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할아버지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끼익. 철문이 열리며 쇳소리를 낸다. 복도 끝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오늘은 그의 40년 수감 생활이 끝나는 날이다. 그는 머리를 깎고 수염을 정돈해보지만, 희끗한 머리카락은 숨길 수가 없다. 복도 끝에서 어머니가 주름으로 덮인 얼굴을 씰룩거리며 걸어온다.

 

하지만 그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그는 뒤를 돌아 자신이 머물렀던 방을 다시 한 번 본다. 쇠창살 너머로 교도소의 다른 동 벽돌 건물이 보인다. 그가 40년간 본 세상의 전부다. 이 곳을 떠날 날만 기다렸는데, 막상 떠나는 날이 오자 기분이 이상하다.

 

건물 밖을 나오자 처음 보는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질문을 해댄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먹고 자기만 하면 되는 행복한 토요일이었다. 나는 뜨끈뜨끈한 온수매트 위에 누워 귤을 까고 있었다. 손톱은 귤색으로 물들어갔고, 옆에선 컵라면이 익는 냄새가 났다. TV에선 생소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감옥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40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 그 할아버지는 어린 인민군이었는데, 국군 포로로 잡혔지만 아직까지도 북한에 돌아가기를 원하는 ‘비전향 장기수’였다.

 

원래 할아버지의 고향은 충청도다. 그래서 백발의 어머니도 그를 면회하러 올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감옥에서 40년 넘게 “북한으로 보내달라”며 시위를 하고 있었던 거다.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TV 속에서 울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웃으려고 했지만, 주름이 깊게 파여서 잘 웃어지질 않는 것 같았다. 웃는 것 같기도 했고, 우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상상해봤다. 내가 만약 그 감옥에 갇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좁은 감옥에서 기약 없이 몇십 년을 견뎌야 한다면? “남한에 남겠습니다”라는 한마디만 하면 모든 게 끝나는데? 그리고 더 나은 삶이 펼쳐질지도 모르는데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손자 손녀도 안아보고, 스파게티랑 초밥도 먹고.

 

할아버지는 감옥 안이 더 편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수많은 동료들은 어릴 때 죽어갔다. 신념을 지키기기 위해서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든, 살아남기 위해서든 소리 없이 죽어 갔다. 할아버지는 어쨌든 대단한 결정을 한 것이다. 목숨보다는, 목숨과도 같은 가치를 선택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빠삐용>이라는 옛날 영화에서 본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유명 인사인데다가 잘생긴 빠삐용은 죄가 없는데 살인죄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억울했던 그는 여러 번 탈출했다. 탈출에 성공해 몇 년간 감옥밖에서 살다가 다시 잡혀 들어가기를 몇 번. 젊을 때 감옥에 들어갔던 그에게도 세월은 찾아와, 어느새 머리는 하얗게 새어버렸다.

 

어느 날 그는 밤잠을 설쳤는데, 꿈속에서 신이 나타나 그에게 호통을 쳤다. “너의 죄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는 죄가 없다고 울부짖었다. “나는 무죄예요!” 그러면 절대자의 무시무시한 음성이 들려왔다. “감옥에서 인생을 낭비한 죄, 그게 가장 큰 죄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된 빠삐용은 다시 탈출을 선택한다.

 

다시 TV로 눈을 돌렸다. 할아버지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온수매트와 귤 껍질, 컵라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나는 ‘인생’을 선택할 것이다. 자식과 손자를 보지 못한 어린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더 인간답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면서.

 

리허설이 없는, 한 번뿐인, 그래서 절대로 다시는 살 수 없는 나의 소소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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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현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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