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같이 매섭게 불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아직까진 쌀쌀한 기온에 코트 앞섬을 꼭 움켜쥐면서도 바람에 조금씩 봄 내음이 묻어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날이 풀리면…….’
잠시만 밖에 있어도 뒷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추웠던 지난겨울, 내내 이 생각을 했었다.
‘날이 풀리면 어디라도 가야지’
어딘가 멀리 가는 그런 거창한 여행이 아니다. 그냥 걷고 싶었다. 천천히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곳을 꼭 가야겠다 생각했다.
첫 번째로 떠난 곳은 ‘강풀 만화거리’. 강동구 성내동에 있다. 실제 웹툰 작가 강풀이 살고 있는 동네다. 평소 갈 일이 없는 곳이라 낯설었고 그만큼 더 설레었다.
강동역 4번 출구로 나와 쭉 걸어가다 보면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만석 할아버지와 이뿐이 할머니가 마중을 나와 있다. 그들의 환한 미소를 보니 본격적으로 첫 봄나들이가 시작되는 기분이 든다.
이곳을 느끼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동네 곳곳에 숨어 있는 강풀 만화 캐릭터들을 만나면 된다. 바닥에는 노란 별들이 길을 밝혀준다. 별들은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듯 저 골목 너머까지 이어져 있다. 곳곳에 표지판도 있다.
노란 별과 화살표를 따라 걷던 중 문득 뒤를 돌아봤다. 분명 잘 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보지 못했던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 앞에 있던 것만 보다가 지나쳤던, 미처 보지 못했던 벽화들이었다. 아차 싶었다.
그대로 뒤로 돌아서 다시 입구로 돌아갔다. 천천히 걸어보자. 그리고 그때부터 숨바꼭질 술래가 된 듯 골목 구석구석을 살폈다.
매일같이 내 시선은 바로 앞을 향해있었다. 걸을 때도, 버스에서도, 일할 때도. 그래서 어느새 그게 익숙해졌었나 보다. 앞만 보는 게.
‘강풀 만화거리’는 그래서 더 특별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오른쪽 골목도, 왼쪽 주차장도, 뒤쪽 전봇대도 골고루 봐야 한다.
방향 표지판에서 시선을 조금 올리면 <당신의 모든 순간> 속 배추나비가 하늘로 훨훨 날아오른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뒤를 돌면 분명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나무 벤치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곳곳에 숨어 있는 고양이를 찾는 재미도 있다. 이른바 ‘괭이말 아이들’이다. 성안마을 주민들은 2012년 태풍에 쓰러진 나무로 고양이 인형을 만들어 골목 구석구석에 숨겨뒀다.
그리 넓은 동네가 아님에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보물찾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그렇게 타박타박 계속해서 걷다 보면 뜻밖의 장소가 보인다.
지금은 생소한 동네 이발소. 사람이 있나 싶어 문가에 서성거리니 안에 있던 이발사 아저씨가 문을 활짝 열고는 들어오라며 손짓하신다. 날이 추우니 잠시 쉬어가라며 기꺼이 소파 한쪽을 내어주신다.
그리고는 반듯이 누워 있는 손님에게 다가가 익숙한 손길로 면도를 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면도칼로 하는 옛날 면도 방식이다. 50년 경력이 담겨 있는 주름진 손이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고 진중하게 움직인다.
잠시 멍해졌던 정신을 부여잡고 천천히 이발소 안을 둘러봤다. 오래된 가위, 이발 기계, 잡지, LP판 등이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이발사와 50년을 함께 해온 것들이다. 물건에도 그만큼의 세월이 깃들어 있다.
잠시 몸을 녹인 후 다시 골목으로 나왔다. 아니, 골목으로 들어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직 가지 못한 골목에 들어서니 또 색다른 기분이다. 벽과 나무와 창문이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작품을 이루고 있다. 골목 여기저기 위트도 녹아 있다. 폐타이어가 먹음직스런 도넛이 되는가 하면 폐키보드는 도트그림으로 재탄생했다.
어느새 마지막 벽화다. 골목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바람마저 사그라들어 따스하다.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인데도 유독 넓게 느껴진다.
붕어빵 굽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갑작스레 입맛이 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천천히 골목길을 걷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다. 식사 시간이 지났음을 깨닫고 나니 허기가 몰려온다. 내친김에 강풀 만화거리 옆에 있는 성내 전통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성내 전통시장은 강풀 만화거리의 29번 벽화 옆길을 쭉 따라가면 나온다. 입구에 다다르니 동네 시장 냄새가 풍겨 온다. 어디선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없는 것은 없다. 특히 분식, 빵, 족발 등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하다. 지친 다리를 풀어주며 시장의 맛을 느끼기엔 제격이다.
시장에서 조금 더 벗어나면 천호동 쭈꾸미 골목도 나온다. 천호역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거리에 들어서면 ‘쭈꾸미’ 간판이 온 거리를 뒤덮고 있다. 어딜 가든 맛은 보장한다 하니 가장 맘에 드는 간판을 찾아 들어가 보자.
강풀 웹툰을 보면 따스한 감정이 전해진다. 이곳도 그렇다. 마치 원래 알던 동네인 것처럼, 걷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진다. 평소 걷던 빠른 걸음 대신 느린 걸음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며 숨바꼭질 술래가 된 듯, 골목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던 곳. 성안마을 강풀 만화거리.
Photographer 유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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