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카운터 앞. 일행들이 시크하게 “아메리카노요”할 때,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봐야 했던 당신. 커피는 싫은데 얼 그레이가 뭔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어 대충 아무거나 시켰다면, 다음 페이지를 정독하세요. 당신에게 딱 맞는 차를 골라드립니다.

 

1. 오늘도 내일도 1교시인 당신_잉글리시 브렉퍼스트 English Breakfast

영국에선 아침 밥상에서 이런 말이 오갈지도 모른다. “홍차 먹고 정신 차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냉수로 비몽사몽한 정신을 깨우듯이 영국인들은 진한 홍차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로 아침을 맞이한다. 홍차에도 커피처럼 카페인이 들어있어 각성 효과가 있기 때문.

 

빈속에 카페인이 들어가면 속 쓰리지 않냐고? 그래서 대부분 우유를 넣어 밀크 티로 마신다. 하지만 사실 홍차의 카페인은 탄닌과 결합해 체내에 느리게 흡수되기 때문에, 공복이거나 우유 없이 마셔도 위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제 수업 전엔 우아하게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홀짝거려 보자고!

 

추천 티백: 해러즈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No.14
 조금만 담궈놔도 진하게 우러나오는 색깔에 한번, 깊은 향에 두 번 잠이 달아날 거다.

 

With 파운드케이크
밀가루, 설탕, 버터, 계란에 메인 재료 한두 개를 더해 만들어낸 담백한 파운드케이크는 홍차의 맛을 극대화한다. 촉촉하면서도 묵직한 파운드케이크에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은은한 포도향이 스며들면 차와 빵 둘 다 동나는 건 시간문제.

 

 

2. 별명이 ‘개코’인 당신_ 얼 그레이 Earl Grey

다이나믹듀오의 ‘개코’ 아니다. 옅은 냄새에도 민감한 그 ‘개코’다. 개코 이야기를 하는 건 다름 아닌 향 때문이다. 얼 그레이에선 특유의 시큼한 향기가 나는데, 시트러스(밀감류) 계열인 베르가못 열매의 오일 성분을 첨가했기 때문이다. 존재감이 매우 강해서 티백을 뜯기 전부터 차를 다 마실 때까지 내내 향긋하다.

 

마치 혀에 닿는 것뿐만 아니라 코에 스치는 향도 맛의 일부라는 걸 알려주는 듯이. 일찍이 이 독특한 풍미를 알아본 빅토리아 여왕이 왕실 전용차로 들인 후,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홍차로 자리매김했다. 음식이 나오면 코부터 들이대 향기를 음미하는 개코라면 지금 당장 얼 그레이를 만날 것을 추천한다.

 

추천 티백: 웨지우드 얼 그레이

화사한 향은 살리고, 쌉쌀함 대신 부드러운 뒷맛을 택한 얼 그레이. 홍차를 처음 마셔보는 사람에게 권한다.

 

with 치즈케이크
상큼한 향의 베르가못 오일 때문일까. 얼 그레이는 치즈 케이크의 신 맛과 잘 어울린다. 또한 얼 그레이의 잔향이 가시기 전에 치즈 케이크를 베어 물면 케이크의 맛이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는 사실.

 

 

3. 구수한 입맛을 자랑하는 당신_아삼 Assam

입맛 때문에 ‘할머니’ 소리 깨나 듣는 사람이라면 아삼을 싫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삼은 얼 그레이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처럼 여러 찻잎을 배합시키거나 다른 성분을 첨가한 ‘블렌디드 티’가 아니다. 인도의 아삼 지역에서 난 찻잎을 그대로 발효시킨 것이다.

 

오리지널 티답게 진한 맛과 향을 자랑하는데, 그 향이 군고구마 혹은 엿기름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그냥 마셔도 보리차처럼 고소하게 즐길 수 있지만, 우유를 넣으면 달큰하고 부드러운 최고의 밀크 티가 완성된다. 이제 우리, ‘홍차 마시는 할머니’로 업그레이드 돼보는 건 어떨까?

 

추천 티백: PG팁스 아삼

영국의 국민 홍차. 가성비가 좋아서 어디서나 캐주얼하게 마시기 좋다. 덧. PG팁스에선 ‘밀크티’라는 제품도 따로 나와있다.

 

with 바닐라 아이스크림
아삼을 진하게 우린 다음 한 스쿱 떠놓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부어 아포가토처럼 먹어보라. 쌉쌀한 홍차와 아이스크림의 조화가 에스프레소 부럽지 않다.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밀크 티가 되니 이 또한 개 이득.

 

 

 

4. 고기 안 먹곤 못 사는 당신 _재스민 차 Jasmine tea

중국집에 가면 꼭 한 잔씩 내어주는 차. 그래, 그게 바로 재스민 차다. 이름 때문에 왠지 재스민 꽃만 우려낸 것 같은데, 사실은 우롱차에 재스민 향을 더한 것이다. 뭐든 기름을 둘러 볶아 먹는 중국인들이 살이 별로 안찌는 이유가 바로 우롱차를 시도 때도 없이 마시기 때문이라고.

 

차에 들어있는 카테킨과 리나룰 성분이 콜레스테롤과 중성 지방을 감소해주니, 아주 기특한 친구들이다. 튀김과 고기, 그 중에서도 고기 튀김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재스민 차를 가까이 하도록.

 

추천 티백: 립톤 펄 쟈스민

진주처럼 동글동글 말아놓은 찻잎이 뜨거운 물에 넣는 순간 샤르륵 풀린다. 그 순간 강렬한 재스민 향이 코를 찌르니 눈코입이 모두 즐거운 차다.

 

with 팥 디저트
동양적인 풍미를 자랑하는 재스민 차는 팥 디저트와 잘 어울린다. 팥의 눅진한 단 맛을 개운하게 씻어내 입맛을 돋워주기 때문. 이제 팥빙수 먹은 다음엔 재스민 차로 입가심하자.

 

 

 

5. 밤이 긴 당신_캐모마일 Camomile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눈 뜨고 있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뜨거운 물을 받아 캐모마일 티백을 넣어보자. 은은한 사과 향에 마음이 조금씩 평온해지고, 따끈하게 넘어가는 차에 몸도 풀어진다. 차를 다 마셨으면 ‘이너 피스’를 되새기며 다시 이불을 덮는다.

 

그 사이 캐모마일의 진정 효과가 온 몸을 돌아다니며 예민하게 깨어있는 세포들을 토닥거려줄 거다. 점점 몽롱해지는 기분에 당신을 온전히 내맡기면… 어느새 아침이 와있을 걸.

 


추천 티백: TWININGS 퓨어 캐모마일

TWININGS는 홍차로 유명한 브랜드지만, 허브 차도 잘 만든다. 청순한 꽃 향과 아릿한 단 맛으로, 홍차의 씁쓸함이 어려운 사람에게 추천한다.

 

with  애플파이
캐모마일은 그 어원이 ‘대지의 사과’인 만큼 사과향이 큰 특징이다. 그래서 향과 맛이 사과와 잘 어우러지는데, 그 중의 제일은 애플파이. 사과잼이 들어간 빵과 과자를 곁들여도 좋다.

 

 

 

6. 자도 자도 피로가 안 풀리는 당신_레몬 티 Lemon tea

분명 8시간이나 잤는데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고 어깨엔 곰 한 마리가 산다. 아, 억울해. 이게 다 비타민C 때문이다. 비타민C는 엄청난 능력자라서 면역력도 향상시켜주고,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피로도 풀어준다. 하지만 우리는 광합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귀찮게 직접 찾아 먹어야 한다.

 

그럴 땐 역시 레몬 티! 비타민C는 기본이고, 독소 해소와 칼슘 흡수까지 활성화해주는 구연산도 낭낭하게 품고 있다. 겨울엔 청에 물을 부어 만든 진득한 레몬 티를, 봄과 가을엔 레몬 한 조각 띄운 새큼한 홍차를 즐겨 보자. 어느 순간 어깨에 곰이 슬그머니 내려가고 없을 테니.

 

추천 티백: 샹달프 유기농 레몬 티

레몬 차 티백으로 간단하게 잠을 깨보자. 상큼한 향과 맛이 점심 먹고 축 늘어진 몸에 활력을 줄 거다.

 

with 브라우니
‘단짠’만 진리가 아니다. 신맛과 단맛이 만나면 서로 밀고 당기며 입 안에서 팽팽하게 겨루는데, 그 긴장감이 꽤 재밌다. 공격적인 단맛의 브라우니야말로 레몬 티의 적임자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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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ice 요리연구가 안지홍

illustrator 배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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