 많은 자기변명의 기회를 주었을까.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내가 태생적으로 ‘언행불일치’ 사례에 예민한 것일까? 먼지 많은 곳에만 가면 네버엔딩 재채기를 일으키듯, 그런 상황에만 닥치면 알레르기 반응처럼 ‘예미니즘’이 올라오는 걸까? 아니다. 그저 나도 그러하지 못하기에 누군가의 그 허물이 잘 보일 뿐이다. 저 모습이 어제의 나 같아서, 좀 전에 내뱉은 내 말 같아서, 어쩌면 내일의 나도 저럴까봐 조심하고 싶은 것뿐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지키려는 가치와 나란 존재 사이의 간극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 게 없다면, 우린 진즉에 모두 완전한 인간이 되었겠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간극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구려진다. 그것도 몹시.

 

며칠 전 주말에 몸이 좀 안 좋았는데,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별 생각 없이 그랬다. “내일 동생들 약속에 안 나가면 나이 때문에 힘들어한다 할까봐 좀 그래.” 친구는 ‘ㅎㅎㅎ’ 웃은 뒤에 다음과 같은 독침을 날렸다. “나이 얘기 좀 하지 마. 구려 보이니깐.”

 

뜨끔했다. 적어도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연령차별주의를 조장하는 사회 편견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나 역시 농담을 보태며 오히려 그 편견을 탄탄히 하고 있었구나. TV에 고작 20대 초반인 아이돌들이 나와 멤버들 나이를 가지고 ‘어르신’ 운운할 때, 졸업이 조금이라도 늦는 선배를 ‘삼엽충’이라 희화화할 때, 그것을 개탄하던 나는 안 그러는 줄 알았더니 역시나 구린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조심하지 않으면, 누가 옆에서 말이라도 해주지 않으면, 수시로 구려질 위험에 처해 있는 게 우리다.

 

그래서 묻고 싶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처럼, 할 때까지는 한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지금, 아는 대로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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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신지 sirin@univ.me Illustrator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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