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무렵, 책을 펼쳐 얼굴 위에 덮은 채로 낮잠을 자는 날이 많았다. 그만큼 책 냄새를 좋아했다.

 

낡은 책들에게서 나는 독특한 냄새가 특히 좋았다. 묵혀진 종이와 잉크가 버무려져 풍겨오는 짙고도 싸한 향. 오래될수록 더 마음에 드는 냄새가 났기 때문에, 나는 세로줄에 한문이 섞인 책들을 자꾸 끄집어 펼쳤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 책들에 얼굴을 품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마치 책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얼핏 잠이 깨면 몸 속 가득히 종이 냄새가 들어찬 기분이 들었고 한없이 나른했다.

 

어쩌면 그때가 나의 사춘기였을지도 모른다. 혼자 있을 때는 뭐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현실에서 도피해 이야기 속으로 숨을 수 있단 사실이 안락했다.

 

가장 싫어하는 수학 시간에는 교과서 사이에 『작은 아씨들』을 끼워 읽었다. 그중 조를 제일 좋아해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었지만 엄마가 허락해주지 않았다.

 

『테오의 여행』 시리즈를 읽던 밤에는 얼른 자라는 엄마의 독촉에 불 끄고 잠든 척 했다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계속 읽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틀 만에 시리즈를 전부 읽어치웠다.

 

부모님 방에서 『실락원』을 처음 봤던 날도 기억한다. 엄마 아빠 침대 위에 배를 깔고 누워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점점 야릇해져갔다.

 

책을 몰래 내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 계속 읽었지만, 부모님이 퇴근할 시간이 되자 불안을 못 참고 제자리에 돌려뒀다. 그런 행동을 두 번 정도 반복했지만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고, 야한 내용보다는 그때의 나쁜 불안감이 더 강렬하게 남았다.

 

그렇게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온 터라, 책을 아무렇게나 읽고 빨리 읽는 버릇이 들었다. 동시에 여러 책을 읽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와는 달리,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사람들이 있다. 끈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체로 책이든 영화든 한번 보고 나면 크게 호들갑을 떤 후에, 잊고 만다. 이미 내용이며 전개며 ‘다 알아버렸다’는 기분이 들어서 ‘다음번에 또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나 다시 읽을 때를 대비(?)해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페이지 끝을 살짝 접어둔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또 읽기 싫어하는 나의 귀차니즘을 위해 ‘이쯤 네가 좋아했던 무언가가 숨겨져 있어’ 하고 표시를 해두는 거다.

 

그런 책들이 책장에 하나둘 늘어가니, 절로 읽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드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이든 책이든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대단한 착각이라는 것을.

 

어떤 순서로 내용이 전개되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의미 없었다. 그 문장을, 그 이야기를,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것만이 중요했다.

 

책은 한번 만들어지면,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그 안의 이야기들은 종이 위에 새겨진 채바뀌지 않는다. 5년 후, 10년 후, 50년 후에도,

 

그 책은 ‘그 책’인 것이다. 『데미안』은 ‘데미안’이고 『마담 보바리』는 ‘마담 보바리’이며 『밤이 선생이다』는 ‘밤이 선생이다’인 것처럼….

 

변화는 다른 곳에 있다. 읽는 ‘나’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다.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애정에 대해 다른 시각이 생기기도 하고, 인간에 대해 몰랐던 혹은 몰랐으면 좋았을 사실들을 깨닫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그렇게 바뀌게 된 내 앞의 ‘그 책’은 예전의 ‘그 책’과 다르게 읽힌다.

 

예를 들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소년 모모가 나온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등장인물들이 전부 귀엽고 애틋했다.

 

어둡고 두렵고 고약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게 다행이었고 마음 따뜻했다. 더 많이 사랑해야지, 그런 희망으로 책을 덮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몇년 후 다시 집어든 『자기 앞의 생』은 견디기 힘든 책이었다. 아무리 고된 삶을 살더라도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고, 아무리 헤진 마음이라도 자연스레 사랑이 흘러나오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애달파서 많이 울었다.

 

종이에 적힌 글은 나름의 생명력을 갖는다. 하다못해 혼자 쓴 일기의 문장도 시간이 지나면 나와 분리된 존재로의 몫을 한다.

 

과거의 내가 뱉었던 글은 낯설게 느껴지고, 거기서 또 다른 감정이 만들어진다. SNS에 수많은 정보와 공감을 일으키는 문장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거기까지 가 닿기 전에 사라지기 일쑤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속의 문장들은 내가 죽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책을 읽다 말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그런 것처럼 누군가의 인생에도 사소하거나 중요한 영향을 주겠지.

 

모두의 영혼에 뿌려지는 이 작은 씨앗들이 전부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내가 종이책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유고,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도 오늘의 한 문장을 더 적어두는 이유다.

 

Illustrator_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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