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이 빚은 문장
– 시인 황인찬

똑똑한 드립이 환영 받는 요즘. 누가 시집 한 권 온전히 읽을까. 그때 황인찬 시인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는 잘 팔린다. 첫 시집은 7000부,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 5000부 넘게 팔렸다. 문단은 그의 시를 주목하고, 독자들은 그의 시 구절에 ‘좋아요’를 누른다. 나는 시인을 만나자마자 솔직히 말했다. “전 시를 잘 몰라요. 다른 나라 말 같고, 어렵고….” 고등학생 때가 떠올랐다. 밑줄 긋고 받아 적으라던 국어선생님의 엄숙한 넥타이. 마음 깊숙이에선 교과서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28살 시인이 말했다. “답 아는 사람은 없어요.”

 

시인 황인찬

시인 황인찬

 

‘옷 속에 닿는 바람이 너무 미지근해서 죽고 싶은 기분이 든다/죽고 싶은 기분은 죽음과는 너무 무관해서’…. 시집 『희지의 세계』의 ‘조도’라는 시를 읽다가 마음에 들어서 적어뒀어요. 전혀 죽고 싶지 않은데도 죽고 싶은 묘한 기분, 누구나 한번씩은 느꼈을 감정 같아서 공감했어요. 제가 시인의 의도대로 느낀 것 맞아요?

네. 이 구절은 그런 맥락으로, 노골적으로 던진 말이었죠. 글자 그대로의 뜻이라서 다른 해석이 필요하진 않았어요. 시의 모든 문장이 복잡하진 않아요. 암호처럼 해석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저의 경우는 읽기 쉬운 시를 쓰려고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독자들이 쉽게 읽은 뒤에도, ‘이게 정확하게 무슨 말이지?’ 아리송해하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게 되고 마는. 그러니까 완결을 미루는 시, 계속 읽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완결된 것은 더는 읽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완결을 미룬다’는 말은, 열린 문장을 쓴다는 뜻이에요? 여러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어떤 종류의 딱 떨어진 해석을 거부하는 것에 가까워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를 쓰진 않아요. 시는 뜻을 ‘유예’하는 일에 가깝고, 메시지가 완전히 전달되는 걸 오히려 방해하는 쪽이죠.

 

‘시는 뜻을 유예한다’는 말의 의미가 궁금해요.

말, 생각, 기분은 딱 떨어지게 표현될 수 없어요. ‘기쁘다’는 말로는 내가 얼마나 기쁜지,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완벽히 쓸 수 없죠. 그러니 뜻을 하나로 규정하면, 오히려 내가 처음에 했던 생각이 훼손돼요. ‘이 시는 너무나도 슬픈 시’라고 말하는 순간, 그 시에 관해선 절대로 온전하게 말할 수 없어요. 뜻을 유예한다는 건, 뜻을 지키겠다는 얘기예요.

 

"시는 뜻을 ‘유예’하는 일에 가깝고, 메시지가 완전히 전달되는 걸 오히려 방해하는 쪽이죠."

“시는 뜻을 ‘유예’하는 일에 가깝고, 메시지가 완전히 전달되는 걸 오히려 방해하는 쪽이죠.”

 

요즘은 SNS에서 짧고 강렬한 드립이 많이 돌아다녀요. 드립도 시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간결하고, 생각지 못했던 반전을 경험하게 하고…. 그렇다면 드립 역시 시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SNS에서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글을 원해요. 짧고 간단하고 공감 가는 글. 심지어 재밌는데다가 반전도 있고, 그 반전마저도 “맞아! 그거지”라며 다시 공감하게 만드는. 그런 걸 잘 해내는 분들은 굉장히 똑똑하죠. 지금은 ‘공감의 언어’를 원하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공감’만이 문학의 매력은 아니에요. 책을 읽으면서 생겨나는 ‘충돌’도 있죠. 이것이야말로 문학만의 가치라고 봐요.

 

그렇다면 문학만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이죠?

책을 읽다보면 불편한 생각들, 나와 안 맞는 부분을 발견하게 돼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속에서 ‘충돌’을 일으켜요. 그걸 감당하면서 내가 변해가지요. 하지만 공감만으로는 변화를 끌어내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공감의 길로 가고 싶지 않아요. 굳이 제가 시를 쓰는 이유는, 공감보다는 판단을 ‘유예’하기 위해서예요. ‘내 생각 맞아? 진짜야?’ 의심을 품게 하는 거죠. 이런 부분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요.

 

"제가 시를 쓰는 이유는, 공감보다는 판단을 ‘유예’하기 위해서예요. "

“제가 시를 쓰는 이유는, 공감보다는 판단을 ‘유예’하기 위해서예요. “

 

한 편의 시보다는 공감 가는 시 한 구절이 SNS에서인기를 얻어요. 예전엔 음악 들을 때 앨범을 샀는데, 이제는 싱글 한 곡만 듣게 된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라도 시가 읽히는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물론 그것이 시만의 고유한 역할은 아니죠.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생각의 일방통행을 가로막는 것. 이게 현대시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작가님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 5000부 넘게 팔렸어요. 이 통계는 시집 판매 부수에선 ‘흥행’을 뜻 한다고 들었는데요. 시가 안 읽히는 요즘, 인기의 비결은 뭐예요?

제 시 역시 SNS에서 한 줄 한 줄 유통이 됐었어요. 제 이름을 몰라도, 제 시집을 안 읽어봐도 제 시의 구절을 알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때로는 아이돌 그룹 사진 밑에 제 시 구절이 붙어 유통되기도 했고요. 2차 창작물을 만들 때, 시의 말랑말랑하고 좋은 구절들을 인용하는 분들도 있고요.

 

"저는착각하는 일이 좋아요. 거기서 발견되는 일들이 많거든요. "

“저는착각하는 일이 좋아요. 거기서 발견되는 일들이 많거든요. “

 

시집 『희지의 세계』 는 이자혜 작가의 만화 『미지의 세계』를 착각해서 나온 제목이라고 들었어요. ‘착각’은 시를 쓸 때 영감을 줘요? 우리는 “정확하게 파악해야 해”, “착각하지 마”라는 말을 종종 듣고 사니까요.

착각을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하면 어색하지만, 저는착각하는 일이 좋아요. 거기서 발견되는 일들이 많거든요. 확정된 것에선 발견할 만한 게 별로 없는데, 착각하면 ‘내가 착각을 왜 했나’부터 생각하게 되잖아요.  이게원래 이랬나?’ 의심하게 해주니까 제겐 좋아요.

 

20대 시인도 취업이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어요?

앞날 깜깜하죠. 저도 사람들 만나면 먹고 사는 얘기만 해요. 시 쓰는 일은 돈이 안 돼요. 돈이 안 되기만 하면 다행이지. 심지어 돈벌이에 방해가 되잖아요. 그러니 서울에 집을 사겠다, 남들처럼 살겠다는 기대를 포기해야죠. 제겐 시 쓰는 일, 시인이 되는 일이 더 가치 있으니까요. 여기서 더 희망찬 메시지를 주긴 어려울 것 같고요. 모두가 고생을 하고 고민을 하고. 네, 우리가 힘내서 좋은 세상을 만듭시다.(웃음)

 

 

Editor 조아라 ahrajo@univ.me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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