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휴가 나온 군인 포스

 

크리스 에반스의 파파라치 컷을 처음 본 건 패션 잡지가 아닌, 유머 게시판이었다. 패션 센스가 형편 없기로 소문이 자자한 브루스 윌리스의 한결같은 난닝구 사랑 파파라치 컷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그렇다고 이들이 닉 우스터 같은 프로 멋쟁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를 들어 본 기억은 없다. “아주 꼴값을 하고 있다”라는 엄마의 핀잔을 들어가며 ‘패션쇼’하는 수고를 더는 확고한 편의성 때문일까? 아니면 나 편한 대로 입겠다는 어떤 호연지기랄까? 이 정도만 입어도 밖에 나가서 욕먹지 않는다는 합리적 판단 때문일까? 하여튼 이들의 파파라치 컷에는 늘 제멋대로 무릎이 튀어나온 청바지와 아울렛 가격에서도 한 번 더 세일한 것이 분명한 철 지난 디자인의 티셔츠로 ‘내맴룩’을 선보인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패션 센스 없는 이들을 꼽을 때는 한결같이 브루스윌리스나 크리스 에반스가 이름을 올린다. 옷더미가 수북이 쌓인 월마트 할인 매대에서 아줌마들과 각축전을 벌이며 매대 깊숙이 손을 넣어 쇼핑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패션은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였다. 특히 고화질 DSLR 사진 안에서 꿈틀대는 쫄티 속 크리스 에반스의 유두를 목격할 때면 필자가 애정하는 아이폰 6S을 바닥에 떨어뜨릴 때만큼이나 더 빨리 심장이 뛰었다.

 

다이하드의 포스는 어디갔나요 브루스 아재ㅠㅠ

 

그래서 나는 혹시 모를 이러한 수근거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옷 잘 입기로 유명한 배우 애덤 브로디나 프랑스 패션 블로거 조단 헨리온의 룩을 열심히 참고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패션 블로그나 카페에서 그토록 울부짖는 ‘남친룩’을 자기화해보려고 사토리얼리스트 같은 패션 블로그에도 매일 출석 도장을 찍었다.

 

모니터가 고달프도록 항상 남자들 사진만 골라봤다. 여기서 얻은 팁을 토대로 대규모 필수 구매 목록을 작성해서 버쉬카나 자라 같은 SPA 브랜드 매장을 돌아다니며 옷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스타일은 정해놓고 컬러별로 여러 벌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마치 <킹스맨> 해리 역의 콜린 퍼스처럼. 그 자체로 난 애덤 브로디요, 조단 헨리온일 것이라 착각했다. 워싱된 블루 계열 옥스퍼드 셔츠. 자연스러운 핏의 생지 데님 팬츠. 낡아 보이는 고동색 벨트로 완성한 이토록 고상한 룩이라니! 당장에라도 케임브리지대학 캠퍼스 잔디 위에 누워 노엄 촘스키의 대담문을 읽으며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걱정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단 헨리온. 국내 쇼핑몰 사진과 다른 건 배경 뿐…

 

문제는 이 옷을 그대로 갈아입고 매장 밖을 나섰을 때 발생했다. 마치 똑같은 모양의 옷을 입은 S~XL 사이즈의 미니언들처럼 패션 데칼코마니들이 강남 한복판을 휘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스무리한 스타일은 세계 어느 곳을 가나 존재하므로 참을 수 있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지하철 역사 전신 거울이나, 거리에 즐비한 입간판과 함께 찍은 셀카, 김밥천국 상반신 거울에서 목격된 필자의 모습이었다. 난 동양과 서양 문화의 경계에 존재하는 불편한 무언가였다. 마치 칼 라커펠트가 동대문 평화시장 근처 퀵 오토바이 사이에 존재하는 이물감 같은 느낌 말이다.

 

좀 낡은 반스 운동화. 몸에 잘 맞는 데님 팬츠.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됐지만, 성의 없어 보이도록 바지 안에 집어넣은 옥스퍼드 셔츠를 입은 케임브리지대학생이 김천에서 ‘라김세트’를 먹는 처량함과 어색함이라니… 허무한 패션 사대주의에 대한 자괴감이 머릿속에서 신라면 면빨처럼 격렬히 오글거렸다. 아, 차라리 얼마 전 내가 손가락질했던 브루스 윌리스나 크리스 에반스의 옷이라도 입었으면 덜 민망했을 것을…

 

영화 [인 더 랜드 오브 우먼] 中. 자알 생겼다.

그래서 스타일링을 바꿨냐고? 아니, 아예 신경 자체를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보고 감명 받았던 애덤 브로디의 패션은 그가 사는 미국 땅에 있을 때 가치가 있다. 몸에 딱 맞는 디젤 청바지를 입고 센트럴파크를 산책한다거나, 깅엄체크 셔츠의 소매를 반쯤 걷고 맥주를 즐기는 프리한 자태는 그가 속한 상황과 장소가 적절히 수반될 때 빛난다.

 

10대들의 흡연 메카인 천마근린공원을 산책하거나, 회사 앞 비어호프 10인석에 끼어 카스 맥주를 마시는 내 생활 반경에 이 옷들은 거추장스럽다. 어쩌면 애덤 브로디의 스타일보다 나는 그가 먹고 노는 공간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생활 환경과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는 내 일상에는 어쩌면 후줄근한 난닝구와 제멋대로 무릎이 튀어나온 청바지가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브루스 윌리스가 즐겨 입던 바로 그 옷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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