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빙자한 협박이 있다. “미안하긴 한데….” 이 말 속엔 어쩐지 ‘사과해줬으니 귀찮게 하지 말라’는 으름장을 감춰놓은 것 같다. 바람났던 옛 남친도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그런데 나도 지금 너무 힘들고 아파.” 나 대신 아파줘서 고… 고마워해야 하니?

 

얼마 전 일본 정부는 군 위안부 피해에 관해 우리나라에 사과했다. “가슴 아픈 역사를 통감합니다. 이 사과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속마음이 들려오는 것 같다. ‘우린 이제 잊어버릴 거야. 그러니까 앞으론 얘기도 꺼내지 마.’

 

 

생존자 나이, 89세

정부에 등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지금까지 238명. 이제 46명이 생존해 있다.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53명이었으니, 8개월 만에 7명이 숨을 거둔 것이다. 10대 때 끌려가 고초를 겪고 살아남은 이들의 평균 나이는 89살. 솜털이 하얗게 흔들리던 소녀들은, 마음만은 열일곱에서 멈춘 채로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다.

 

 

 

 

가장 어렸던 소녀, 11살

열한 살, 정부 등록 위안부 중 가장 어린 나이. 김외한 할머니는 열한 살에 일본 홋카이도로 끌려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씨 하나, 발바닥 아래 바스러지는 낙엽 소리에도 웃음을 터뜨리던 소녀였다.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들은 모두 끌려가서 죽었고, 그녀만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쟁이 끝난 뒤엔 남편을 만나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두었다. 하지만 어릴 때의 고생 때문에 병을 달고 살았다.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려 민들레 홀씨를 날리던 소녀는, 193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위안부로 끌려갔고 2015년 6월에 치매를 앓다 숨졌다.

 

 

 

갇힌 방, 1평

“방이 15개 있었지. 하꼬방(판잣집)으로 쭉 지어서 가운데 칸 하나만 막은걸. 크기는 딱 사람 하나 드러누울 만큼.” 섬으로 끌려갔던 최화선 할머니는 책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3』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도네시아로 끌려갔던 다른 할머니는 “방은 세 평이나 될까. 야자수 이파리로 들창을 만들어서 올렸다 내렸다 해. 짚을 넣은 요 위에다 담요를 덮어버렸어.”라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동원실태에 대한 고찰」(이애리, 경남대 교육대학원)에 따르면 “5~7평방미터의 좁은 방이 그들의 집이었다.”고 한다. 소녀들은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잠들었을 것이다. 그리운 얼굴은 눈물 자국에 희미해지고 온몸 구석구석 푸른 상처만 짙어지는 밤을 겨우 버텨냈을 것이다. 그날의 소녀들에게는 평균 6평방미터가 이 세상의 전부였다.

 

 

 

 

도라지꽃, 2만 개

일제 관동군 사령부는 1941년 조선총독부에 ‘도라지꽃’ 2만 개를 주문했다. ‘도라지꽃’은 성 경험이 없는 16~19세 조선 처녀들을 부르는 암호였다. 조선총독부는 어린 처녀들을 찾아 나섰다. 마을 이장들과 학교 선생님들은 “돈을 벌고 흰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다”며 가난하지만 건강한 소녀들을 꾀었다.

 

그렇게 16살이었던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에 끌려갔다. 그녀는 저항할 때마다, 전화기 코드로 전기고문을 당했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나이였다.

 

 

 

 

사라진 소녀, 14만 명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떠나기 전과 같을 수 없었다. 어느 가족들은 ‘미안하다’며 울었고, 또 어떤 가족들은 ‘수치’라며 욕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요시미 요시아키는, 피해자 수가 최소 8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추정되고 그 중 조선인 여성의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고 연구결과를 냈다. 평균 14만 명이라는 뜻이다.

 

일제가 1941년 명령했던 ‘도라지꽃 2만 개’ 작전에 따르면, 일본군의 징발 목표치는 군인 29명당 처녀 1명. 1937부터 1945년 당시 일본군이 724만 명 정도에 달했으니, 실제 위안부 피해자는 30-40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얘기.

 

하지만 스스로 피해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들에게 누를 끼칠까봐, 끔찍한 기억을 들춰내기 싫어서다. 최화선 할머니가 증언집에서 한 말이다. “(같이 끌려갔던) 나미코라는 여자를 우연히 수원에선가 만난 적이 있었어. 하지만 그녀는 절대 아는 척 하지 않았어.”

 

 

 

 

하루에, 10명-30명

군대에 동원된 위안부들은 하루에 평균 10명 내외에서 30명 이상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 주말이면 밀려드는 군인들이 훨씬 더 많았다. 김군자 할머니는 증언집에서 “많이 올 때는 하루에 한 사십 명 받나 봐. 씻지 못해. 아픈데 생각해주나.”라고 했다.

 

작은 소녀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무릎을 팔로 감싸 안은 채 엄마 품속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지는 않았을까. 차가운 막사 안에서 난생 처음 보는 검은 그림자를 마주했을 때 소리 내어 우는 것조차 잊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일본이 배상할 돈, 97억원

“일본이 잃은 건 10억 엔(일본 정부가 내기로 한 기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기자들과의 비공식 간담회에서 했던 말. 얼마 전 일본은 한국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10억엔(97억원)을 출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일본이 잃은 건 돈 뿐일지도 모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여전히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또 “(위안부 문제를) 서로 합의하면 다음에는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위안부의 명예를 지키겠다는데, 피해자에겐 멍에가 될지도 모른다. 이 협상에선 피해자가 빠져 있기 때문에, 반쪽짜리 협상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수요일마다 집회, 1214번 째

매주 수요일 12시면 일본대사관 앞에는 작은 집회가 열린다. 위안부 소녀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24년간 이어온 수요집회는 지난 14일 1214번째를 맞이했다. 일본은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수요일은 평범한 하루일지도 모르지만 백발이 된 소녀들에게 그 날은 다시 한 번 마음을 움켜쥐는 날이다. 다리가 저려오는 할머니도, 휠체어에 간신히 의지한 할머니도 일본 대사관 앞으로 모인다.

 

 

말 말 말 

“일본 정부를 위해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 관리가 나온 건 71년 만”
외교부 관계자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설득하려고 하자, 역사학자가 전우용씨가 남긴 트윗. 그는 트위터에서 이렇게도 말했다. “10억엔 줄 테니 소녀상 철거해라. 이게 사실이라면, 어려선 위안부로 끌어가고 늙어선 거지 취급하는 셈이군요. 이런 요구를 한 자들보다, 그걸 수용한 자들이 훨씬 더 저질입니다.”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매춘부 취급’이 되는 건 아니다”?
“가라유키상(일본의 해외 매춘단)의 후예”,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박유하 교수가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향해 한 말. 하지만 박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매춘이라는 단어가 ‘매춘부 취급’을 뜻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아,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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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윤소진

 

illustrator 유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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