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어렵게 느껴질 때, 우리는 다른 듯 비슷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혼자 하는 고민 같다가도 우리의 고민들은 묘하게 서로 닮아 있어서, 누군가 찾아낸 답이 나의 힘든 한때를 무사히 지나게 해주기도 한다. 지난해 대학내일의 지면을 채웠던 인터뷰이들의 이야기 중에서 다시 되새기고 싶은 말들을 모았다.

01.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학교 후배들이 많이 찾아와요. “선배, 영화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 뭘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대요. “사진 찍은 거 있나? 프로필 만들어놓은 거 있나?” 물어보면 없대요. 그럴 거면 앞으로 나한테 오지 말라고 해요.

 

저는 영화를 하고 싶어서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오디션이라도 보려면 프로필이 있어야겠더라고요. 컴맹이라 밤새 동생한테 물어봐서 만들었어요. 프로필을 화사 메일로 보냈는데 답장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찾아 다녔어요. 그러면서 하나씩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고요.

 

대단한 건 없는 것 같아요. 하고 싶으면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어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사실 귀찮거든요. 친구들이랑 술도 마셔야 되고, 놀기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되고…. 근데 저는 그런 것들보단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건 ‘에너지’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 근데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능력이 되거나 구체적인 일자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이 에너지를 동력 삼아 ‘실제적인 일’로 만들어낸 게 잘하는 것이다.

 

근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가 잘하는 것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막연히 좋아하는 것만 좇으려 한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좋아하는 건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일 뿐이다.

 

내가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축구 해설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축구를 좋아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다면 실제 액션을 취해야지. 축구 기자든, 심판이든, 지도자든, 선수든 준비를 해서 직접 부딪쳐봐야 한다.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온다면 그게 바로 잘하는 것이다.

 

02. 부당한 요구를 하는 선배 때문에 힘들 때

 

대학에서도 손아랫사람에게 무례하게 구는 일이 많죠. 대학 선배가 후배에게 군기를 잡아요. 규율을 정하고, ‘다나까’ 말투를 강요하고, 애교를 부리도록 시키고….

 

하지만 단지 나보다 일 년 먼저 입학했다는 이유로, 특정한 시기에 같은 학교에 각자 등록금을 내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요구에 응해야 하나요? 인간적인 관계를 맺었다면 또 몰라. 그저 같은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간섭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요.

 

그럴 땐 그래서 뭐? So what? 이라고 답하고 싶어요.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죠?) 지금은 21세기니까 다들 ‘쿨’해져도 괜찮지 않을까요. 각자 자기의 역을 지키면 되잖아요. 특히 ‘군기’라는 말은 사라지면 좋겠어요. 그건 군대라는 특수 집단에서 통용되는 것이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미덕이 아니니까요.

 

03. 단지 사랑받고 싶어서 연애를 하는 것 같을 때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 즉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삶의 중요한 동력일지도 몰라요. 단, 내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면 상대방 또한 그렇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는 있겠죠.

 

그런 면에서 관계는 일종의 ‘교환’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랑을 ‘없음의 교환’이라고 규정해본 것도 그런 맥락에서예요. 어느 집이건 어느 한 군데는 고장이 나 있잖아요. 전구가 나갔거나 문고리가 떨어졌거나.

 

인간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린 그걸 감추려 하죠. 이미 온전한 존재인 척해요. 그래야만 상대방이 나를 욕망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원하든 아니든 언젠가는 자신의 결여가 드러나는 순간이 와요. 계속 결여를 부정하거나 가면을 쓰려고 한다면 그 관계는 깊어지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서로 결여를 확인하는 순간 더 깊어지는 관계도 있지 않을까요?

 

04.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세상에서 자꾸 조급해질 때

 

저도 조급해요. 좋다는 영화는 다 보고 싶고, 좋다는 곳은 다 가보고 싶으니까. 그런데 미국 시인 에리 디킨슨은 평생 한 마을 안에서만 살았어요. 나중에는 집에서도 안 나오고.

 

그 사람의 세계는 그 집과 책, 그리고 정원뿐이었거든요. 정원을 굉장히 열심히 가꿨는데 햇빛이 어디를 비추는지, 식물들이 매일 얼마만큼 자라는지를 매일 관찰했대요. 그 사람은 정원에서 소우주를 느끼고 그게 아름다운 시로 나타난 거예요.

 

단순한 삶 속에 창의적인 의미들이 가득했던 거죠. 그러니까 내가 보려고만 한다면 시간에 쫓길 필요 없이, 남들이 하는 거 다 할 필요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삶이 윤택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05.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어려울 때

 

감정이라는 게 생각이나 신념보다 더 정확히 그 사람을 대변하고 그 사람이 누군지 알게 해주는 거예요.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아요. 예를 들어 대학생들을 상담하다보면,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죽이고 싶다고 해요.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어렵죠. 자기가 용서가 안 되고. 그럼 굉장히 자기분열적인 상황에 빠진다고요.

 

사람이 무슨 악마적인 기질이 있어서 자기를 길러준 부모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렇게 느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 부모님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것이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감정을 확 막아버리는 거죠. 그런 감정을 갖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메시지잖아요.

 

그런 마음까지 들었구나, 너 굉장히 편치 않구나, 이유가 있었겠구나, 라고 하면 그 이유를 얘기하기 시작하죠. 그러다보면 자기 감정이 나오기 시작해요. 그렇게 꺼내놓고 나면 압력밥솥에 압력이 꽉 차 있다가 마치 뜨거운 김이 빠져나간 것처럼 사람이 여유가 생겨요.

 

그러니 ‘중2병’이란 말로 어떤 감정을 눌러버려선 안 돼요. 잘난 척하는 거야? 허세야? 이런 식으로 규정하거나 판단하거나 평가해버려서,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거예요. 모든 감정은 이유가 있어요.

 

06. 여행을 가서도 무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전 코스를 하루에 두 곳 정도만 짜요. 오전에 다녀와서 쉬고, 오후에 둘러보고 쉬고. 너무 빽빽하게 계획을 짜면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질 수가 없어요. 이곳에 더 있고 싶어도 일어나야 하고요.

 

만약 한 달 여행을 한다면 나흘은 계획 없이 두세요. ‘오늘 뭐하지?’ 그걸 즐기시면 돼요. 그 빈둥거림을 누리는 게 아주 달콤해요.

 

여비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현지에서 쓸 수 있는 돈이 100만원이라고 한다면 70~80만원만큼의 계획만 짜고 나머지는 그냥 가져가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가끔 럭셔리하게 지내고 싶을 때, 비싼 거 먹고 싶을 때 선뜻 할 수 있어요. 그 여백이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요.

 

07.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에 흔들릴 때

 

나를 보고 “귀여운 척한다”, “시끄럽다”고 평하는 말도 많이 들어. 그런 얘기를 듣는다고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아. 소신을 가지고 끝까지 자기 걸 밀어붙여야 돼. 내 거니까!

 

주눅 들기 시작하면 자아를 찾질 못해. 다른 것도 신경 쓸 일이 많은데 내가 갖고 있는 것조차 남들 눈치를 보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바꿔야 하나’ 고민하면 팍팍해서 어떻게 살아. 있는 그대로 편하게 살아야지.

 

08.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주위 질문에 지칠 때

 

서울 분들은 제주도에 정착할 거냐는 질문을 많이 해요. 저 역시 서울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서울에 산다는 건 곧 정착이라는 것이 깔려 있었어요. 그런데 떠나서 보니까 오늘은 이렇게 살다가 내일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는 건데, 꼭 정착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제주에는 자유로운 혼들이 꽤 있어요. 직업도 없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알바 하면서 살기도 하고, 카페도 좀 했다가 잘 안 되면 접고… 엉망진창이거든요.(웃음)

 

영원히 그렇게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분들한테 배우는 게 있어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지 않는 삶, 누구나 당분간은 그렇게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09. 멀리 있는 멘토를 찾아 헤맬 때

 

평소 스승처럼 모시는 분이 있는데, 그 형이 예전에 “연기자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냐?”고 물어서, 별생각 없이 “열심히 노력해야죠”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열심히는 누구나 해, 어떻게 현명하게 노력하느냐가 중요하지, 임마”다.

 

그때부터 노력의 방법론을 연구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이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었다. 나보다 경력이 짧고 어린 후배한테도 연기에 대해 물었다. 혼자 10시간을 공부해야 할 것이라도 좋은 스승을 만나면 1시간 만에 습득할 수 있다.


 

취미가 많다보니 동아리 활동도 많이 하는데, 어느 동아리에나 ‘큰형님’이 있어요. 예를 들어, 사이클 선수를 꿈꿨지만 여의치 않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취미로만 사이클을 타는.

 

그런 형들의 인생철학이 아주 아름다워요. 사이클로 산을 오르려니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데, 50대쯤 된 한 분이 그래요. “야, 중력하고는 싸우는 게 아니라 춤추는 거야.” 춤춘다는 느낌만으로 사이클이 훨씬 수월해지는 거죠.

 

사실 ‘스승’이라면 대부분 성공한 유명 인사들만 떠올리는데 정작 중요한 말을 해준 사람들은 그냥 동네 형, 동아리 형이에요. 들을 땐 잔소리 같아도 그 속에 현실적으로 도움 되는 얘기들이 꼭 있거든요. 열 마디 중에 나한테 꼭 맞는 한 마디만 기억해도 배우는 게 많아요.

 

10. 유리 멘탈로 사는 게 힘들 때

 

근데 멘탈이 강하다는 건 다른 게 없어요. 고마움을 금방 금방 느끼면 돼요. 현재 상황 안에서 고마움을 어떻게든 찾아내는 게 중요해요.

 

일하다가 힘들면 일이 없을 때를 생각해요. 그것보단 지금이 훨씬 행복하거든요. 제가 필요하다는 거잖아요. 제가 뭐 긍정의 아이콘이거나 항상 생생 웃는 것만은 아닌데, 자기합리화를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운 좋게도 어려서부터 많은 일을 겪었어요. 전 정말 막 살았거든요.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건 골라서 했죠. 그랬는데도 지금 별 탈 없이 살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확신이 생겼어요. ‘남의 말 안 들어도 내 중심만 있으면 괜찮네?’

 

옛날에 바이킹이나 인디언은 10대 후반만 되면 바다에 내보내고 곰 사냥을 시켰대요. 그런 모험을 하면서 배우는 건데, 특히 지금의 한국에서는 모험의 기회가 안 주어지잖아요.

 

내가 직접 경험으로 배운 건, 남이 쉽게 흔들 수가 없어요. 방송에서 일부러라도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난 20대를 이렇게 보냈는데, 그 결과 지금 누구와 얘길 해도 위축되지 않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11.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을 고치고 싶을 때

 

저도 비슷한데요. 시간이 지나면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리지 않고도 사람들과 잘 지내는 노하우가 생기는 것 같아요. 나만의 표현 방법이랄까? 여러 말을 나누지 않아도 “식사는 하셨어요?” 물어봐줄 때 사람들과 깊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여럿이 있을 때 전 이야기를 잘 안 해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듣는 게 편해서요. 그래서 잘 듣고 있는 건데, 친구들은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웃음) 진짜 고민이 있을 때 한번 얘기해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더 좋은데….

 

12. 싫은 일에 맞서 그것을 바꾸고 싶을 때

 

혼자 힘으론 안 돼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비결은 없지만, 모두에게 유일한 비결이 있다면 ‘내 편을 많이 만든다’예요.

 

만약 제가 폭탄주와 회식을 싫어한다는 걸 혼자 꿍하게 품고 있다면, 이 문화는 바뀌지 않겠죠. 비슷한 사람들끼리 끊임없이 역적 모의(!)를 해야 돼요.

 

조금 더 용기 있고 자유로운 처지의 사람들이 먼저 말을 꺼내면, 남은 사람들이 겁먹지 말고 “맞아~ 맞아~” 리액션을 해줘서 여론을 형성하는 거죠. 저도 나름대로 손을 들고 얘길 한 거예요. 조금 더 자유로운 처지에 있으니까.

 

하지만 20대에게도 당당히 선언해, 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것 같아요. 가능할 때 의사표시를 하고, 동조하면서 이 사회의 대세를 바꾸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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