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깨나 친다는 사람이 다 모였다는 허언증 갤러리(이하 허갤). 웃긴대학 지식즐 이후 ‘드립’이 이렇게 화제가 된 인터넷 공간은 오랫만이다. 허언증이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진짜처럼 지어내서 말하는 병이다. ‘N포 세대를 위로하는 거짓망상’이라 보는 시각도 있는데 나는 이런 사람을 20대 불쌍론자라고 부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비슷한 시각이랄까. 너무 가셨다.

 

징징징…

 

허갤은 대놓고 ‘거짓말’을 자랑하는 공간이다. 사회적 이슈나 민감한 소재도 풍자화 되는데 글 하나 하나가 발칙하고 기발하다. 소설가 김영하는 TED 강연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에서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스토리 텔러로서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허갤은 상상력을 증폭시켜주는 공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허갤러의 글은 막 갖다 붙이는 것 같지만 레전드로 꼽히는 글은 굉장히 창의적이다.

 

특징 몇 가지를 꼽아 봤다. 이것만 알면 당신도 멋진 허갤러가 될 수 있다.

 

1. 빙의형 –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어라

가장 쉬운 허갤 드립의 한 형태로, 작성자 스스로가 인간이 아님을 어필하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방식이다.

 

스스로를 침팬치라 말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침팬치와 주 관계를 맺는 ‘사육사’를 드립으로 엮은 것도 좋은 시도였다. ‘살짝 부은 셀카’, ‘행사 문의’라는 이야기를 마치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활기를 넣었다. ‘동물로서는 제가 처음인가요?’라는 제목이 반전을 주지 못했다는건 약간 아쉽다.

 


반면 이 쪽은 제목으로 반전을 준 모범적인 경우라 하겠다. 외계인 주제에 교통 체증으로 귀성길 스트레스를 받을 것 처럼 표현한 것이 웃음 포인트.

 

인텔이 출시하는 하드웨어 성능이 너무 좋다보니 “외계인을 잡아다 고문한다”는 유명한 드립이 있는데, 이를 사진과 엮어 기발하게 표현했다. ‘문과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드립 역시 참신했다.

 

2. 의미 부여형 – 사물의 본래 의미를 비틀어라

원래 사물이 갖고 있는 의미를 비틀며 웃음을 자아내는 방식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나 유명한 작품 등을 자신의 소장품 정도로 전락시키는 허세를 부린다.

 

진시황릉이 순식간에 피규어 창고로 전락했다. 유물을 고작 몇 만원 짜리 취미의 영역으로 전환시킨 포인트가 재밌다.

 

 

‘9급 공무원 시험 가산점’이라는 드립이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소재를 살렸다. 이 드립으로 노벨상 수상은 워드 2급 정도의 의미를 갖게 된 셈. 참고로 노벨 수학상이라는 건 없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각성한 장면이다. 컴퓨터 언어로 보이는 세상을 전기에 감전되었다는 의미로 표현했다. 매트릭스의 세계에 빠지게 된 계기를 ‘전구 갈다가’라는 사소한 이유로 돌린 것이 웃음 포인트.

 

3. 가짜 능력자형 – 무능력을 포장하라

누가 봐도 하찮은 재주를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별 거 아닌 사진을 올려 놓고 텍스트로 허세를 부려야 하니 글빨이 있어야 한다. 쉽지 않다. 인터넷에 떠도는 짤방보다 자체 제작한 이미지가 더 효과적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잡동사니를 엄청난 발명품으로 둔갑시켰다. 주목할 것은 그럴싸해 보이는 노트인데 근의 공식과 방정식, DNA 이중나선구조라는 전혀 엮이지 않을 것들을 함께 끄적여 놨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라는 제목 역시 본문 드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장난감 공룡 뼈를 가져다가 실제 공룡 표본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천년부경용, 경추골, 미추늑골 등 생소한 명칭을 섞은 게 위트를 더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작성하는 데 애 좀 먹었을 게시물이다. 제목부터 얄짤없이 초성을 한자로 표현해 궁금증을 유발하니 클릭해 볼 수 밖에 없다. 자세히 봐야 이해할 수 있다는 건 단점이면서도 소소한 재미다. 부적절한 단어가 조금 섞여있긴 하지만 공자 사진과 한자, 한글 초성까지 세 박자가 고루 콤보를 이루는 글이다.

 

4. 은연중 자랑형 – 허세에 연막을 쳐라

“어유, 흥분하다보니 영어가 나왔네요”라는 허세 드립이 유행할 때가 있었다. 비슷한 부류의 드립으로, 게시자의 의도는 제목과 전혀 상관없다.

컴퓨터를 자랑하고 있지만, 요점은 그게 아니다!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에 비친 게시자의 얼굴이 보이는가. 합성이 어설퍼서 더 웃기다. 더할 나위 없이 발칙한 글이다.

 

 

역시 비슷한 방식의 게시물이다. 스마트폰에 비친 원빈의 얼굴이 측은해 보인다. 게시자는 더할 나위 없이 측은하다. 의도했는지는 불분명하나 폰 주’웟’다라는 오타가 더 없어보이게 만든다.

 

 

변변찮은 한 끼의 상징인 컵라면과 부의 상징 돈다발이 대비되는 구조. 단순히 ‘라면을 먹는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처럼 능청맞다. 자판기 커피잔 옆에 외제차 키를 두는 격.

 

5. 무식형 – 무지를 자랑하라

상식에 가까운 정보를 “나는 이렇게 알고 있다”고 우기는 방식이다. 귀중한 것의 의미를 사소하게 비틀어버리는 2번과 달리 이쪽은 사소하고 흔한 것을 “이건 대단한 거잖아요, 맞죠?”라고 표현한다.

 

 

누가 봐도 에펠탑이 아닌 구조물을 에펠탑이라고 표현한 것이 포인트다. 웅장하게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아래에서 찍은 이미지가 애처롭지만 재미있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도 이 배경은 익숙할 거다. 콜롬비아 영화사 로고가 자유의 여신상을 닮았다는 이유로 구라를 치고 있다. 이런 부류의 글에 “무식하다” “병신이네”라는 댓글을 달지 말고 “부럽네요” “듣던 대로 웅장하군요” 등의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이 허갤의 미덕이다.

 

이 모든 상황을 진지하고 태연한 말투로 쓰면 완성된다. 너무 유려하게 쓰려고 해도 게시글의 분위기를 망칠 수 있으니 유의하자.

 

허언증 갤러리의 글은 모조리 거짓말에다 과대망상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쉽게 상상을 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은 보기 드물다. 무시하지 말자. 갤러들이 서로 이런 출중한 개드립영감을 주고받다 보면 허갤에서도 아이작 아시모프 같은 위대한 SF작가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자, 이제 나도 원고를 다 썼으니 작품을 집필하러 가야겠다. 메트로 신춘문예 판타지 부문 연속 수상이 올해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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