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죽고 싶었던 적 있나요? 그 때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얼마 전 제가 졸업한 대학에서 강연을 하다,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을 한 남학생의 눈빛은 단호하고 고요했지만 그 속에 어떤 절박함이 출렁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황급히 무언가에 빗대어 적당한 이야기를 해 주었던 것 같은데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 보면 저도 꽤 당황했었나 봅니다.
다만 제 대답을 듣고 그가 한 차례 시선을 떨궜던 것과,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음 한 편이 괴로웠던 것만은 아직도 선명하게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 어떤 대답을 해주었다면 좋았을까요? 그 괴로움은 매우 새로웠고 제 안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으면서 동시에 메아리 쳤습니다.
그의 질문이 설익었을지는 모르나 진실했기 때문이었지요. 공개된 자리에서 그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 이었을 겁니다. 아니면 대단한 절박함이라든지, 대단한 고민에 대한 반증일 수도 있겠지요. 그는 자신과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게 자신을 일면 열어 보인 셈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꽤 오랫동안 혼자서 부끄러워했습니다.
어째서 스무 살의 절망에 말문이 막혀버렸던 걸까요? 어쩌다 절대 못 잊을 줄 알았던 일들이 서서히 잊혀지고, 멍하게 안개 속을 들여다보듯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을까요?
나도 이미 스무 살을 살았고, 견디기 힘들만큼 참담해했었고, 수없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느꼈지 않았습니까? 마땅히 밝은 빛깔로 덧칠해야만 했던 스무 살의 익숙한 절망 또한 이미 겪었었기에,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하며 괴로워했던 시절들이 제게서도 완전히 잊혀 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기억의 책 속에서 페이지를 뒤로 넘겨 어렵지 않게 스무 살의 챕터를 찾아냈습니다. 곳곳의 얼룩진 자국과 함께 너덜너덜 하게 닳아있는 가장 어두운 페이지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다음 같은 상태와 현상, 바로 고통스러운 마음의 몸짓들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문제, 나에게는 별빛과도 같은 꿈과 이상을 끌어내려서 더러운 웅덩이에 쳐 박아 버리는 듯한 현실의 상황, 도저히 타고 넘을 수도 깨부술 수도 없는 거대한 벽과 점점 좁아지는 디딜 땅.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경쟁과 무력하고 미약한 나의 존재. ‘안될 거야’ 라고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 그럴 용기조차 없고 보이지 않는 강제 속에 정체되어 있는 지금. 상상할 수 없는 미래, 버티기도 힘든 현재, 부질없이 느껴지는 과거의 노력. 다 포기하고 싶어, 내가 뭘 잘 못했던 걸까? 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어떨 땐 그냥, 나는 자주, 죽고 싶어요.
좌절은 마치 습기처럼 어디에나 쉽게 스며들었습니다. 두려움과 짝을 이룬 그것은 사람을 안에서부터 서서히 침범하고, 온갖 의지를 걷어가 버리는 식이었지요. 괴로운 시절은 해가 갈수록 더 혹독해졌고 그 와중에 괜찮은 미래를 상상해보기란 마치 거울을 보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수 없이 묻고 또 묻는 중이었던 것 같아요.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저는 과거의 자신에게 연민을 느꼈습니다. 그 작은 소녀는 물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대답해 주는 이가 없었고,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혹독하게 대하며 막힌 벽으로 밀어 넣고 있었으니까요.
반면에 현재의 저는 과거처럼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오늘 저는 여전히 살아있으며, 자신이 괜찮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이처럼 두려움이 앎 앞에서 제 위세를 잃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지고, 시야를 가득 메운 안개로부터 벗어나는 것처럼 맑은 시야를 가지게 합니다.
그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무시할 만한 일도 아니었고, 하나하나의 음이 모여서 멜로디를 이루 듯 작은 앎들이 모여 깨달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굵은 글씨로 깊게 새겨지듯 적히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았습니다. 깨달음의 주변에는 두려움이, 절망이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과거로 돌아가, 그 곳에 있는 상처 입은 자신에게 딱 한마디만 전해 줄 수 있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더 열심히 해’ 혹은 ‘그건 잘못된 선택이니 하지 마’ 라고요?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한 때 끔찍한 실패라고 생각했던 상황을 통해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끝이야, 하며 더 이상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확신했었을 때도 가려진 사이로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길을 찾게 된 적이 있지 않던가요? 만약 그런 적이 없다면 이제부터 보게 될 것 입니다. 그 일은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현재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보다 덜 지혜롭고 더 어리숙할지 모르나, 모든 선택권은 어쨌거나 현재의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우리가 하는 선택이 늘 옳은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뒤의 노력으로 다시금 옳은 것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의지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자존감을 드높입니다. 자존감은 온갖 시련을 이겨내게 하고, 지독한 가난도 장애도 자긍심을 품은 이의 눈빛에서 새어나는 빛까지 숨기지는 못합니다. 그 때 제가 했어야 하는 대답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잘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어두워도 눈앞이 캄캄할 만큼 암흑의 시대는 아닙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빛만 있어도 한 걸음씩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길은 우리를 반드시 어디론가 도달하게 하기 때문에, 묵묵히 걷는 것만으로도 목적이 우리를 향해 계속 다가오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멋지고 훌륭한 사람임을 진심으로 믿어도 됩니다. 당신 주변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증거이고 확신임을 믿어도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진정한 혼자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런 시간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란 것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닫힌 문은 열어놓고, 용기를 내야 할 때 비겁하지 않으면 됩니다.
‘너는 잘 하고 있어.’ 그리고 ‘아무것도 잘못 되지 않았어.’ 라고 다른 누군가 말해 주길 바라지 않아도 됩니다.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인정과 평가를 갈구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기 목소리를 자기 귀로 들을 수 있고 마음속으로 노래 부를 수 있듯이, 정말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이미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세상과 사회가 모두 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안 된다고 말해도 당신이 아직 괜찮다면 괜찮은 겁니다. 정말로 죽기 전까지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당신의 책을 강제로 덮어버리지는 못할 겁니다.
실수해도 됩니다. 더 많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페이지는 계속 쓰여 질 테니까요. 이토록 멋진 여백이 아직도, 아직도 한 권 가득 남아 있으니까요.
이토록, 멋진, 여백!
Musician 심규선 press@pastelmusic.com
Illustrator 전하은
진짜 호주를 만날 시간
코딩부터 면접까지 취업 올케어
총 150명 선발
대한민국에서 우리집 이탈리아의 따뜻한 요리 영상을 만드는 미뇨끼 이야기
문화 예술 기획, 창작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
상금 규모에 취하는 '진로 두꺼비 스타일링 콘테스트'
츄파춥스의 '끝나지 않는 즐거움(Forever Fun)' 캠페인
이제 필요한 건 같이 갈 친구
표지모델과 통학을 함께한 Tmoney x 라인프렌즈 협업 카드도 확인해 보자.
어디서도 보지 못한 친절하고 정직한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