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공간이 갑자기 사라졌다. 애인이 이별통보를 해온 것 같은 상실감에 마음 한구석이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추억이 담긴 공간들이 사라져간다. 부당한 이유로 쫓겨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기엔 입이 쓰다. 그냥 잊어버리기에는 마음도 쓰리다. 그래서 기록으로나마 붙잡아 본다. 우리의 시간과 추억이 쌓인, 사라지는 공간들을.


사랑을 만난다던 <몽마르뜨 언덕 위 은하수 다방>

ⓒ인스타그램 @min_jining

 

10cm는 노래했다. 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 만나 홍차와 냉커피를 마시며 매일 똑같은 노래를 듣다가 온다고. 그해 여름, 은하수 다방 앞 거리는 보란 듯이 10cm의 노래로, 사랑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 찼더랬다. 그 노래 때문에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권정열의 목소리를 들으면 못 견디게 냉커피가 당겼다. 혀가 얼얼하도록 달고 머리가 띵하도록 찬 그 커피. 어쩔 수 있나, 결국 또 그 곳 구석진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수밖에.

 

그렇게 몇 번의 여름을 보내고 지난 2015년 가을, 은하수 다방은 사라졌다. 더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른 임대료 때문이라고 했다. 문 닫기 전날 작은 파티를 열고 10cm도 와 몇 곡 부르고 간 모양이지만, 나는 겨울이 되어서야 휑뎅그렁하게 빈자리로 소식을 알게 됐다. 홍대와 합정을 잇는 거리를 ‘은하수 다방 거리’라고 부를 정도로 눈에 익던 간판은 이젠 없다. 어딘지 가슴이 싸했다. 추운 겨울날이었는데도 왠지 냉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북촌 풍경 <씨네코드 선재>

ⓒ씨네코드 선재

 

주말이 되면, 풍문여고 옆 골목은 차 없는 거리가 된다. 복잡한 안국역 6차선 도로를 뒤로하고 들어서면 휘적휘적 걷기에 좋은 길이 나타난다. 그 길 끝에 북촌 가는 길이 있다. 오른쪽엔 정독도서관이 있고 왼쪽에는 씨네코드 선재가 있었다. 당연하리만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하나가 빠졌다. 씨네코드 선재는 2015년 11월 30일 막을 내렸다. 건물주와의 임대차 계약 종료 때문이라고 한다.

 

씨네코드 선재는 북촌에 있는 유일한 영화관이었다. 상업논리보단 관객의 취향을 고려해 영화를 골랐던 서울의 몇 안 되는 예술영화전용관이기도 했다.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없는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볼 수 있던 곳으로 가끔 멋진 기획전을 열었고 또 가끔은 작은 영화제도 열렸다. 학교 과제로 영화제에 갔다가 씨네코드 선재를 처음 알게 된 나는, 그 후로 북촌을 갈 때마다 눈도장을 찍었다. 이곳을 아주 좋아하던 친구는 씨네코드 선재가 고르는 영화는 전부 자기 취향에 꼭 맞아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봤다고 했다.

 

2008년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자유로운 세계>로 개관한 씨네코드 선재는 <마스터>, <리스본행 야간열차>, <세상의 모든 계절>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북촌 가는 길이 많이 허전해질 것 같다.


시끄러운 거리의 조용한 아지트 <작업실>

ⓒvvivii (http://vvivii.blog.me)

 

항상 시끌벅적한 홍대 주차장 거리 한 편에 언제나 조용한 북카페가 있었다. 작업실이란 이름답게 작업하기 좋은 널찍한 책상이 있던 곳. 소용돌이 모양 책꽂이에 책이 가득 꽂혀 있고 책꽂이가 없는 벽에는 온통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놓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노트북 작업을 하기에도 공부하고 책 읽기에도 참 좋은 카페였지만, 포스트잇 읽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여러 모양으로 사는 이야기가 듬성듬성 붙어 있고, 작은 종이에 예술혼을 펼쳐놓은 이들도 있었다. 나도 몇 번인가 아무 얘기나 써서 붙여두곤 했다.

 

근처 가게들이 몇 번씩 바뀌는 동안에도 작업실은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지난 2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갑작스런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슬퍼했다. 그나마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문을 닫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젠트리피케이션: 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중·상류층 사람들과 돈이 유입되는 현상. 그 결과 주거비용이 올라가고,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은 다른 곳으로 밀려나게 된다. 원래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내포하는 단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낙후된 곳을 활성화시킨 예술가나 원주민이 자본에 밀려나면서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


마지막 오프라인 레코드점 <향음악사>

ⓒ인스타그램 @beat_

 

3월 12일 신촌 향음악사가 문을 닫았다. 1991년부터 25년 동안 영업했던 향음악사는 다른 레코드점이 하나하나 문을 닫을 때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 해외 음반들이 있었고, 유통 경로가 마땅치 않았던 인디 뮤지션들의 앨범을 유통해주던 곳이었다. 마니아와 뮤지션 모두에게 든든한 접점이었다고 할까.

 

사실 레코드점 폐점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CD보단 음원으로 노래를 듣는 시대가 되었고, 가끔 좋아하는 앨범을 사더라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이 익숙하니까. 향음악사도 오프라인 매장은 정리하지만 온라인으로는 영업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못내 아쉽다. 빽빽하게 꽂힌 CD에 둘러싸여 앨범을 고를 일도, 이런저런 추억이 깃든 그 향음악사도 이젠 없는 거니까.


아직 사라지지 않은 도시미술관, <테이크아웃드로잉>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질지도 모르는 곳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카페 겸 도시 미술관이다. 예술가들이 입주해 작품 활동을 하는 공동체이기도 했다. 입주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콘셉트로 한 독특한 메뉴가 있고,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공간을 채웠다. 크고 작은 전시가 열리고 예술가들과 시민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미술관은 대부분 국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지만 이곳은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순환하는, 예술계의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지금 젠트리피케이션의 최전선에 있다. 건물주가 두 번 바뀌고 현재 건물주는 싸이다. 싸이는 이전 건물주가 재건축을 이유로 낸 명도조정을 따라서 가게를 비우라고 요청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반발하고 있다. 건물을 비우라는 조정안은 이전 건물주와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현재 건물주인 싸이와는 관계가 없다. 뿐만 아니라 그 명도조정은 ‘건물주가 재건축을 원하기 때문에 건물을 비우라’는 것, 즉 ‘재건축’을 전제로 한 조정안이었다. 그러나 싸이는 재건축이 아니라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를 오픈하기 위해 가게를 비우라고 했다. 이는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한 싸움의 과정에서 몇 번의 강제집행과 폭력사태도 있었다. 현재는 법원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싸이 측의 강제집행은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많은 곳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사라졌다. 현재 임대차법은 임차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지적이 많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협상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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