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21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조니뎁의 지적장애인 동생 ‘어니’를 연기해 65회 아카데미(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다. 그 후 디카프리오는 <타이타닉>으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우주대스타’가 됐고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크리스토퍼 놀란,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등 영화계 거장들과 함께 성실하고 알찬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타고난 비주얼과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는 태도를 갖춘 데다, 감독들마저 그를 좋아했으니 배우로서 부족할 게 없었다. 딱 하나, 오스카만 빼고. 65회 시상식을 포함해, 디카프리오는 총 네 번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다. <에비에이터>, <블러드 다이아몬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 작품도, 그의 연기도 모두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수상은 없었다. 디카프리오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로 2월 28일 열리는 88회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다시 한 번 이름을 올렸다. 영화가 공개된 후 오스카 수상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졌고 올해 초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자 사람들은 기대를 넘어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야말로 디카프리오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을 거라고. 과연 그럴까? 확률은 반반이다. 받거나, 받지 못하거나. 받을 이유가 있다면, 받지 못할 이유도 있는 거니까.

 

 

미국 역사 이야기가 오스카 입맛에 딱 맞다는 거, 나도 안다.

 

2010년엔 무려 2조 7천억원을 벌어들여 역대 흥행 수익 1위를 기록한 <아바타> 대신 이라크 전쟁 당시의 폭발물 제거반을 다룬 <허트 로커>를 택했고, <라이프 오브 파이>는 CIA 구출 전문요원의 실제 작전을 담은 <아르고>에 밀렸다. 따라서 <레버넌트>에서 19세기 사냥꾼 휴 글래스를 연기한 디카프리오의 수상 가능성이 조금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는 지금껏 늘 실제 인물을 연기해왔다. 미국의 최고 갑부 하워드 휴즈(<에비에이터>)부터 월스트리트의 억만장자 조단 벨포트(<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그때 오스카가 디카프리오에게 상을 줬던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오스카는 육체적·정신적으로 고생한 배우에게 상을 안겨줘 왔다. 일례로 86회 남우주연상 수상자 매튜 매커너히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에이즈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21kg을 감량했고, 그 노력은 ‘인생 연기’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유독 디카프리오는 노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마약·알코올에 중독되고, 강박증에 시달려도 노미네이트에 만족해야 했다. 이번에도 그는 궂은일을 자처했다. <레버넌트>에서 그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말 시체 속에서 잠을 청하고, 생간을 소스도 없이 씹어 먹는다.

 

“감정적으로 병든 인물을 그려내는 일은 내게 진정으로 연기할 기회를 준다”는 디카프리오의 태도는 존경할 만하지만 오스카가 과연 그의 진심을 알아줄지 의문이다.

 

 

관객 수는 오스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모르긴 몰라도 관객들이 열광한 영화를 아예 무시하긴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카프리오는 한발 앞선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대니 보일 감독과 <뉴스룸>의 작가 아론 소킨이 합작한 <스티브 잡스>는 기대와 달리 북미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다.

 

반면 <레버넌트>는 <스타워즈>의 독주 속에서도 2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2위 자리를 지키며 선전 중이다. 누적 수익이 1억 달러에 근접해 경쟁작 <대니쉬 걸>의 10배가 넘는다.

 

그러나 알다시피 흥행이 전부는 아니다. 디카프리오는 아마 <타이타닉>으로 전인미답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도 그해 남우주연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 과거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그는 시상식에 불참했고, 그이유가 ‘속상해서’라는 얘기가 돌았다.

 

 

오스카 시상식보다 한 달여 앞서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결과는 오스카 수상 여부를 점쳐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곤 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남·여 우주연상 부문에서 대부분 두 대회의 수상자가 일치했다. 그러나 전초전은 전초전일 뿐. 두 시상식이 똑같다면 뭐하러 대회를 두 개나 열겠는가.

 

실제로 디카프리오는 2005년과 2014년, 각각 <에비에이터>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지만 아카데미에서는 제이미 폭스(<레이>)와 매튜 매커너히(<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게 트로피를 넘겨줘야 했다. 그래서 디카프리오는 올해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고서도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뮤지컬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함께 받은 <마션>의 맷 데이먼이 눈에 밟혀서.

 

 

<레버넌트>의 제작진들은 아마 큰 무리 없이 상을 받지 않을까. <버드맨>에 이어 다시 한 번 쉽지 않은 프로젝트를 끝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감독상이든 작품상이든(아님 둘 다 받든) 뭐 하나는 받을 것이다.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벤스키는 <그래비티>, <버드맨>에 이어 3회 연속 수상을 노린다. 인공 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담아낸 영상미는 <레버넌트>의 주요 감상 포인트 중 하나다.

 

음악감독 사카모토 류이치 역시 <마지막 황제>로 오스카상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제작진은 제작진일 뿐, 그들이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을 보장할 수는 없다. 1998년, <타이타닉>은 오스카 11개 부문을 수상하며 역대 ‘최다 관왕’ 기록을 세웠지만 정작 주연을 맡았던 디카프리오는 외면당했다.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딱히 경쟁자가 없다.” 그러나 경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코 만만하지 않다. <대니쉬 걸>에서 세계 최초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화가 릴리 엘베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은 디펜딩 챔피언이다.

 

지난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을 연기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그는 올해 2연패를 노린다. <스티브 잡스>의 마이클 패스벤더 역시 잡스를 완벽에 가깝게 연기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만약 흥행에 성공했다면 디카프리오 못지않게 유력한 수상 후보였을 것이다.

 

전 세계 흥행수익 5억 달러를 넘긴 <마션>의 맷 데이먼 역시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디카프리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상 받을 사람은 여전히 많다.

 

 

우리가 디카프리오의 수상 여부를 궁금해 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러 번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1991년 <크리터스 3>으로 데뷔한 후 디카프리오는 그 누구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연기에 임했다. 그러나 노미네이트될 때마다 번번이 수상에 실패했고,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도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에게 위로가 될 만 한 사실이 있다. 알 파치노는 여덟 번 미끄러졌다. 그는 아홉 번째 도전 끝에 <여인의 향기>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끝내 상을 받지 못한 이도 있다. 후보에만 여덟 번 올랐던 피터 오툴은 결국 트로피를 손에 쥐지 못한 채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났다.

 

디카프리오는 이제 겨우 네 번이고, 아직 40대 초반이다. 상 못 받은 날들보다 앞으로 상 받을 날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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