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정전이 되면 서랍을 뒤져 손전등과 제사용 양초부터 찾았다. 요즘 사람들은 휴대폰부터 찾기 바쁘다. 어느덧 손전등과 촛불은 옛날 물건이 됐다. 초딩 땐 오바 조금 보태서 전봇대 굵기만한 손전등이 집집마다 있었다. 요즘 그런 손전등을 구경하려면 황학동 벼룩시장이나 아파트 경비실을 기웃거려야 한다. 중독성 쩔던 딸깍거리는 고무 버튼 소리도 이젠 추억이 됐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기 10년 전에 이미 휴대폰은 손전등을 멸종시켰다. ‘송도전자’, ‘한길조명’ 같은 동네 영세업체들이 삼성과 LG그리고 베가의 휴대폰 조명에 타격을 입었다. 내가 90학번이면 지금쯤 손전등 리뷰를 하고 있겠지만,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것은 문명의 발전에서 살아남은 21세기의 불꽃이다. 추억 파괴자 스마트폰 손전등 앱 2종을 소개한다.

 

청코너

 

플래시라이트 – Tiny Flashlight

개발사 Nikolay Ananiev

다운로드 수 1억

 

러시아 개발자 니콜라이 아나니에프의 작품. 이 사람은 안드로이드 조명 앱만 15개를 만들었다. 어릴 때 집이 방공호였는지 어둠에 맺힌게 많은 모양이다. 대표작 <플래시라이트>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1억 회 이상 다운로드를 기록한 역작이다. 부동의 1위, 손전등계의 앤더슨 실바다. 승승장구했지만 2년 전쯤 개인정보 유출 루머에 독감을 앓기도 했다. 개발자는 극구 부인했으나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다. 개발자 모니터에 우리 집 화장실이 뜰까 불안하면 안 받는 게 낫다.

 

홍코너

 

컬러라이트 HD – Color Flash Light HD

개발사 Notes

다운로드 수 5천 만

 

<플래시라이트>와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현혹하는 괴짜 어플리케이션이다. 손전등 앱 계의 김대기요 마일리 사이러스 되시겠다. 메모 앱을 만들던 Notes사에서 내놓았다. 사전, 키보드까지 중소기업답잖게 문어발식 확장이 취미인 회사다. 집중력이 산만해 보여도 성과는 괜찮았다. 2011년 이후 구글 플레이에서 약 천 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고작 1년 선배인 <플래시라이트>보다 훨씬 저조한데, 최근 스마트폰 해상도에 맞추어 HD 버전을 새로 내놓아서 그렇다. 구 버전 다운로드 수를 합치면 약 6천 만 정도 된다.

 

디자인

 

플래시라이트

심플하다. 시커먼 액정에 전원 버튼 하나만 떡 박혔다. 일곱 살 때 갖고 놀던 스타워즈 광선검이 이랬다. 버튼 위쪽엔 남은 배터리를 알려주는 그림이, 아래쪽엔 “배터리 소모가 크니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뜬다. 기껏 사 줬더니 경고문구로 협박하는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같다. 추가 기능 아이콘은 난해해서 눌러보기 전에는 모르겠다. 투탕카멘이 이걸 봤다면 아마 자기 관 문짝에 그려 넣었을 거다.

 

 

컬러라이트 HD

<플래시라이트>만큼 심플해 도긴개긴이다. 전원 아이콘이 박힌 육각형 버튼만 달랑이다. 반면 화면 라이트 버튼은 충남 홍성군에 있는 외갓집 안방 스위치 같다. 고작 손전등 어플리케이션을 쓰면서 반세기를 오가는 기분이 들 거다. 옵션 버튼을 누르면 아이콘이 뜨는데, 조잡하고 구린 대신 알아보기는 쉽다. 심플 이즈 베스트는 개나 줘야 할 것 같다.

 

인터페이스

 

플래시라이트

‘백라이트’ 기능만 전면에 내세웠다. 옵션에 들어가면 ‘화면 라이트’를 켤 수 있다. 액정 빛을 밝혀 조명으로 쓰는 기능인데, 여덟 가지 색을 뿜는다. 빨간 색 조명은 무드 등으로도 좋을 테고 냉동실 안에 켜 놓으면 고기도 맛있어 보일 텐데 고기가 없어서 슬프다. ON-OFF를 반복하는 깜빡깜빡 스트로브 조명 기능도 사용해 보자. 여기까지는 기본 기능이고 경찰차 조명, 경고등 같은 기능을 추가 다운로드 콘텐츠로 제공한다. 콘서트장이나 홈 파티에서 쓰면 꽤 쓸 만할 거다.

 

 

컬러라이트 HD

앞서 말했듯 버튼 하나 박힌 게 끝이다. 불친절하게 느껴질 텐데, 오해하지 마라. 손전등도 버튼 하나다. 화면 라이트는 <플래시라이트>보다 더 많은 색을 낸다. 약 256색 정도다. 화면에 대문짝만하게 글씨를 띄우는 전광판 기능은 공연 덕후를 노린 기능임에 틀림없다. 인기가요 방청석에서 목이 터져라 “설현 짱”을 외칠 필요도 없다. 제작자는 구조용으로 만들었다고 했으나 무인도에 표류되지 않는 이상 쓸 리가 있나.

 

필살기

 

플래시라이트

상단바를 내리면 라이트를 켜는 버튼이 한눈에 보인다. 디자인도 인터페이스도 별로인데 이걸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걸 ‘위젯’이라 부른다. 앱을 일일이 찾아 누르는 게 귀찮을 때 무척 편리하다. 잠금 화면에도 위젯이 뜬다. 빛이 필요할 때 홈 키와 위젯 버튼만 눌러도 불이 켜지는 거다. 다른 손전등 앱을 모조리 씹어 먹고 왕위를 차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컬러라이트 HD

미러볼이 빙빙 돌아간다! 이걸 켜면 우이동 MT촌이 옥타곤 되는 건 시간문제다. 재미있는 서브 기능은 많은데 미러볼만큼 유용한(?) 건 없다. 예컨대 ‘촛불 모드’를 켜면 정말 화면 가득 촛불 사진이 뜬다. 성의 없다며 욕을 뱉었는데, 어두운 곳에서 켜두면 정말 촛불 같아서 우민이 된 기분이다. <플래시라이트>와 마찬가지로 경찰차에 달린 ‘경광등’ 효과도 낼 수 있다. ‘조폭을 만났을 때 켰더니 도망쳤습니다. 목숨을 건졌습니다’라는 앱 리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리뷰는 안 믿는 게 좋겠다.

 

총평

플래시라이트

– 필요한 것만 넣고 재미 요소는 옵션으로 돌린 혜안.

– 위젯 기능 하나만으로 가장 앞서나간 스마트한 어플리케이션.

– 단순한 디자인은 독. 단순한 사용법은 득.

 

컬러라이트 HD

– 조잡하지만 끌린다. 아이폰 대신 안드로이드를 선택하는 이유처럼.

– 전광판, 미러볼 등 재미 요소를 가미한 유쾌한 손전등 어플리케이션.

– 손전등 하나만 이용하기엔 조금 불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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