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회가 레전드인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우리야 소파에 누워 편하게 감상하면 되지만, ‘그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몹시 불편할 것이다.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진실을 가장 먼저 마주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알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 ‘오늘만 사는 PD’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두려움 없이 사건에 달려드는 배정훈 PD를 만났다.


 

2008SBS에 입사 후, 2014년에 <그알> PD로 왔다.

사실 모든 교양 PD라면 <그알> 연출을 맡길 원한다. 시사 교양 프로의 ‘꽃’이니까. <그알>로 발령 나면 우리끼리 하는 말로 ‘영장’ 나왔다고 한다. 아주 기분 좋은 영장이지. 내가 이 조직에서 인정받았단 의미이자,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기회가 온 거니까.

 

<그알>은 잊혀진 사건을 다시 공론화시킨다. 방송 덕분에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가?

항상 희망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87년 ‘형제복지원’ 사건 같은 경우 방송 후 피해자 분들이 다시 모여 목소리를 내고 특별법 발의까지 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피해자 분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괜히 희망 고문만 한 것 같아서.

 

이럴 때마다 정말 겸손해지고 조심스러워진다. 방송이 여론은 만들 수 있어도 실질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래도 피해자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을 때가 가장 뿌듯하다.

 

방송에 나가는 아이템은 어떻게 선정되고 취재가 진행되는 건지 궁금하다.

아이템은 PD가 단독 발제한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취재할 건지, 주요 취재원은 누구인지, 주의할 요소나 비용 같은 모든 복잡한 판단을 해야 한다. 아이템을 찾는 방식은 PD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나는 컴퓨터로 찾는 검색 능력이 부족해서 직접 발로 뛰는 편이다.

 

서울청 미제팀 형사님들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괜히 지방 가서 박카스 한 통 사들고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다. 가끔 기도도 한다. 하늘에서 뭔가 뚝! 하고 떨어지라고.(웃음)

 

방송에 모자이크 돼 나오는 취재원들이 <그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분들을 섭외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만큼 섭외가 힘든 프로그램도 없을 거다. 이해 당사자들에게 전화해 “그것이 알고싶…”이라는 말만 꺼내도 그냥 뚝 끊어버린다. 그러면 직접 만나러 간다. 안 만나줘도 우선 가고 봐야 한다.

 

사람 한 명 만나려고 집 앞에서 일주일 기다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근데 그렇게 기다려서 겨우 만나도 문전박대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계속 찾아가다보면 그분들도 사람인지라 문을 열어주신다. 화면 속 영상은 10초 안팎이지만 그거 하나 따려고 차에서 잠복도 하고 정말 별짓 다한다.

 

아무리 <그알> PD라 해도 계속 거절당하다보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회의감도 느낄 것 같은데.

‘이 내용이 없으면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으면 포기할 수 없다. 내 개인의 감정이 상한다고 사람 만나는 걸 포기하면 일할 자격 없는 거다. 결국은 책임감의 문제다.

 

진실을 맞닥뜨리게 될 순간에 이 사람이 나를 만나주질 않는다? 기다리는 것 말곤 대안이 없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 유족들 같은 분들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인생에 가장 충격적인 얘기를 묻는 거다. 그래서 늘 미안함과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만난다.

 

모자이크로 취재원을 보호하지만 혹시 신분이 노출 돼 불이익을 받은 사람도 있었나?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취재원은 목소리만 따 음성 변조 시키고, 영상은 다른 사람을 앉혀서 다시 찍는다. 이것 말고도 여러 기술적인 방법으로 취재원의 신분을 철저하게 보호한다. 예전에 한 번 취재원의 애완견까지 모자이크했는데, ‘개자이크’라고 불러주시는 걸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알>이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당신이 가장 내세우는 원칙은 무엇인가?

‘쫄지 말자’. 사실 방송을 만들다보면 금기시되는 얘기들을 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해야 함에도, 내 개인의 안위에 문제가 생길 것도 같고. 방송국 입장에서도 기업과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나.

 

근데 이런 것들을 겁내면서 용기 없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진 않다. 내가 불이익을 좀 받아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할 말을 쫄지 않고 할 때,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방송 준비를 다 마쳤는데, 외압 때문에 내용을 편집하거나 접은 경우도 있었나?

효성 그룹을 취재할 때 온갖 외압이 있었다. 전화도 엄청 받고 뒷조사도 받았다. 근데 CP, 팀장, 국장, 본부장님 다 전화 엄청 받았으면서 나한텐 티내지 않았다. 취재의 본질을 하나도 건들지 않았다. ‘우리 조직이 정말 건강 하구나’라는 걸 느꼈다.

 

물론 그분들이 선배로서 ‘이런 리스크가 있어. 소송을 당할 수도 있으니 미리 잘 대비해라’ 같은 조언은 많이 해주신다. 언론중재위 같은 곳에 갈 때도 나 혼자 가면 책임을 독박 쓸 까봐 가만히 못 계시고 함께 가주신다. 선배들의 쉴드 덕분에 안 쫄고 방송 만들 수 있다.

 

당시 효성 그룹 관련 내용을 취재하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묻고 싶다.

정말 신세계를 경험한 취재였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검은 돈을 만들어내고, 그 일에 공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탄탄하게 뭉쳐 있는지를 알고서 정말 놀랐고 가증스러웠다. 사실 그 방송은 굉장히 예의 있게 한 거다. 경영자로서 잘못된 그 사람의 판단에 대한 지적이었지, 개인의 사생활은 지켜줬다.

 

 

수행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던 게 큰 화제가 됐었다.

조 사장에게 수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사석에서 오해를 풀자고 하기에 그럴 이유는 없다고 했다. 끝내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아 법원에 출석하는 날을 맞춰 찾아갔다. 근데 수행원들이 갑자기 나를 둘러싸고 끌어 잡아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당시 취재하면서 뒷조사도 많이 당했다. 내 와이프가 어느 학교를 나오고, 내가 누구랑 친한지, 그룹 측에서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 사람들에게 줄을 대려는 노력을 했단 얘길 듣고, “그런 노력은 하지 마시고 차라리 제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실지 고민하시라”고 이야기했다.


 

당신 같은 탐사보도 PD’는 예능이나 드라마 PD처럼 주목받는 위치가 아니다. 아쉬움은 없는지?

전혀 없다. 우리 같은 PD들은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얼굴이 알려지면 일하는 데 방해만 된다. 꼭 만나야 하는 취재원이 교도소에 있어서 면회 신청을 하고 찾아갔는데 누가 “어! <그알> PD다!”라고 이야기해 못 들어간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알> 영상에 PD들이 직접 얼굴을 비추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위해서다. 시청자를 대신해서 질문하고, 분노하면서 보는 이들의 몰입을 돕는 거지. 아마 화면에 나오고 싶어서 나오는 PD는 없을 거다.

 

<그알>이라는 프로그램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인데. 2016년의 우리 사회는 진실이란 가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하다.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은 진실의 가치와 소중함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지금 느낀 것을 시간이 지나고도 까먹지 않고, 우리도 그 책임감을 느끼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방송을 만들다보면 정신적 폭력을 당할 때가 많다. 난 그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팩트를 말할 뿐인데, ‘좌빨’ 같은 소리를 들으면 정말 속상하다. 난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어떤 면에 있어선 보수적이고, 다른 부분에선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복합적인 사람이다.

 

 

당신이 말한 <그알> PD의 삶은 단순 급여 생활자의 마인드만으론 이어나가기 힘들 것 같다. 역경이 있음에도 계속 진실을 향해 움직이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보통 한 기획을 맡으면 4명이 한 팀이 돼 6주 가량 준비한다. 6주라는 시간이 지나 방송날이 됐을 때는 다른 결론을 향해 갈 수 없다. 방송 날짜라는 약속된 시간에 도달했으니까. 그러다보면 당연히 설렁설렁 달릴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진짜 속된 말로 ‘졸라’ 달린다.

 

우리가 내는 결론은 누군가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매 번 하는 일이라고 적당히 하면 누군가의 인생에 씻지 못할 상처를 주는 거다. 실제 있었던 일이고, 사람이 죽은 일이고, 범인이 안 잡힌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적당히 할 수 있겠나. 그 사람이 우리 앞에서 울고 있는데.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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