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영어를 했다. 삼십 줄이 넘었으니 족히 이십 년은 알파벳을 붙잡고 산 셈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영어가 싫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영어를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쏼라쏼라 지껄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그렇다고 아예 젬병은 아니고. 어느 정도 읽고 쓰고는 할 줄 안다. 하지만 외국인만 마주하면 언어 능력이 5세 이하로 퇴보한다. 오금이 저린다기보다는 뇌의 주름이 펴지는 느낌. 기초성문법과 우선순위 영단어가 뒤범벅이 되어 혀 속에서 뒹군다. 그리고는 나오는 말은 고작 “Um… Um…” 뿐이다. 엄엄이라니, 영어를 수십년했는데 엄엄이라니!
얼마 전, <오 마이 베이비>에서 정시아가 아들 준우의 영어를 가르치다 당황하면서 버벅거리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미뤄야 하나’ 하던 찰나, ‘차라리 선생님에게 맡겨라’라는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영어 실력이 한심스럽다.’,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냐’는 악플이 줄줄이 동공에 박혔다.
남의 손이 아닌 직접 아들과 소통하며 공부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건 에디터뿐이었던 걸까. 그렇다고 영어를 버벅거린다고 악플이 달리는 건 좀 심했다. 아들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두들긴 것도 아니고 고작 영어를 버벅거렸을 뿐인데 욕지거리라니!
<비정상회담>에서 미국인 타일러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외국인이 말을 걸면 무조건 영어로 대답해주려고 해요. 그리고는 영어를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죠. 그럴 필요 없어요. 여기는 한국이잖아요.” 백번 맞는 말이다. 왜 한국에서 영어로 대답을 못 했다고 부끄러워야 하는 걸까.
한글이 모국어인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영어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져 간다. 이제는 취업할 때 토익, 토플은 기본 장착이고 추가로 더 많은 어학 능력을 요구한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에게 알파벳을 들이밀고 유치원에서부터 영어 수업을 듣는다. 조기 유학 바람이 불어 어린 나이에 해외를 나가기도 한다.
애들은 대체 뭣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우는지도 모른 채 영혼도 없이 부모에게 떠밀려 가방을 멘다. 대체 왜 이렇게 영어를 시키는가 물었더니 이렇게 안 하면 나중에 뒤처지기 때문이란다. 나중이라면 대체 언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아니면 대학교? 혹은 취업할 때? 인생 백세 시대에 좀 뒤처지면 어떠한가. 인생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사는 건데.
에디터는 오히려 그 나이에만 겪을 수 있는 추억이나 경험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 든든한 자양분이 된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스물대여섯 살쯤 됐을 때다. 매일같이 영어 공부를 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면봉으로 귓구멍 후비듯 영어만 후벼 팠다. 대체 뭘 하고 싶어서 영어를 하냐니까. “몰라. 근데 취업할 때 영어 점수는 기본이잖아.” 머리를 텅 맞은 기분. 목표도 없이 남들이 하니까 무작정 토익책을 집어 든 친구였다.
그렇게 한 일 년간 취업준비를 한답시고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는 걸 봤다. 그리고는 얼마 뒤 난데없이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했다.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란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배우는 데 한계가 있단다. 난 무슨 구글이나 나사에 입사하려나 싶었다. 그렇게 일 년 유학을 다녀왔다.
대체 그 친구가 어떤 회사에 취직할지가 너무 궁금해서 계속 지켜봤다. 결국은 아주 작은 회사의 사무직으로 입사했다. 영어라고는 e메일에 접속할 때 아이디를 입력하는 것 외에는 전혀 쓰지 않는 곳. 대체 그 친구가 왜 그 난리를 피우면서 영어를 했는지 아직도 의구심이 든다. 남들이 하니까? 기업에서 요구하니까? 문제는 이렇게 목적 없이 영어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잡코리아가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구직자 10명 중 8명은 영어 실력 때문에 취업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영어는 평생의 숙제’라고 표현할 만큼 한국인들이 심각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학창시절 10년 동안 영어공부는 충분히 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이제 다른 경험을 쌓을 때다. 사회생활을 수년간 해보니 영어보다 중요한 것이 훨씬 더 많은 게 진짜 리얼 인생이더라. 얼마 전 공개한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에 공공기관에 취업한 이들 중 39.8%가 영어 점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제 기업에서도 점차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씩 덜어놓는 추세. 대한민국의 모든 직종과 기업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업종에 따라 그 활용도는 유치원 수준부터 원어민 영어까지 다양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필요한 경험치를 습득해나가자.
그렇게 쌓은 경험들이 훨씬 값지게 활용되더라. 에디터도 영어는 X밥인데 버젓이 회사에 다니면서 여기에 글을 쓰고 있지 않나. 까짓것 영어 좀 못하면 어떤가. 우리는 한국인인데. 오히려 “아픈 거 빨리 낳아”라고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게 더 부끄러운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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