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하기 전엔 ‘냉장고 로망’이 있었다. 칸칸이 싱싱한 제철 과일을 채워놓고 기분 따라 골라 먹거나, 유기농 채소를 주문해 건강한 요리를 해먹겠다는 꿈.
하지만 지금 내 냉장고에는 채소라곤 들숨과 날숨을 미약하게 쉬고 있는 파와 양파, 피망 쪼가리 몇 개뿐, ‘킨포크’스러운 삶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냉장고 앞에서 하는 고민은 ‘오늘은 뭘 해 먹을까’가 아니라, ‘썩기 일보 직전인 재료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난 요리 고자니까 늘 가장 쉬운 방법을 고른다. 볶는 것이다. 그때 단 하나의 치트키를 쓸 수 있다면 당연히 굴 소스다.
제각각이었던 재료들이 굴 소스를 만나면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먹음직스럽게 섞여든다. 발효된 굴의 풍미가 사악 스며들면서 감칠맛을 내주기 때문에 전체적인 맛의 퀄리티도 덩달아 올라간다. 오합지졸들이 좋은 리더를 만나 괜찮은 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로 변모한 듯한 느낌이랄까.
게다가 불을 세게 올리고 굴 소스를 허세롭게 뿌리면 ‘킨포크’는 아니어도 잠깐이나마 이연복 셰프가 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렇게 내 냉장고도, 곰손도 정신 승리를 한다. “나 좀 괜찮은데?”
1. 중국집 불 맛의 비결, 기름을 두르고 파를 먼저 볶는다. 그 후 냉장고에서 모든 죽어가는 채소들을 넣어줘야지. 오늘 밤에도 프라이팬에 기름이 스치운다.
2. 밥통 안에서 짜게 식은 밥을 넣어 새 생명을 부여해준다.
3. 채소가 대충 익으면 대충 찢은 크래미를 투하. 맛있다고 계속 입으로 가져가면 그냥 볶음밥이 될 것이니 알아서 하길.
4. 계량 스푼 따위 없다. 굴 소스를 밥 먹는 숟가락 한 술만큼 넣고 볶는다. 이제부터 차원이 다른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5. 계란 님 오시니 밥들이 알아서 길을 비킨다. 계란 프라이가 될 때까지 멍 때리면 안 되고 재빠르게 섞어준다.
6. 과정은 대충이지만 결과는 예쁘게. 우아하게 앉아서 게살볶음밥을 음미한다.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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