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싫어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잘 정리된 서랍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왜 싫어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잘 정리된 서랍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어렸을 땐 멋진 어른이 되는 게 꿈이었다. 어른이 되면 다 멋져지는 줄로만 알았던 게 함정이지만. 오류는 빨리 수정됐다. 사회적 관계망에 접어들어 멋지지 않은 어른들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실망할수록, 다짐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멋진 어른이 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면, (나라도) 멋진 어른이 되어야지. 동경하던 어른에게 실망하거나, 가까운 어른에게 상처 입거나, 처음 만난 어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마다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한참이나 뭘 모르던 시절의 야무진 다짐이었구나 싶다.

 

그리하여 지금 내 (다짐도 아닌) 바람은 오직 하나다. 더 나빠지지만 말자. 100세 시대이므로 지금보다 더 나빠질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긴 더욱 어려워졌다. 어렴풋이 셈해봐도 70년 정도는 성찰과 경계의 자세로 살아야 한단 소린데, 그 길이 지루하고 고단해서라도 중도 포기하고 싶어질 것 같다.

 

시간이 쌓일수록 분별은 쉬워지는 게 아니라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 과연 나의 주장이 소신인지 아집인지, 누군가에게 하는 조언이 사려 깊은 충고인지 안 하니 못한 참견인지 제대로 분별할 수 있을까? 그걸 분별하는 게 어른의 일 아니냐 묻는다면, 여기서 또 다시 오, 나의 멘토님—소설가 김연수의 말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뭘 잘 모르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는 게 많아지잖아요.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혜로워지다가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죽을 수 있다면, 그런 게 사람이라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겠는데요. […] 단지 뛰어난 사람들만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빠질 가능성이 더 많아요. 조금만 방심하면 나빠지게 돼있는 게 인간이거든요.” 

 

그런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는 게 많아질수록 우리가 점점 지혜로워진다면 누구나 그 사람 생의 ‘가장 훌륭한 사람’인 상태로 죽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실제로 그런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를.

 

뭇 어른에 대한 실망이 멋진 어른에 대한 포기로 이어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느낀 실망들이 모두 내가 이미 아는, 내가 가진 모습들에서 왔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헤르만 헤세의 문장을 보고 느꼈던 최초의 충격이 떠오른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 안에서 당신의 일부인 어떤 점을 발견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새로운 말도 아닌데 그때의 내 가치관이란 성냥으로 탑을 쌓듯 얼기설기한 것이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싫은 건 싫은 줄로만 알았지 그것과 나를 연결시키진 못했던 것이다. 아, 내가 싫어한 것들이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구나. 그 최초의 각성은 얼얼한 깨달음과 함께 왔다. 당연한 말이다. 무언가를 싫어한다는 것은 ‘알아본다’는 것인데,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볼 수는 없다. 저 저열함을, 저 무례함을, 저 비겁함을 모르고서 싫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 나는 무언가를 싫어할 때, 또한 두려워진다. 이것은 내가 아는 저열함이구나. 내가 가진 비겁함이구나.

 

그런데도 무언가를 싫어하며 그 싫음을 공적으로 표현할 때 우리는 대체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저 사람과 달라, 라는 기저가 그 비난의 목소리에 힘을 싣게 한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비겁함을 싫어할 때,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는 내안의 비겁함에 눈을 내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안의 비겁함이 눈을 뜨고 바깥의 비겁함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가 중요해진다. 하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실은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하여 무언가를 싫어할 때 혹은 누군가를 싫어할 때 그 모습이 문득문득 내게 발현되진 않는지 경계하는 것.

 

두 번째는 ‘왜 싫어하는지’ 아는 것이다. 싫어 하는 것을 왜 싫어하는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 좋아하는 것은 사실 그냥 좋아도 된다. 좋아함의 층위에서 “그냥 좋아”라는 말은 있을 수 있지만, “그냥 싫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냥 좋아” 는 좋다는 감정이 그 모든 이유를 넘어선다는 얘기로도 들리지만, “그냥 싫어”는 더 들여다보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왜? 불편하니까. 싫은 것은 나를 불편하게 하니까. 그러나 ‘왜 싫어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잘 정리된 서랍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어디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는 사람. 나의 호오를, 무엇을 견딜 수 있고 무엇은 도저히 그럴 수 없는지를, 나의 가치관에 나란한 것과 반하는 것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오해할 가능성도 훨씬 낮을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자기소개 공란을 채워 넣어야 할 때, 캐주얼한 자리에서 몇 마디 말로 나를 소개해야 할 때,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방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곧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나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 비슷한 비율로, 싫어하는 것들 역시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부분들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은 어쩌면 내 안의 터에 자라는 잡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수시로 들여다보며 제때 뽑아내지 않으면, 한 번 내린 비에 손쓸 수 없이 번져버리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얼마 전 미러 노트를 샀다. 그런 걸 파는 건 아니고, 손바닥 크기의 조그만 노트를 사서 친구와 함께 미러(Mirror) 노트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하나씩 적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나를 비춰볼 때마다 금세 알아볼 수 있도록, 아주 이해하기 쉬운 말로 아주 솔직하게 적는다. 다시 생각해도 낯 뜨거운 나의 알량했던 행동들, 누군가에게 느낀 잦은 실망, 저러지만 말아야지 싶었던 행동들까지.

 

싫어하는 것들의 이유를 밝혀두지 않으면, 적어서라도 기억해두지 않으면, ‘조금만 방심해도 나빠지게’ 돼 있는 게 인간이니까. 시간이 흐르면 그간 내가 겪어온 경험이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주어, 살아 보니 그렇게 말했던 내가 틀렸더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노트에 적어 지금의 마음을 미래의 나에게 미리 보내둔다. 아마 이 노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나빠질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려고 한다. 목표는 제자리걸음! 최선을 다해서, 더 나빠지지만 않는 어른이 되는 것이 지금의 내 바람이다.

 

 

Editor 김신지 sirin@univ.me

Illustrator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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