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의 변호사

삼성전기 재직 중 성희롱을 당했다. 4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회사를 상대로 승소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퇴사 후 로스쿨에 입학했고, 현재 ‘늘 피해자의 옆에 서는 변호사’로 살길 다짐하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해마다 대학가에서 흘러나오는 비슷한 파문들. OT에서의 성희롱, 선후배 군기, 교수의 갑질…. 아무리 맹렬히 혀를 ‘쯧쯧’ 차도, 언론에서 ‘말세’라고 비난해도 이런 일들은 왜 계속 일어나는 걸까?

 

이은의 변호사는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음표’라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예민한 물음표.

 


 

재밌는데 왜 그래?

새 학기가 되면 꼭 OT에서의 성희롱 문제가 대두돼요. 야한 게임을 한다든지, 방문에 성적인 제목들을 붙여놓는다든지….

그 자리에서도 불편한 사람이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다수가 아무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손들고 “이게 뭐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특히 신입생들은요. 이런 상황에선 학교 당국의 역할이 필요해요. 당일엔 교정하지 못했더라도 학교에 돌아와선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야죠. 기획한 친구들에게 사과 대자보를 쓰게 하거나 약간의 징계가 이루어지는 식으로요.

 

해프닝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처리했느냐가 조직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신입생들 역시 그 사건이 다뤄지는 과정을 보며 학습해요. ‘아닌 것’에 대해선 제재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손 번쩍 들고 문제 제기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진지충’처럼 보일까봐 어렵기도 해요. “재밌자고 그런 건데 왜 그래?” 혹은 “예민하다”고 말하니까요.

OT 가서 야한 게임 하는 것, 학과 술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섹드립 치는 것, ‘여자는 어떻고 남자는 어떻고’ 이야기하는 것 모두 같은 문제예요. 그런 게 호탕하고 재밌는 건 줄 아니까.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술자리 문화를 배우는 시점이 스무 살이잖아요. 그때 선배들이 이야기해줘야 돼요. 누군가는 재밌자고 한 이야기에 상처받을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재밌어서”, “노는 건데” 이런 말들 안에서 일상화될 수 있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어야 해요. 특히 지금처럼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배운 세대에게는요. 내 말이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대학을 졸업한다면, 이미 늦어버려요.

 

그렇다면 어떤 자리에서 불편함을 느꼈을 때, 어떻게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요?

물론 가장 좋은 건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데미지를 줄이는 방법이라면 일대일 대화죠. 개인적으로 대면하면 상대가 나쁜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선배, 저 사실 아까 되게 힘들었어요. 그런 말 안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야기하고 잘 마무리하면 돼요. 그 사람도 피드백이 전혀 없었을 때보단 의식이 될 거예요. 그리고 저라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할 것 같아요. 불편했다고. 그런 이야기가 누군가는 싫었다는 사실이 커뮤니티 안에서 담론의 기회를 만드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실 지금의 20대에겐 ‘담론’이란 게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에요. 일상화된 폭력을 잘 캐치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불편한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게 예민함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첫 단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 무거운 이야기 하는 거 싫어하잖아요. “왜 굳이 분위기 처지게?” 그런 태도가 다른 사회적 문제를 바라볼 때도 드러나요. 불편하고 복잡하고, 당장 나랑 관련도 없어 보이니까 그냥 침묵 하는 거죠. 하지만 내가 회피했던 것들이 평생 나를 비켜갈 거란 보장도 없거든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10명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만 끈질기게 접근하면 좋겠어요.

 


 

 

선배가 까라면 까는거지

후배들에게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집합’ 명령을 하는 행동의 기저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선배가 까라면 까야지!”

선배에 대한 예우, 물론 있어야 돼요. 나보다 세월을 먼저 산 사람을 존중하는 거 아름답지. 그런데 그걸 넘어서는 걸 요구하는 순간, 불법 행위예요. 날 침해하는 거잖아. 그럴 땐 몇 대 맞고 바로 신고해야 돼요. 그래야 맞다가 죽는 일이 안 생겨요. 처음 때렸는데 죽는 경우 거의 없어요. 계속 때리다보면 가학이 늘죠.

 

이런 사건들은 거의 ‘내부 고발’의 형태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잖아요.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 내부 고발자가 되는 것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 있을까요.

제가 성희롱 당했다는 걸 회사에 고지한 후에 다른 부서로 옮겨졌거든요. 저랑 밥도 같이 안 먹고, 이야기도 안 하고, 1년 동안 일도 안 줬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그러니까 사람이 우울해지더라고요.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결국 인사팀에 찾아갔는데, 그쪽에서 보기엔 이제 일이 너무 커진 거예요. 성희롱 문제 제 기 이후에 회사에서 불이익을 줬다는 걸 인정하면 배상의 범위도 늘어나고 복잡해지거든요. 그때부터 전면 부정을 하기 시작해요. 그런 일은 없었고, 네가 진급 안 되고 고과 안 나온 건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 순간 내 자존감을 건드린 거예요. 내가 일을 못 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 뭐라는 거야? 그래서 소송을 결심한 거예요. 침범당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네가 삼성인들, 나한테 돈을 주는 회사인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나’잖아요. 사실은 용기의 영역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리고, 오히려 재판 가고 언론에 알려진 후엔 왕따 못 시키더라고. 문제가 되니까. 싸움 시작하면서 차라리 살 만해졌어요.(웃음)

 

사실 우리는 가해자나 내부 고발자가 되기보단 주변인인 경우가 훨씬 많잖아요. 주변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옆에서 편견 없이 ‘네가 옳은 것 같아’ 말해주는 딱 한 사람이 내부 고발자를 지탱시켜요. 그런데 우리는, 그 한 사람이 될 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나요? 저는 젊은 친구들에게 내부 고발자가 되라고 등 떠밀고 싶지 않아요. 다만 내가, 누군가 무거운 짐을 지고 나왔을 때 그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면 말없이 손 한번 쥐어주고 올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10명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거죠. 동조하는 두세 명에겐 “너도 이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해줬으면 좋겠어” 부탁하고요. 내부 고발자는 어차피 결심했기 때문에 계속 싸워요. 그 싸움이 진행될 수 있게 이야기를 퍼뜨리고, 조금의 용기를 주는 것. 주변부가 해야 하는 고민은 이런 거죠.

 


 

 

 

을인데 별수 없지

사적인 심부름부터 성희롱, 폭행 등 가혹 행위까지. 교수의 갑질을 당하면서 스스로를 ‘노예’라고 자조하는 대학원생들이 많아요.

한국에선 교수 인맥이 너무 중요해요. 교수님이 강의 꽂아주고 기업에 추천해주지 않으면 대학원생들이 먹고살 방법이 없는 거야. 교수 의존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왜 그런 갑질을 당하고만 있었어?” 물을 수 없죠.

 

대학원생들의 애환을 다룬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이란 웹툰에서 이런 장면이 나와요. 교수의 성희롱에 충격받은 후배가 “원래 이런 거냐”고 묻자 선배가 “원래 그런 거”라고 답해요.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 그 사람만 떨어져 나가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요.

이런 시스템을 학생들더러 변화시키라는 건 가혹한 이야기예요. 법과 제도가 해야죠. 저번에 뉴스를 보는데, 상습적 성희롱을 한 교수를 강사가 고발했어요. 그런데 학계가 좁으니까 이 강사가 강의할 곳이 없어. 인터뷰를 하는데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괜찮다”고 말하는 거예요.

 

아뇨, 안 괜찮아요. 법원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만들어줘야죠. 교육부와 연계해서 해당 강사를 1~2년은 더 채용할 수 있게 학교에 공문을 발송한다든지, 불이익을 주는 학계에 지원금을 삭감한다든지. 자금이 있다면 제도를 운용할 수 있는 폭은 굉장히 넓어요. 그런데 그걸 안 하잖아. 언론에선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직장을 잃었단 얘기만 하고. 그럼 앞으로 어떤 미친 사람이 선뜻 “이건 아 니다” 말하겠어요?

 

제가 인권 변호사가 아니라 일반 변호사로 살아가는 건 제 나름의 운동이에요. 봐라. 내가 문제 제기 했고, 시끄럽게 굴었고, 얼굴이랑 실명 다 까고 나왔어. 그런데 그 이력을 딛고 잘 먹고 잘 살잖아. 큰일 나지 않아요. 그런데 미디어가 자꾸 ‘큰일 나는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사회가 학습해요. 내부 고발자의 삶은 고달픈 것이라고.

 

그리고 점점 ‘을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길들여지는 거겠죠. 내가 ‘을’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교와 직장을 대단하게 여기지 마세요. 소중히 여기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연연하지 말란 뜻이에요. ‘어떻게 들어온 명문대인데’, ‘이 회사 나가면 비정규직인데…’ 그것들을 유지하느라 자꾸 거래를 해요. 나의 자존감을 놓고. 내가 을이지만, 그 서열이 인격의 차등 문제는 아니잖아요. 내 행복과 자존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고민해본 적 있다면, 베팅을 해야 하는 순간에 오히려 가벼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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