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를 쓰시오(10점)”
4년 전, 잡지사 공채 필기시험을 보던 중이었다. 마지막 서술형 문제를 마주친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난데없이 연애편지를 쓰란다. 배점도 높다. 30분 남짓한 시간에 진정성이 담긴 텍스트를 한가득 뽑아내야 한다.
대상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잡지를 가상의 인물로 설정한 억지스런 연애편지도, 편집장님에게 보내는 낯간지러운 아부성 연애편지도 쓸 수 있었다. 대신 나는 가상의 애인에게 진심이 담긴 연애편지를 쓰기로 했다. 이게 먹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매번 사랑 운운하는 연애편지는 마치 라면 같아서, 맛있게 먹지만 질리기도 쉽다. 대신 우리는 몇 가지 작은 변화로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생각날 때 마다 자꾸 꺼내보고 싶은, 새로 산 신발처럼 따끈한 연애편지를 쓰는 몇 가지 팁을 공개한다.
숙소에서 우리 처음 만났잖아. 처음 널 보자마자 엄청 설렜어. 운명의 상대인가 싶을 정도로 넌 사랑스러웠어.
글을 쓰다 보면 아무리 말주변이 없는 사람도 생각을 차분히 정돈할 수 있다. 추억을 선명하게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써 나가자. 상대와 처음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 그(그녀)가 얼마나 멋지고 사랑스러운가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묘사가 구체적일수록 읽는 사람이 머릿속에 장면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으니, 공감하기도 쉽다.
체크인하려고 줄을 서고 있을 때, 남색 GAP 후드티를 입고 있던 너와 눈이 마주쳤어. 눈을 뗄 수 없어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까, 너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잖아.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
매번 말하지만, 나는 널 사랑해. 천 번 만 번 말해도 부족한 것 같아. 내 사랑은 아무리 많은 ‘사랑해’라는 단어를 써도 모자라. 아 참! 지난주에 우리가 갔던…(후략)
당신이 그(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당신도 알고, 상대도 알고, 당신 부모님도 안다. 수화기에 대고 매일 “사랑해”라고 말하는 건 통신사 직원이랑 국정원도 알고 있을 거다. 즉흥적으로 성대에서 목을 거쳐 나오는 ‘사랑해’가 아닌, 성대에서 머리를 거쳐 다시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사랑’을 전하자. 감정을 추슬러 말한 한 번의 ‘사랑해’가 수 십 번의 ‘사랑해’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기념일이라고 평소에 쓰지도 않던 편지를 건네려니 새삼스럽다. 내가 되레 쑥스럽기도 하고. 글씨로도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다면 좋겠어. 사랑해.
어제 사실 너가 다른 여자애들이랑 약속이 있다고 했을 때, 화를 내서 미안해. 그래도 좀 질투가 나서 서운했어. 앞으로는 조심해줬으면 좋겠어.
잘 해보자고 쓰는 편지에 온갖 불만과 서운함, 미안함을 노골적으로 끄적이진 말자. 편지라는 건 쓰는 사람의 부담만큼 받는 이의 기대도 크다. 두근거리며 사랑이 가득한(할 것 같았던) 연애편지를 뜯었더니, “근데 너 잘못함ㅋ”이라는 비난이 섞여 있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고마운 얘기만 찾아 써도 4절지가 모자랄 지경인데. 손 아프게 쓴 편지로 상대에게 실망을 안겨 줄 필요는 없다.
약속시간에 30분이나 늦은 날 네가 웃으면서 안아줄 때 너무 행복했어. 매번 속상하게 해도 늘 용서하고 이해해 주는 네가 너무 고마워.
예전에 우리 갔던 와플집, 진짜 맛있었잖아. 갑자기 생각나서 또 먹고 싶다. 나중에 한 번 또 가자.
‘지속 가능한 연애’를 하려면, 비전이 필요하다. 오랜 생각과 기획 끝에 쓰는 글은 말보다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다. ‘오늘 뭐 했고, 어제는 뭐 했고’ 하는 과거의 일을 승정원일기처럼 기계적으로 기록하는 건 당신의 연애전선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대신 향후 둘의 연애가 좀 더 다이나믹해 질 거라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자. 사귄지 얼마 안 되어 권태기를 겪고 있다면, 아마 둘 사이에 이런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2월엔 네가 가고 싶다고 했던 부산에 가자. 바다도 보고, 남포동 먹자골목 가서 비빔당면도 먹어야지. 올해 가기 전에 순천도 가야 하는데. 너와 할 게 아직 많아서 너무 좋아.
우리 귀요미>_<! 오늘도 난 쟈기를 보고시퍼서 죽을 것 같아쏭♥ 드라마를 보고 있능데, 자꾸 쟈기 생각이 나지 뭐야! 이따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근두근!
세상엔 애정이 과도하게 넘치는 연인들이 많다. 눈앞에서야 변조한 듯 콧소리를 쥐어짜고 혀를 꼬아대더라도, 글에서까지 기교를 가장한 애교를 부릴 필요는 없다. 면전에서 애교가 넘치는 사람이 가끔 편지에서 건조한 문체를 사용하면, 같은 표현이라도 더 진솔하게 들리는 반전 효과가 생긴다.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 의외로 진지하고 듬직한(것 같은)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 거다.
오늘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문득 네 생각이 났어. 곧 보겠지만, 벌써부터 너를 만날 생각에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네. 보고 싶다.
생각지 못한 순간에 건네받은 편지는, 그가 나를 먼저 생각했다는 증거다. 이런 자발성은 애정의 척도와 같아서, “날 사랑해!”라고 닦달하지 않아도 먼저 표현할 줄 아는 상대가 기특할 따름이다. 사실 그게 뭐 별 거라고.
잠들기 전, 문득 나를 떠올리고 오밀조밀 편지를 쓰는 그(그녀)의 모습은 분명 사랑스러울 거다. 노하우보다 중요한 건 편지를 건네려는 당신의 마음이다. “언젠가 쓰겠지”라며 충동구매하고 썩혀 둔 서랍 속 펜과 종이를, 오늘만큼은 당신이 먼저 꺼내어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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