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던 방학이 왔건만, 1월이 되자마자 개강이 기다려진다. 나를 힘들게 하는 엄마 아빠 때문. 엄빠가 이렇게 나올수록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엄빠와 도무지 잘 지내기 힘든, 일곱 가지 상황을 유형별로 정리했다.
사람이란 멀리서 볼 때 좋은 것만 보이지만, 가까이 있으면 흠이 보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이 명제는 훌륭하신 우리 부모님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 된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방학. 엄마 아빠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다보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 수시로 든다.
정치나 사회문제를 두고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지만 알바나 여행같이 요즘 우리 세대가 많이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50대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하실 때가 많다. 아쉬운 입장인지라 일단 침묵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가장 듣기 싫은 필살기 구절이 들려온다.
“우리 때는 말이다”, “아빠 20대 때는 말이다”.마치 <스타워즈> 시리즈 오프닝에서 본 듯한 ‘먼 옛날, 저 멀리 은하계에서는’ 급의 아득한 그때를 절대기준으로 삼으시며 이야기를 하실 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우리 그냥 얘기 안 하고지내면 안 돼요?
침대와 한 몸이 될 그날을 고대하며 방학을 맞이했건만, 어머니의 생각은 나와 많이 다르신가보다. 아침 7시에 칼같이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걸 시작으로, 학기 중일 때보다 더 엄격한 생활을 해야 한단다.
늦잠 자고 늘어지다보면 방학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말을 빼놓지 않으시며. 물론 동의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친구들 만나서 늦게까지 놀 때면 학기 중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팀플이니 밤샘 공부니, 핑계 댈 거리가 사라진 방학 때엔 ‘짤 없이’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와야 한다.그 유명한 통금이란 것이지. 1박 2일 엠티나, 여행은 당연히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매일같이 똑같은 시간 계획에 맞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후우, 당당하게 외출하고 거짓말이라도 쳐서 늦게 들어올 수 있는 개강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주말예능 <진짜 사나이>를 보면 방송인들의 군대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규칙적임을 넘어 때로는 가학적, 강압적인 생활을 시청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즐긴다.
우리 부모님은 그런 군인들의 모습이 이상적으로 보였는지, 103동 505호의 평범한 가정집을 입소 1주 차의 논산 훈련소로 바꿔놓으셨다.
눈뜨자마자 창문 열고 이불 개고, 본인이 먹은 식사의 흔적은 바로 설거지하고, 화장실을 쓴 뒤에는 다음 사람을 위해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하고, 책상과 책꽂이의 먼지는 항상 걸레질 해야 하고, 외출 후엔 옷 정리를 바로바로 해야 한다.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어머니 아버지, 저것은 예능입니다. 왜 자녀들을 해병대 수색대처럼 굴리시려 하나요. 집은 편해야 합니다. 숨 막히는 공간에선 발 뻗고 있을 수 없다고요.
어머니만 아니었으면 서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지도 못했을 이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이름 하여 엄마 친구의 딸 혹은 아들. 엄마는 모임만 나갔다 오시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이들의 소식을 그 어떤 뉴스 매체보다 자세하게 전해준다.
“누구네 아들은 대기업에 한 번에 들어갔다더라”, “누구네 딸은 전액 장학금 받고 해외 대학원으로 유학 갔다더라” 등등.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하나도 안 궁금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한없이 움츠러드는 이 불편한 마음은 무엇인지.
부모님에게 효도는 둘째 치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더는 어긋나지 않도록 어머니들의 모임, 수다, 전화 통화를 금지시키고 싶다. “엄마!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엄친 자식들 얘기 노노해!”
외출 준비를 할 때마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엄빠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피하고 싶다. “어디 가니? 늦지 않게 와라” 정도면 참 좋을 텐데.
엄빠는 언제나 청문회 모드로 날카로운 질문을 날리신다. “어디 가? 누구 만나? 옷은 왜 그렇게 입었어? 밥은 너가 사니, 걔가 사니?”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다가도 신경질이 솟구칠 때가 있다. 나도 내 사생활이 있는데, 부모님이라고 내 사생활을 100% 아셔야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디 가서 사고를 치고 오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친구들 만나거나, 데이트 하고 오는 건데 왜 그러시는 걸까…. 이런 과한 관심이 독이 돼, 내 사생활에 관련된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게 됐다.
가끔은 나에 대한 관심 버튼을 끄고 무언의 침묵으로 묵묵히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럼 다시 엄빠랑 친해질 날이 오겠지…★
목 빠지게 방학을 기다린 건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였나 보다. 집에서 쉬고 싶은 날 침대 속으로 배 깔고 들어가려는 찰나엔, 느닷없이 나를 호출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은 콩쥐를 소환하는 음성. 눈뜨자마자 아침상 차리고, 밥 먹고 나면 설거지 하고, 설거지하는 동안 세탁기 돌리고, 설거지 끝나면 빨래 널고…. 집 요정 도비보다 강한 강도의 노동을 부모님은 나에게 요구하신다.
물론 모든 가족이 집안일을 분담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자기 계발이나 사생활을 즐길 시간마저 박탈당하고 매일처럼 집안일만 하다보면, 엄빠와 대화 하기가 싫어진다.
이것은 마치 예전 농경 사회에서 자식을 노동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느낌. 개강하면 비로소 외칠 수 있겠지, “도비는 이제 자유예요!”
자녀가 잘되길 바라시는 부모님의 마음. 우리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녀의 인생을 부모님의 바람대로만 설계하려는 욕심에 종종 충돌이 발생한다.
모두가 아는 명문대에 입학해, 좋은 학점을 유지하며, 교환학생도 한 번쯤 다녀오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인생 트랙. 많은 부모님들이 바라는 정형화된 길이지만 모두의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대학 입학 후에도 다른 공부를 위해 휴학을 해보고 싶을 수도 있고, 지금껏 해온 공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도전하고픈 용기가 생길 수도 있다.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여러 개의 선택지를 제시해주는 건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하나의 답만을 요구하는 ‘라이프 플래너’적인 태도는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한다.
협의되지 않은 인생의 청사진을 강요하고 강요받는 그것은 양 쪽 모두에게 큰 슬픔이자 비극이다.
Reporter 곽민지 남세현 최효정 namsh1990@gmail.com
Illustrator 전하은
어린 시절 사진 속 부모님과 나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린 왜 서로 불편해하는 관계가 된 걸까.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다시 그때의 화목했던 엄빠와 나로 돌아갈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과의 대화 소재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20대와 50대는 생각하는 것과 관심사 자체가 다르기 때문. 그래도 용기를 내서 먼저 부모님께 대화를 걸어보자.
꼭 공통된 소재이거나 의미 있는 얘기일 필요는 없다. 친구 얘기, 학교에서 있었던 일, 어제 간 맛집 얘기 등등. 정말 신변잡기적인 일상 얘기를 먼저 꺼내기만 하면 된다.
부모님은 자식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으시다. 다만 그들도 쑥스럽고 불편해 할까봐 먼저 잘 못하시는 것뿐. 젊은 우리가 먼저 용기를 내어 다가가 보자.
학기 중에 부모님과 식사할 기회가 얼마나 될까. 방학이기도 하고, 시간도 널널한 주말 오전에 부모님을 위한 깜짝 요리를 선보이자.
요즘엔 워낙 따라하기 쉬운 쿡방도 많고 인터넷에 레시피도 널려 있으니 방법을 몰라서 못 한다는 건 핑계 of 핑계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 하나. 모든 걸 혼자 하려 하지 말고 부모님께 어느 정도 의지하자. 귀찮아하시는 척하겠지만 함께 붙어 투탁 거리며 요리하는 동안 부모 자식 간의 정은 더욱 깊어질 거다.
음식의 맛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함께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
고등학생 때까진 반강제적으로 부모님의 의견을 거의 수용했지만, 이제는 스무 살 넘은 성인이라고 많은 의사결정들을 부모님과 상의 없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들이나 선배와 상의하거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스스로 판단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부모님은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어 먼저 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보자. 친구나 인터넷처럼 생생한 정보는 못 줄 수 있지만, 그 누구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고 경험에서 나온 지혜를 주실 수도 있다.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터놓고 나면 부모님과 한층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레벨이 그냥 커피였다면, 마지막 레벨은 T.O.P랄까. 엄빠와의 진정한 영혼의 교류를 원한다면 서로의 즐거움을 공유해보자.
이왕이면 내 취미를 부모님께 소개해서 같이 하는 것보단,내가 부모님의 취미를 따라 해보는 게 그림도 좋고 수월하겠지.
아버지가 골프 치러 가실 때 따라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어머니가 운동하시는 체육관에 따라가 일일 수강권을 끊고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은 노력이다.
어떤 것을 함께 한다는 건, 그것도 좋아하는 걸 같이한다는 건 메가톤급 유대감이 쓰나미처럼 다가오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시간과 돈보다 중요한 건 열정. 이제는 제발 엄빠와 친해져보자!
Reporter 신채라 bangul12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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