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푸르게 자란 보리밭 사이로 구수한 쇠똥 냄새가 일렁였다. 모두가 서울로 향하고 있을 때, 거꾸로 논밭을 가로지르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충격과 좌절감은 쉽게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마치 역모에 휘말린 선비의 귀양살이가, 독야청청 없는 낙락장송의 기분이 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추사 김정희가 귀양 시절 그린 ‘세한도

 

대입 전부터 섭섭했던 것은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엄마는 내 안부를 묻는 친척들의 전화에 지방 캠퍼스라는 말을 쏙 빼고, 입결이 몇 등급 차이가 나는 명문대 이름만 갖다 붙였다. 학원에서는 서울 유수 대학의 합격자를 집계해놓은 플래카드 숫자 안에 내가 포함됐는지 아닌지로 수군댔다. 동네 주민들은 물론, 먼 친구들은 내가 그 명문대에 진학한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늘 누군가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는 요원했다. 확실히 “어느 대학을 나왔냐?”는 질문에 “XX대학을 나왔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보다 “XX대학교 OO캠퍼스를 나왔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조금 더 긴 설명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 배경에는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본 캠퍼스 학생보다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지방 캠퍼스 학생의 ‘서자 콤플렉스’가 있다.

 

‘서자 콤플렉스’로 약쟁이가 된 조태오

 

입시 커트라인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가지런히 배열된 ‘대학의 수준 차이’라는 것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수능점수가 학생의 우열을 가른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잣대를 타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분캠충’ 취급을 당하면서 지방캠퍼스 학우들이 공유하고 있는 패배감의 연대는 팀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장래희망으로 ‘대학교수’ 같은 직업을 말하면 선배들은 낄낄대며 비웃는 식.

 

방학이면 서울의 캠퍼스로 계절학기를 수강하러 가고, 고학년 선배들은 서울에 가방끈이라도 걸치고자 이중‧복수전공을 한답시고 아예 떠나버리는 바람에 캠퍼스는 썰렁하다. 그나마 남은 학생과 교수의 60~70%도 통학버스를 타고 서울의 제집과 학교를 드나들기만으로도 바빴다. 광활한 부지를 자랑하는 지방 캠퍼스는 야간이나 주말이 되면 ‘휴교령’이라도 내린 듯 생기를 잃는다.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이 지방 캠퍼스 학생들의 이야기였다면, 유정 선배의 커다란 인기 뒤에는 서울로 언제든지 편하게 오고 갈 수 있는 ‘자차 보유 여부’ 역시 크게 한몫했겠다.

 

“선배 저는 양재역에 내려주세요”

 

“우리 집은 죽전이야”

 

 

쌩~

대학의 서열 구조 속에서 열등감을 떨치기 위해 재수나 편입에 도전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떳떳할 수 있는 학벌과 취업이 잘되는 대학을 향해 전쟁터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부모와 학교가 주입한 경쟁적 교육체제와 학벌위계주의의 선전을 완전히 내면화시킨 전사들이었다.

 

남은 이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일찌감치 수저 색깔의 견고함이 개인의 인생을 결정할 뿐, 거기에 별로 덕 될 것도 없는 학력으로 뭘 하겠냐고 자조하는 이들은 무기력했다. 그들은 지방대와 분교 출신들은 취업 전선에서 서류 통과하기 조차 쉽지 않다는 선배들의 말을 맹신했다. 또, 단체로 취업설명회를 갔다가 인사담당자로부터 대학원 편입을 권유받는 현실에 한 번 더 좌절했다.

 

나머지는 그저 진지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지방으로 밀려난 자신의 위치와 학교 이름 간의 격차 속에서 갈등하면서도, 여느 평범한 대학생과 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돈독한 선후배 관계를 만들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시골의 전원생활은 도시 속에서는 상상도 못 할 정겨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고, 여성과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자신이 위치한 경계에 선 마이너리티들에 대한 차별을 본질적으로 체감하고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학, 그러니까 정부와 재단은 이런 학생들의 갈등과 심리상태는 염두에도 없이, 그들이 스스로 어렵게 ‘구조한’ 정체성을 도마 위에 얹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유혹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난해 교육부가 실시한 ‘대학구조조정평가’로 말미암아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학과 통폐합’이다. 취업률을 중심으로 학과를 재편하면서 구성원들의 소속을 완전히 바꿔 정체성을 뒤섞는다. 학교 홍보담당자들은 입학설명회를 열고 학벌 세탁이 가능하다는 뉘앙스로 ‘소속 변경제도’와 ‘복수전공’ 등 ‘학내 교류’를 은근히 강조하면서 학생유치에 뛰어든다.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中, ‘연대생의 일침’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국내 14개, 한 학교당 평균 정원이 오천 명에 이르는 거의 모든 지방 캠퍼스의 졸업식이 서울에서 열린다는 것이다. 이는 학내 구성원끼리의 차별과 불안정한 심리를 무시하고, 명문대라는 페인트를 덧발라주는 학교 측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졸업식이 정든 교정과 선생님, 학우들과 이별하는 자리임에도, 지방 캠퍼스 학생들은 마지막까지 본체의 수혈을 위해 생산된 클론의 역할로 본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마무리 짓는다.

 

XX대학교 OO학과라고만 덜렁 찍힌 졸업증명서를 받고 나온 나의 졸업식은 초라했다. 여러 곳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그 공간 속에 기억할 만한 추억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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