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에는 ‘장점 같은 단점’을 잘도 서술하면서, 왜 실제로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자기소개서에는 ‘장점 같은 단점’을 잘도 서술하면서, 왜 실제로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경상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나의 어린 시절은 서러움의 역사였다. 시골이라 손 닿고 발 닿는 사방이 놀이터였는데, 놀이만 했다하면 혼이 났다. 뒷산의 쓰러진 나무를 타고 놀거나,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다 죄다 젖어들어오거나,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오빠한테전수 받은 비석치기를 하고 있거나 하면 할머니와 엄마는 “선머슴같이!”라며 호통을 쳤다.

 

여자애는 모름지기 얌전하고 조신해야 한다고 배우는 동안, 조금 슬펐다. 나는 그냥 재밌는 것을 찾아 놀았고, 신이 났던 것뿐인데. 내가 본래 가진 호기심과 명랑함이 ‘선머슴’ 같다는 이유로 없애거나 감추어야할 것이 되면서, 나는 완전히 명랑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얌전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그 시절, 어린 내게 서러움은 있었지만 고민은 없었다. 그런 식으로 구는 것은 ‘고쳐야’ 할 성격의 하나임을 혼나면서 배웠으므로, 별다른 의심 없이 혼나지 않을 만한 행동을 체득했던 것 같다. 어른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할머니의 혀 차는 소리나 엄마의 치켜 올라간 눈썹은 내가 ‘또 잘못하고’ 있음을 뜻했다. 그럴때마다 인식하지 못하고 하던 말과 행동들을 재빨리 교정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듣던 선머슴 같다는 꾸지람이 언젠가부터는 줄어들었으니, 별난 호기심과 명랑함을 감추는 것에 어느 정도는 성공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나자 내게 ‘얌전해 보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 말을 들으며 자라는 동안에는, 또 다시 조금 슬펐다. 정작 나 자신은 스스로를 얌전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겐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나 혼자서만 어린 시절 나무를 타고 오르던 나를 진짜 ‘나’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집을 떠나 대학 생활과 함께 진짜 독립을 하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이제 누구도 나의 선머슴 같음에 잔소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도, 한 시절을 함께 지낸 애인들도, 모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줄 뿐 너는 그게 참 문제야, 넌 그걸 고쳐야 돼,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더이상 걱정 같은 걸 하지 않고서 자연스레 행동하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스스로를 검열하거나 억누르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도 나는 곧잘 책상이나 의자에 부딪쳐 멍이 들곤 하는데, 어렸을 때는 내내 그 때문에 꾸지람을 들었다. ‘기지배가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서 어디다 쓰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나에겐 누구도 문에 부딪치는 것 따위로 나의 쓸모를 묻진 않았다. 발가락을 감싸 쥐고 깨금발을 뛰거나 부딪친 무릎을 호빵처럼 호호 불고 있는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친구들과 함께 웃었고, 그런 나의 덜렁댐을 도리어 귀여워하는 애인 덕분에 귀여움이 증폭되었다(…).

 

그들도 나의 그런 점이 마냥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더러 한심할 때도, 피곤할 때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딱히 그 점을 장단점으로 구분 지어 부르지 않고, 그저 바라봐준 것이다. 내가 아는 내 친구는 이런 사람, 그 정도의 마음으로.

 

아, 이 빈틈까지가 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의 어떤 부족함을, 혹은 넘치는 무언가를, 누구도 함부로 나무라지 않는다는 것은 작지만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바보같이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나답게 하는 성격을 ‘고쳐야 할 부분’이라 여겼을까.

 

누군가를 자주 상처 주거나 누군가에게 폐를 끼쳐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정도가 아닌 이상, 성격적인 특징은 개인의 고유성을 만드는 부분일 뿐이다. 가까운 친구들만 보아도 그렇다. 서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기억하게 해주는 성격적 특징이 없었더라면 우린 얼마나 밋밋한 사람들이 되었을까. 그런 세상은 재미까지 없는 세상일 게 뻔하다.

 

더 다행스러웠던 것은, 단점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 대체로 장점이라 불릴 만한 것들과 한 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어딘가 자주 부딪치는 것은, 다른 데 정신 팔리면 주변을 못 살피는 탓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나눠 쓸 정신이 없을 만큼 ‘다른 데 정신 팔려’ 있는 덕분에 해낼 수 있었던 괜찮은 일들도 있었다.

 

(선머슴처럼) 자주 신이 나는 것은 대체로 좋아하는 곳에 가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좋아하는 이를 만났을 때 그랬다.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좋아할 수 있어서, 그 감정에 푹 빠질 수 있어서, 지금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그렇다. 소심한 사람은 그 소심함 때문에 한편으로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으며, 대범한 사람은 결단력 있는 반면 그 때문에 챙기지 못하는 것들을 잃기 쉽다. 이런 의문이 든 건 그래서였다.

 

자기소개서에는 ‘장점 같은 단점’을 잘도 서술하면서, 왜 실제로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나의 단점이 사실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는, 고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의 나로 괜찮다는 생각에 이르기가 이렇게 멀고도 험난하다니.

 

어쩌면 우리는 내면을 너무 쉬이 여기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너 그 얼굴 좀 고쳐”라는 말을 한다면 몹시 실례가 될 텐데, “너 그 성격 좀 고쳐”라는 말은 그럴 수도 있단 대접을 받는다니, 듣는 성격 섭섭할 소리다. 어쩌다 성격을 ‘고치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하게 되었을까?

 

성형을 하겠다는 친구가 있으면 ‘원래 가지고 태어난 자연스런 얼굴을 왜 고치려 드느냐’는 반대는 하면서, 왜 성격에는 유독 메스를 들이대려 할까. 이왕이면 고쳐야 하는 것처럼, 고치려 하면 고칠 수 있는 것처럼, 고치면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좀 더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 커서 만난 친구와 애인들이 나를 속 편하게 대해준 것처럼. 단점이야 있겠지, 찾자고 들면 자꾸자꾸 보이는 얼굴의 결점처럼, 마음도 그럴 것이다. 납작한 이마와 흐린 눈썹이 신경 쓰이는 것처럼, 선머슴처럼 덜렁대는 성격이 불편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불완전한 우리의 이런 성격적 특이점 정도야—스스로를 신경쓰이게 한다면—조금 보완하는 정도, 그러니까 마음에 화장을 하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더 바란다면, 화장을 하지 않아도 그런 나의 ‘맨 마음’을 스스럼없이 보여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 나 좀 이상하지?

– 아냐, 예뻐.

 

그 말은 반만 진심이라 해도, 늘 믿고 싶은 위로가 되니까.

 

그러니 생얼 자신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생맘’ 자신감 정도는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긴 화장한 선머슴보다야 화장 안 한 선머슴이 더 자연스럽긴 하겠다. 누구도 말해준 적 없으니 나라도 말해주어야지. 선머슴이어도 괜찮아. 조금 (많이) 덜렁대도 괜찮아. 생긴 대로 살아도 괜찮아.

 

 

Editor 김신지 sirin@univ.me

Illustrator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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