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시 삼십 분에 약속을 잡으면 두시 즈음 되어서야 나타나는 한국인들의 시간관념을 서양인들은 ‘코리안 타임(Korean Time)’이라 불렀다. 최근 저 단어의 쓰임은 점점 줄어 거의 찾지 않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만날) 약속을 만드는 것부터, 날을 잡고 시간을 정하는 것, 정한 시간에 만나는 것까지 크고 작은 어긋남으로 기분이 꽁기해진다. 다행인 건, 한국만 그런 건 아니라는 것. 약속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에 대한 대처법을 살펴봤다.

 

Case 1. 첫 데이트에 지각이라니!

 

심남이 썸남으로, 썸남이 남친으로 승격(?)된 후 기념할 만한 첫 데이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만나기로 한 시각에 맞춰 도착했는데 그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곧 오겠거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린다. 문자 한 통 없다가 약속 시각 30분이 지난 뒤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 사정이 있어 늦었을 수 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을 일이다. 나도 늦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예고 없이 늦은 점,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내가 물리적으로(귀한 시간을 쓸모없이 흘려보냄) 피해를 보았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다시 이런 일이 없을 것을 다짐받는 것도 잊지 말자. 평가는 하지 말고.

 

Case 2. 늘 5분, 10분씩 늦는 너

 

언제나 5분, 10분 정도 약속 시각보다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있다. 화를 내기엔 머쓱할 정도로 기다린 시간이 길지 않지만, 한 번이 세 번이 되고, 열 번이 되면 슬슬 짜증이 난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도 10분 늦게 나가기로 했다. 그랬더니 다음 데이트에서 그는 20분 늦게 나왔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다.

 

‣ 말 그대로 습관이 되었기에 고치기 어렵다. 아마 높은 확률로 친구들과의 약속에도 저럴 것이다. 애초에 치사해도 5분 늦을 때부터 단호하게 시간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자. 할 말 못하고 가슴 속에 쌓아두면 폭발한다. 

 

Case 3. ‘보자’고는 얘기하는데 ‘언제’ 보자는 얘긴 없다

 

이 남자, 답답하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X요일 어때요?”라고 물으니 그 날은 선약이 있다고 해서 주말은 어떠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메시지를 읽고 대답이 없다. 며칠 뒤, 아무렇지도 않게 채팅방에 등판한 그가 말한다. “우리 언제 볼까요?” 그래서 “오늘 시간 어떠세요?”라고 하니 오늘은 급하게 생긴 일 때문에 다른 날에 보자고 한다. 뭐야?

 

‣ 어서 그만두자. 그 남자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혹시 사귀는 사이인데 먼저 만날 약속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그 역시 당신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는 뜻이다. 애정이 있다면 시간을 쪼개고 다른 약속을 파토 내고 당신과 약속을 잡기도 하며, 만나지 못할 사정이 있다면 구구절절 이야기할 것이다.

 

Case 4. ‘술 마셔서 이제 일어났다’고 하면 다야?

 

약속 시각 한 시간 전. 잠이 많은 그가 일어나지 못할까봐 오전에 확인 문자도 보냈다. 메시지 옆의 ‘1’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부랴부랴 준비하겠거니, 길을 나섰다. 약속 시각, 전화가 왔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목소리. “어… 미안. 어제 너무 늦게까지 마셔서… 이제 일어났네. 지금이라도 갈까…?” 맥이 탁 풀린다.

 

‣ 이런 일이 처음이라면 화를 내도 좋다. 그러나 두 번째라면, 먼저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내일을 위한 자제심,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모두 없다는 말이다. 왜 그가 당신과 한 약속을 쉽게 생각하는지는 당신도 알 거다. 당신이 그의 직장상사나 교수님이었어도 늦잠을 잤을까? 만약, 진짜 잠이 너무 많아서 감당할 수 없는 이라면… 사랑한 당신이 안고 가거나, 놓아주거나.

 

Case 5. 만나기 직전, 일방적인 취소 통보

 

“나를 길들여줘. 그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제아무리 어린 왕자를 만난 여우라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고 했지 ‘기다린다’고는 안 했다. 그를 만날 생각으로 들떴는데, 만나기 직전에 ‘벌써 나왔어? 나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못 만나겠어.’ 라는 말을 들으면 황망할 뿐이다. 상대에게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서운함은 가시지 않는다.

 

‣ 단호함이 필요할 때다. 다음번 만났을 때 그에게 왜 그랬는지 물어보자. 그리고 그때의 내 감정과 상황을 이야기할 것. 다신 그러지 말라는 말도 함께. 혹시 약속을 잡았다 바로 직전에 취소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실눈을 뜨고 그를 유심히 살피기 바란다. 마음에 둔 다른 사람과 만나기 위해 당신과 잡은 약속을 직전에 파토내기도 하더라. 전형적인 회피 심리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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