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에 30초 차이로 버스를 놓쳐서 지각했고, 프린트해 둔 과제는 집에 놓고 왔다. 연강이라서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4시에 모이기로 했던 팀플 조원들은 5시가 다 되어서야 나타나 “회의는 이따 카톡으로 하죠?”라고 말했다.
아. 사는 게 힘들다. 온종일 무거운 책을 메고 다녔더니 어깨가 무겁다. 사물함 들렸다가 집에 가야지. 도착하고 씻으면 10시가 넘겠지? 아, 과제 하고 자야 하는데. 이렇게 아등바등 산다고 뭐가 달라질까. 취직은 할 수 있을까. 책이 아니라 인생을 내려놓고 싶다. 흑흑.
사물함 문을 열었는데 조그만 박스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오늘도 수고했다는 쪽지와 함께.
누가 두고 간 걸까? 혹시 누가 날 좋아하나? 에이 그럴 리 없지. 친구가 장난친 걸 거야. 어쨌든기분은 좋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싶다.
사람은 원래 이런 별 것 아닌 것들에 위로 받는 법이다. 초콜릿, 과자, 내 이름이 적힌 쪽지 같은 것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은 될 거요.”
레이먼드 카버,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中
착한 마음은 쉽게 전염된다고 했던가? 시무룩해 보이는 친구의 사물함에 몰래 초콜릿을 넣어 두던 마음이 커지고 커져, 어느새 캠페인 단위로 발전했다.
시작은 지난여름, 익명 기반 SNS ‘어라운드’에서 입소문을 탄 ‘달콤창고’. 지하철 보관함에 간식과 응원의 쪽지를 채워 두면, 다음번에 보관함을 찾은 사람이 그것을 가져간다. 선물을 받은 이는 자신의 능력껏 다시 상자를 채워 두면 된다. 이를테면 “비 오는 데 우산 챙기라”는 메시지와 함께 우산을 받은 이가, “고맙다”며 초콜릿을 두고 가는 것이다.
비슷한 캠페인이 설날에도 진행됐다. 병원 검색 앱 ‘굿닥’은 고향 갈 때 챙겨 가라며 파스, 밴드, 비타민 C 등을 지하철 보관함에 넣어 두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일. 그 릴레이가 1년 이상 지속되자, 이젠 하나의 문화가 됐다. 가장 최근에는 오리온이 개강을 맞아 학교 사물함에 새로 나온 오!감자와 노트, 펜 등 학용품을 넣어 두었다. 선물을 실제로 받은 친구는 신이 나서 인증샷까지 보내왔다. 누가 길 가다 나눠 준 거였으면 무심코 받았을 작은 것들이지만 예쁘게 포장되어 있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단다.
초콜릿, 과자, 노트, 펜, 비타민 C.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팍팍한 삶에 위로가 되기엔 충분했다.
사실 그동안 “나 요즘 힘들다.”라는 말을 피해 왔다. 무슨 말을 해도 형식적인 것 같아,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헤어지기 일쑤. 스스로에게 위로 부적격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을 억지로 외면했다. 준비하던 시험의 결과가 좋지 않아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친구에게도 “조만간 만나자.”는 말밖에 못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사물함에 몰래 놓아둔 과자 한 봉지, 초콜릿 하나였을지도.
직·간접적으로 깜짝 선물을 받다 보니, 나도 이 훈훈한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졌다.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과자 좀 사야겠다. 같이 넣을 쪽지도 써야지. 유난히 지치고 외로운 하루를 보낸 누군가가 이 과자에서 한 조각 위로를 얻기를. “수고했어요,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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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1. 개강이라니! by 고굼씨 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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