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횡단보도에 서 있다. 한 할머니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예수님 믿으세요?”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한다. “예, 스님 믿습니다.” 탄설음을 섞어 경건한 느낌을 주며 음운 사이를 잇는다. Yes라고 듣기엔 강세가 부족하고 예수라고 듣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다. 하지만 할머니는 귀가 어두운 듯했다. 남자의 마음 한구석은 씁쓸했다. 남자는 불교 신자였고 생각해보면 그런 일은 석 달에 한 번꼴로 반복됐다. 남자는 길 건너편에 있는 할머니를 향해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우린 언제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애니메이션 <Saint Young Men>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를 처음 배웠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외국인을 만나면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해줬는데, 첫째 나이가 몇 살인지 묻지 마라. 둘째 결혼했는지 묻지 마라. 셋째 종교가 무엇인지 묻지 말라는 것이었다. 영어에는 존대와 하대의 구분이 없으니 나이야 그렇다 치고 또 결혼도 하기 나름이니 이해가 됐는데, 도통 종교는 왜 물으면 안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백수 시절, 입사지원서를 내러 잠깐 피시방에 갔다가 ‘문명5’라는 게임이 있길래 더블 클릭했는데, 순식간에 그다음 해 채용이 시작됐다. 문화승리를 해볼 심산으로 내 나라에 종교를 창시해 ‘은교’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이고 ‘위대한 선지자’가 나오는 족족 타국에 공격적인 포교활동을 전개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위대한 선지자 유닛들은 상대 국가에 종교 전파를 할 수 있고, 은교신자를 보유한 타 문명 지도자들은 십일조 납부 등 내가 설정한 교리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내게 친밀감을 표했던 몇몇 지도자들이 포교활동을 중지해달라고 요청하더니 이내 단체로 선전포고를 선언하며 야포와 열차포를 끌고 쳐들어왔다. 그렇게 A.D 1650년, 내 문명은 일명 ‘이교도의 난’으로 결국 패망했다.

 

한 문명고수는 내 사연을 듣고 이렇게 설법했다. “너의 플레이는 배려가 부족해. 강남대로에서 2인조로 행려 하는 선지자를 만났다면 알 것이다. 그들은 무턱대고 종교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다. 일단 뱅뱅 사거리가 어딘지를 묻고, 몇 미터 떨어졌는지 묻고, 몇 분 걸리는지 물은 다음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묻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음부터 일단 대상을 뽑아서 무역로를 뚫어. 자연스러운 방법이 훨씬 수월할 거야.”

 

생각해보면 정치색을 묻는 것만큼 종교를 묻는 것은 민감하다. 2015년은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궁극의 종교는 이슬람’이라 주장하는 IS가 신념을 빌미로 세계 곳곳에 테러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시리아 난민 출신의 한 꼬마가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은 큰 충격을 줬다. 지난해 시리아 난민으로 등록된 440만 명 중 대다수는 국경의 변방에서 브로커들의 착취와 겁탈에 시달리다 자신의 신과 신앙을 원망하면서 결국 바닷길로 나섰다. 물론 바다가 홍해처럼 갈라질 리는 없고 가나안 땅이 있을 리도 없다. 그들 대부분은 타국의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믿음이 인간의 삶을 더 영글고 성숙게 하는 것이 아닌, 고통의 밀알을 품는 것에 불과했다면 우리는 종교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믿음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조계사 스님들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그리도 고민했던 이유는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신념의 역할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과 상통한다. 불교계 선각자들이 원을 세워 설립한 종립대학 동국대에서 로만카라의 사제복을 입고 지난해 당선된 48대 학생회는 대학의 가치가 설립 정신이 아닌 자유와 진리 추구에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이 있다. 기독교 단체들은 지금까지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규정하고 성 소수자에 대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고 주장해왔지만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라는 단체는 성 소수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 문제를 논의할 장을 만들자는 뜻을 내비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중심으로 한창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 가톨릭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지 출처: 애니메이션 <Saint Young Men>

 

다시, 우린 언제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생각에 아주 가까운 때에 그 시간이 올 것 같다. 종교는 평화를 기술한 유일한 역사이고, 그 끝 페이지에 ‘사랑이 이 세상을 구하는 유일한 것이었어!’라는 촌스런 영화 대사 같은 것이 적혀있더라도 우리를 부대끼며 서로 끌어안을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보면, 죄를 지은 인간을 사랑해 사람의 아들로 왔던 예수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보았던 석가는 결코 다르지 않다. 코란(아랍어로 ‘읽으라’)이라는 알라의 계시를 받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역시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트리를 밝힌 조계사 뜰에 서서 지난 한해를 돌아봤다. 눈을 감으니 저기 광야에서 마른 숨을 내쉬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쌍봉낙타가 보이는 듯했다. 향내가 먼지처럼 일었다. 하나님과 하느님과 알라와 붓다가 터번을 두르고 보따리를 짊어진 채 국경과 국경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나도 올해는 그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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