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살기로 했다. 그 생각을 하니 약간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릴 지켜보던 또 다른 친구는 혀를 끌끌 차며 반대했다. “니들 그러다 의절한다”고. 지난 학기 친구와 같이 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언니는 “내 꼴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했다.

 

아니 친구랑 살면 밥 혼자 안 먹도 되고, 옷도 같이 입고, 밤에는 맥주도 같이 마시고, 무엇보다 방세도 아낄 수 있는데 왜 다들 말리는 걸까. 겪어보면 안다는 단점이 대체 뭐길래 이리들 치를 떠는 걸까. 경험자들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친구랑 같이 살면 어떻게 되는데?

 

 

1. 동거의 시작은 달콤하게


매달 나가는 월세가 너무 아깝고, 밤마다 외롭다. 이럴 때 우리는 친구와의 동거를 생각해 본다. 어맛! 우연인지 운명인지 친한 친구가 자기도 집 구하는 중이라네? 그래 좋다. 같이 살면 되겠다 짝짝짝. 얼렁뚱땅 동거를 결정한다. 주변에서 워낙 안 좋은 소리를 많이 해서 찜찜하긴 하지만 괜찮을 거다. 안 맞는 친구랑 살면 힘든 거라며! 근데 난 내 친구랑 엄청 잘 맞는걸? 맨날 붙어 다녀도 싸우지도 않아요. 별일 없을 거야. 방세 반띵하면 20만원 굳으니까 봐뒀던 코트나 질러야지!

 

경험자의 말:
새내기 시절 술자리에서 만난 과 동기와 멋모르고 자취를 시작한 M양은 동거 2주차 만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속단은 금물! 친구로서 잘 맞는 것과 동거인으로서 잘 맞는 것은 다르다. 뭐가 다른지는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라.

 

 

2. 불화의 씨앗, 청소


청소에 대한 기준(범위, 주기, 강도 등등)은 사람에 따라 미세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설거지가 안 되어 있어도, 방바닥에 쓰레기만 없으면 깨끗하다고 느낀다. 반면 어떤 사람은 온 방이 쓰레기로 가득해도, 책상만 깨끗하면 오케이다. 물론 함께 살려면 이 정도는 서로 맞춰야겠지. 이미 각오한 일이다. 우리는 공평하게 집안일을 분담하기로 했다. 설거지와 빨래는 내가, 청소와 요리는 친구가. 이대로만 한다면 싸울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경험자의 말:
그래, 집안일 분담 좋지. 실현만 된다면!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순간, 집안의 평화는 깨진다. 친구 3명과 복층형 원룸에서 살았던 D군은 처음엔 착실히 자기 몫을 하다가, 어느 날 나 빼곤 아무도 집안일을 안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D군 역시 청소를 포기했다고.

 

설거지, 빨래, 청소, 요리를 하나씩 맡아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 쉽겠지만, 실은 다 같은 비중의 집안일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거다. 예를 들어 빨래를 담당한 자는 어쨌거나 수건이 떨어지기 전에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데, 청소를 담당한 자는 은근슬쩍 건너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싸움으로 이어진다.

 

여담으로 위생 관념의 차이도 싸움의 원인이 된다. 대학 동창과 함께 살았던 P군은 외출 후 흘린 땀을 에어컨으로 말리고, 씻지도 않은 채 자는 룸메이트가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코를 찌르는 땀 냄새 때문에 집에 가면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그러다 보니 룸메이트에게 자주 짜증을 내게 되더란다.

 

 

3. 아침형 인간 VS 올빼미족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 공부는 밤에 해야 잘 되는 사람. 자주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 주말엔 절대로 외출을 하지 않는 사람 등등등.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생활 방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생활 방식이 다른 종족을 만난 것 같다. 자려고 누웠는데도, 한껏 볼륨을 높여 TV를 시청하는 친구가 당황스럽지만 그저 생활 방식이 다른 것이니 곧 괜찮아지겠지. 맞춰 가면 되니까!

 

경험자의 말:
나와 생활 방식이 비슷한 룸메이트를 찾는 것은, 애인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생활 방식이 맞지 않는 룸메이트와 산다. 서로 맞춰 보려고 하지만, 20년 이상 축적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기숙사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친구와 6개월간 함께 살았던 H양은, “불면증이 있는데 같이 살던 친구가 매일 밤 요리를 해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겨우 잠들려고 하면 ‘내일 아침에 먹을 김치찌개’를 끓이겠다고 부산을 떠니 살 수가 없었다고. 또 집에서 공부하는 습관이 있다는 J군은, “친구가 매일 밤 놀자고 꼬셔서” 곤란했다고 한다.(그게 과연 친구 탓일지는….)

 

 

4. 초대하지 않은 손님의 방문


집은 무장 해제 구역이다. 얼굴을 덮고 있던 답답한 화장을 싹 지우고, 앞머리도 말끔하게 올리고, 안경까지 장착하면 홈웨어 완성! 이제 좀 쉬어볼까…하는데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맙소사 친구가 자기 애인을 데리고 왔다. 왜 나랑 상의도 없이 손님을? 나 이제 좀 쉬려고 하는데. 이런 꼴로 다른 사람을 만나긴 싫은데. 몹시 짜증 나지만 그래도 손님이 있으니 일단 티 내지 말아야지. 나중에 둘이 있을 때 잘 타일러야겠다.

 

경험자의 말:
친구와 같이 살게 되면 내가 초대하지도 않은 손님을 맞아야 할 일이 많아진다. 가장 많이 문제가 되는 건 룸메의 이성 친구. 과 동기와 함께 살던 N군은 어느 날 침대에서 피임 기구를 발견했다. 룸메가 여자 친구를 몰래 데리고 온 것. 이후 룸메는 점점 더 대담해져 자신이 있는데도 애인을 데리고 왔고, 나중에는 여자가 짐까지 가지고 들어와 셋(N군, 룸메, 룸메애인)이서 동거하는 꼴이 됐다고 한다. (;;)

 

친구와 함께 살았던 시절을 자기 인생의 암흑기라고 꼽는 K양은, 시도 때도 없이 손님을 데리고 오는 룸메이트 때문에 미칠 뻔했다고. 조별 과제 할 곳이 없다고 조원들을 우르르 데리고 와서는, 밥까지 해 먹고 심지어 치우지도 않고 나가 버리지 않나. 자기 친구가 차가 끊겨서 잘 곳이 없다며 시험 기간에 술에 떡이 된 애를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단다.

 

 

5. 그 놈의 돈 문제


돈 문제는 깔끔하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먼저 살던 집이라 보증금은 내 돈(이 아니라 엄마그 돈)이지만 월세는 정확히 반으로 나눠야지. 친구가 나에게 돈을 주면 내가 집주인에게 입금하기로 했다. 공과금도 반반씩 내기로 합의 봤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지?

 

경험자의 말:
반반씩 내기로 한다고 모든 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P군은 월세를 늦게 주는 친구 때문에, 집주인 아저씨에게 빚쟁이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또 각종 공과금은 챙기는 사람의 몫이 되기 쉽다. 전기세가 밀리든 말든 가스가 끊기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과 살면 나머지 사람이 일단 급한 대로 내게 되는데, “한 달에 만 원 남짓 나오는 전기 요금을 내가 냈으니, 오천 원 내놔라!” 하기엔 뭔가 민망하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같이 살게 되면 샴푸, 휴지 같은 생필품도 함께 쓰고 음식도 함께 먹어야 하는데 여기서 미묘하게 기분 상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D양은 생필품이 떨어지면 자신이 사다 놓을 때까지 절대 채워 두지 않는 친구가 그렇게 얄미웠다고. 큰돈이 아니라서 쪼잔해 보일까봐 말은 못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샴푸를 쓰는 친구를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고 한다.

 

 

6. 집에 가기 싫어짐


수많은 불편함을 무릅쓰고 친구와 함께 살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타지살이의 외로움 때문. 집에 가면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위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혼자 있기 싫어서 억지로 약속 잡고 그랬는데, 이제는 집에 일찍 가서 친구랑 저녁도 해먹고 수다도 떨어야지!

 

경험자의 말:
텅 빈 집이 싫어 친구와 동거를 결심했던 O군은 몇 달 뒤 텅 비었던 집을 간절히 그리워하게 됐다. 청소, 생활 방식, 식습관 모든 곳에서 사사건건 부딪혔던 O군과 친구. 어차피 매일 얼굴 볼 사이라 소리를 지르며 싸우진 않았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불편한 기류 때문에 집에 있기가 너무 불편했다고. 막판에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고향 집(원주)가서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울로 가기도 했단다. “내가 사 둔 우유를 다 마셔 버린 것.”, “설거지를 제때 하지 않은 것”등의 사소한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감정이 상해 버린 것이라, 말로 잘 풀 수도 없었다고.

 

K양은 좋아하는 아이돌 영상을 맘 편하게 감상하지 못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차라리 기숙사는 ‘내’ 책상, ‘내’ 침대 처럼, 작더라도 ‘나만의 공간’이 있는데, 원룸에서 친구와 함께 사니 24시간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고.

 

 

7. 동거를 마치며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친구와 함께 살아 본 경험이 있는 10명을 인터뷰했다. “나중에라도 (다른) 친구와 또 함께 살 의향이 있냐”는 물음에 10명 중 8명이 “절대 싫다”고 답했다. 돈 아끼려다가 친구까지 잃었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절교를 했고,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더라도 묘하게 서먹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1) 무조건 투룸 이상. 분리된 공간이 있을 것
2) 같이 살기 전에 그 친구가 현재 사는 곳에 가서 생활 습관을 살펴볼 것
3) 문제가 생기면 참지 말고 그때그때 이야기 할 것

 

을 당부했다. 그리고 나는 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앞으로 당분간은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illustrator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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