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이 폐지됐다는 뉴스를 봤다. 2013년 9월 마지막 전경기수가 제대하고 2년 만이다. 2016년 1월 25일부로 ‘전투경찰’이라는 단어는 법령에서도 완전히 삭제됐다. 마치 05학번 선배들(=나)을 떠올리며 “아 그런 사람들이 있었어?”하며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런 단어가 됐다.
에디터는 2006년도에 군생활을 했다. 딱 10년 전이다. 전경 생활 2년, 남들 다 했던 군생활 썰을 풀어보려고 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제일 빡센 부대는 본인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때는 에디터보다 더 힘들게 군 생활을 했다. ‘힘들었다’ 라는 걸 강조하기 보다는 전경이 없어진데 대한 아쉬움에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전·의경 제대자 30만 명도 다들 이런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맞았다. 오지게 서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21세기에 그런 곳이 있나 싶다. 그런데 그만큼 추억도 많았다. 근데 남들도 재미있어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는 빼기로 했다.
먼저 전경과 의경의 차이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 에디터가 나온 전경(전투경찰)은 대간첩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 창설되었다. 간첩이 줄어들면서 집회시위 관리, 국가 중요시설 경비. 범죄 예방, 교통관리, 대민봉사 활동 등 다양한 치안업무 보조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상, 지루한 얘기는 각설한다.
전경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작위로 차출된 것, 의경(의무경찰)은 지원한다는 것이 다르다. 에디터도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받다가 “어? X발 뭐지?” 하면서 영문도 모르고 경찰학교로 끌려갔다.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시위를 막기도 하고 방범활동·음주단속도 한다.
에디터가 떨어진 곳은 충남의 한 전투경찰대. 차보다 경운기가 더 많은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이었다. 06년 10월, 자대 배치받던 첫날을 잊을 수 없다. 건물이 너무 개화기 스타일이었다. ‘고종 황제 때 지은건가’ 생각이 들 정도. 영화 <쿵푸허슬>이나 <차이나타운>에 나온 건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대략 그림이 그려질 거다.
재래식은 아니었지만 똥 향기는 은은하게 풍겼다. 샤워기에서는 계룡산 천연암반수 개씹찬물만 나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호사는 휴가 때 집에서나 가능했다. 쥐와 너구리, 그들의 배설물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이었다. 신기한 건 그 안에서 인터넷도 되고 휴대폰도 터졌다. 역시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다.
전·의경은 이경, 일경, 상경, 수경(병장) 말고도 내무생활에 필요한 직책이 존재한다. 각 부대마다 그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 부대는 바닥, 침상, 중간(챙), 열외라고 불렀다. 에디터는 밑에 신병이 안 들어와서 바닥 생활을 오래 했다.
막내는 뭘 해도 혼난다. 물을 많이 먹어도, 화장실에 자주 가도 ‘빠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군복이나 신발을 딱 맞게 신어도 혼났다. 그래서 모자는 一자 챙에 상의는 힙합 스타일로 110사이즈를 입었다. 인생에서 제일 병신 같던 시절이다. 움직일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리듬을 타는 비트 위의 나그네보다 빨리 움직여야 했다.
부대 생활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침에 7시, 눈을 뜨면 뒤통수와 고참의 손바닥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만큼 많이 맞았던 기억이 난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웃고 넘길 추억… 일 것 같냐. ##호(이름) XX끼야!
아침 점호가 끝나면 ‘취사 사역’을 하러 갔다. 취사병이 밥하는 걸 도와주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다. 그렇게 부대원 160명분의 설거지를 거의 매일 했다. 고무장갑이 있었지만 6.25 때부터 썼는지 샤워기처럼 구멍이 뚫려있었다.
차라리 맨손이 편했다. 그렇게 매일 설거지를 하니 제법 속도가 나기는 개뿔, 여전히 느려터진 속도로 반년이 넘도록 식판을 닦았다. 일찍 끝내면 또 다른 일을 시키니까 차라리 설거지를 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아침 9시쯤이 됐다. 보통은 아침 먹고 시위를 막으러 가거나 훈련을 했다. 시골 산구석에 무슨 집회가 있겠냐마는 한 열명 모이는 집회도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나갔다. 출동 준비는 별거 없다. 남색 군복으로 갈아입고 군화를 신었다.
어리바리 타지 말라고 고참들이 뺨을 두 대정도 어루만져 주고 버스에 올라타면 그만이었다(시위 진압 얘기는 다음 화에서…). 보통 집회는 해가 지면 끝이 났다. 들어와서는 다 같이 연병장에 모여서 군가를 열창했다. 허리에 손을 얹고 목청이 터져라 군가를 부르는 모습,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병신 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훈련도 잦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시위 막을 때 입는 갑옷 같은 장비를 진압복이라고 한다. 진압복 무게만 10kg. 여기에 헬멧과 방패까지 들면 20kg이 넘는다. 이렇게 곱게 차려입고 두 시간 동안 연병장을 돌았다.
태릉선수촌 버금가는 체력훈련이었는데, 군 생활하면서 실제로 어마어마한 체력이 필요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는 음식물을 내뿜기도 했고 탈진하여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고 우쭈주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시키니까 했다. 맞기 싫어서 뛰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토하면서 훈련을 하고도 시간이 남으면 축구를 했다. 미친놈들.
훈련이 끝나고 저녁을 먹는다. 실컷 설거지를 하고 들어오면 고참들이 라면을 끓여오라고 시켰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침을 뱉거나 코딱지를 투하했는데, 그럼에도 너무 맛있게 먹길래 배알이 꼴렸다.
나중에는 음모나 겨드랑이 털로 국물을 우려내거나 하수구 구멍에 걸려있는 몇 가지를 첨가하기도 했다. 신기한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맛이 좋다고 소문이 났다. 일요일도 아닌데 짜파게티를 끓여오라고 시키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발로 면을 비비기도 했던 것 같다.
저녁 점호는 여러 가지 콘셉트가 있다. 보통은 그냥 인원수를 체크하는 일석점호를 한다. 당직 소대장에 따라 가끔 독서 점호라던가, 청소 점호 등의 이상한 이벤트를 한다. 특히 청소 점호가 참 지X 맞았다. 눈에 보이는 온갖 지면을 치약으로 닦는다. 바닥은 물론 벽이나 형광등까지 닦았다. 그렇다 한들 차이나타운이 조지타운이 될 리는 만무하다. 솔직히 청소를 해도 똑같이 더러웠다.
청소가 끝나면 소대장이 흰 장갑을 끼고 먼지가 있을 만한 곳을 쓱- 닦으면서 확인한다. 그것도 엄청 얍삽하게 천정 귀퉁이라던가, 형광등 뒤쪽, 선풍기 날 등을 문질렀다. 신라호텔에서 이부진이 머무는 스위트룸도 그런데는 먼지가 끼어 있을 거다. 흰 장갑에 먼지가 묻어나는 날은 비상이 걸린다. 점호가 끝난 뒤, 막사 뒤에 담배 피우는 곳으로 집합했다. 그때부터 내리 갈굼이 시작된다.
먼저 열외가 중간을 갈궜고, 중간이 침상을 갈구고 침상이 바닥을 갈궜다. 말로 해도 알아들을 법 한데, 꼭 마지막은 액션씬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이도 동갑이면서 “형이 니네 잘되라고 때리는 거야”라며 명치를 가격하거나 심하면 불꽃 싸다구를 때리기도 했다. 내공이 약했는지 내상은 입지 않았다. 사회 나와서 마주치면 한번 줘 패고 싶었는데, 그녀석이 기도했는지 아직까지 마주친 적은 없다.
잠들기 전까지는 TV를 보거나 속닥거리면서 담소를 나눴다. 드라마가 꿀 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당시 최고의 인기 드라마는 <커피프린스>와 <쩐의 전쟁>이었다. 40살까지 동정으로 살 것 같은 찐따같은 놈들이 밖에 저런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며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군대는 온갖 뻥이 난무하는 곳이다. 아는 친구의 누나가 김태희고 송혜교였다. TV에서 액션신이 등장하면 자기가 조폭과 싸웠던 얘기도 들려줬다. ‘병신들… 난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잠이 들었다. 내일도 설거지를 해야 했으니까.
국민 주거고민 맞춤형 해결사 등장!
인스타그램 @univ20에서 4/18(목)까지 초대 EVENT 진행!
총 상금 1,740만원, 4월 24일까지 접수!
“완벽하게 끝낼 게 아니라면 시작도 안 했어요”
지금 바로 '서울시 청년월세지원' 지원하자!
코딩부터 면접까지 취업 올케어
총 150명 선발
대한민국에서 우리집 이탈리아의 따뜻한 요리 영상을 만드는 미뇨끼 이야기
문화 예술 기획, 창작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
상금 규모에 취하는 '진로 두꺼비 스타일링 콘테스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친절하고 정직한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