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집애가 또 연락이 끊겼다. 새로운 남자를 만난 거겠지. 이런 인간을 친구랍시고 둔 내 잘못이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에 위로한답시고 술 사주고 남친 욕도 같이 해줬다. 그녀는 “나만 봐주길 원하는 게 그렇게나 이기적인 일이었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역시 친구가 최고”라며 “남자들은 다 똑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연애만 하면 연락이 끊어지고, 헤어지고 나면 내 앞에 다시 나타나는 이 원수를 떠올리며 느낀 바가 있어 글을 쓰기로 했다. ‘필요할 때만 찾는 나쁜 친구’에 대한 얘긴 아니고, 이 여자의 ‘연애가 조금도 발전하지 않는 이유’에 관한 것이다.

그녀가 한 것

사랑꾼에게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사랑하는 그를 만날 시간을 늘리기 위해 다른 것들을 조금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연애하는데 하나도 도움 안 되는, 동성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을 확 줄이고(내가 떨궈져 나간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스터디 모임을 그만뒀다.

주말은 그와 보낼 예정이므로 이틀 내내 시간을 비워뒀고, 주 중에도 언제 그가 “보고 싶다”며 연락해올지 모르니 가급적 바깥 활동을 자제했다. 핸드폰은 잠드는 순간까지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가 한 것

그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고 한다). 모든 여분의 시간을 그녀를 만나는 데 썼고, 둘은 내일이 없는 연인들처럼 열정적으로 서로를 원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는 더이상 처음처럼 그녀에게 올인하지 않았다. 가끔은 문자 답장이 늦기도 하고, 그녀가 아닌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주말에 하루 정도는 푹 쉬고 싶다고 그녀와의 데이트를 다음으로 미루기도 했다.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이 변했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그녀가 하면 안됐던 것

CBS 드라마 ‘슈퍼걸(Supergirl)’ 중에서

그녀는 그의 변화에 초조해졌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래와 같이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은 입 밖으로 나와 그에게 쏟아졌다.

① 왜 처음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②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그렇게 좋아?

③ 너무 신나서 내 생각 따위 나지도 않는 거야?

④ 내가 자길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데!

문제를 내고 싶다. 다음 중 그녀가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은? 정답은 ①, ②, ③, ④, 전부다. 답이 있으면 해설이 있어야 하니 간단히 설명하겠다. 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 사랑하는 것’이란 전제가 틀렸다.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또한 노력의 일부다.

② 당연히 좋다. 연인과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말이지. ③ 저 문장을 한 단어로 줄이면 ‘집착’이다. ④ 보상심리는 이럴 때 써먹는 게 아니다. 한 달 빡세게 다이어트 하고, 끊었던 간식을 한 입 먹을 때 써라.

그녀가 해야 할 것

매시간 그의 연락에 집착하며 자신이 연인으로서 가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을 그만두자. 연애가 끝나고, 잊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위로받고, 자신이 사랑의 피해자임을 확인하는 것도 이제 그만두자. 뻔한 얘기지만, 제발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자.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시도하고, 공들여 피부 홈케어도 하고, 미드에 취미도 붙여보고, 마일리 하체나 강하나 하체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해보자. 밖으로 나가서 뛰어도 좋다. 끊었던 스터디 모임도 나가자. 혼자 혹은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좋고, 공부와 관계없이 보고 싶은 책을 읽자.

이것도 저것도 안 되고 마음이 힘들다면, 심리치료도 생각해보자. 약은 약사에게, 치료는 의사에게, 펌은 미용사에게. 다시 사랑하게 되었을 때도, 나를 아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아껴주어야 상대도 나의 귀함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