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딘가 부족하고 어수룩한 사람들이다. 사는 게 처음이라, 무엇을 하든 서툴 수밖에 없는 우리들처럼.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이번 생에선 내내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세상 모든 ‘쫄보’들을 위한 응원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책으로 배운 것은 연애든 뭐든 시원찮다지만, 나는 때때로 그의 책에서 삶을 배우고 싶어지곤 한다. 이런 유머와 연민과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처음이라 서툰 삶이라도 제법 살 만하지 않을까.


인간, 실패할 걸 알면서도 걸어 나가 실패하는

 

신간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를 비롯해 작가님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저와 같은 ‘쫄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웃음) 그런 이들에 대한 정서적 친밀감도 느껴지고요. 주로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별게 없어요, 그냥 다 작가랑 닮아서 그래요. 작가가 어수룩하니까 작중 인물도 어수룩한 거고.(웃음) 어쨌든 작중 인물을 만들어낼 때 나와의 거리가 얼마나 멀든 가깝든, 내 조각이 나온다는 생각으로 쓰고 있어요. 숨기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거죠.

 

또 작가 입장에서 감정이입하기에 용이한 인물의 이야기를 해야 그 인물 속으로 보다 깊숙이 들어갈 수 있고요.

 

작가님의 실제 삶에서도 소설 속 에피소드 같은 일들이 자주 벌어졌던데요. 유난히 불량배들한테 자주 맞았다거나, 여자친구랑 건물 5층에서 막 키스를 하려는데 4층에서 불이 나서 사다리차로 대피했다거나 하는 불운의 역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웃음)

 

제가 그런 얘기까지 했던가요! 불 얘기를 하니까 생각나는데 이런 일도 있었어요. 은평구 어딘가에서 제 생애 최초로 찜질방에 갔던 날이었어요. 초기 찜질방은 “불 들어옵니다!” 하면 사람들이 몰려가서 땀을 빼곤 했거든요.

 

술 마시고 거길 혼자 갔는데, “불입니다!” 하기에 불 들어온다는 소린 줄 알고 계속 누워 있었어요. 사람들이 다 달려 나가는데 ‘어휴, 뭔 아침부터 저러나?’ 하면서 자고 있다가 나중에 출동한 구급대원한테 끌려서 밖으로 나왔어요.(웃음)

 

그런 일들이, 남들은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들이잖아요.

 

처음엔 저도 ‘왜 이런 일들이 나한테만 계속 일어나지?’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고, 그냥 길 위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자취방에 있지 않고 자꾸 길에 나갔던 거죠. 강원도에서 막 올라왔으니 서울이 얼마나 신기했겠어요.

 

당시 높은 건물만 보면 무조건 층수를 세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1학년 때 선배들 따라 데모를 나갔는데, 후퇴하는 와중에도 옆에 있는 빌딩 층수를 세다가 앞 사람이랑 부딪쳐서 쌍코피가 났어요. 선배들이 그걸 보곤 이 녀석 전경에 맞았다고, “1학년인데 벌써부터 투사급 활약을 하는구나!” 해서 한동안 투사 대접을 받았어요.(좌중 웃음)

 

그런 식으로 안 가본 데를 이리저리 다니며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여러 일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나중에 뒤돌아보니 굉장히 소중한 경험들이에요. 그때 혼자 자취방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거나 자격증 공부를 했다면 그런 경험을 하나도 하지 못했겠죠.

 

그렇게 쌓아 올린 ‘이기호 월드’의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실패담입니다. 독자들에게 이런 실패담을 읽는 것이 어떤 경험이 되길 바라나요?

 

제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실패는, 지금 이 시대의 가치 혹은 욕망들과 부딪치며 겪는 실패거든요.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아, 저렇게 부딪치면 결국 실패하는구나’ 생각하고 마는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껏 자신이 믿고 있던 가치의 좌표가 미세하게라도 움직이는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문학이 하는 일들이 바로 그런 것이겠죠. 대부분의 문학이 결국 실패담일 수밖에 없어요. 실패할 줄 알면서도 뻔히 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게 맞고요.

 

문학 외적으로도 일상에서 조직의 내부 고발자들, 혹은 가족이나 사회제도에 묶이지 않고 개인의 원칙에 따라서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끌립니다. 그게 제가 이 세계에서 받는 감동이고, 문학적이라고 느끼는 것들이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제 소설 또한 그런 실패의 인간들을 그리는 데 매진하는 거죠.


연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대학 학점은 친구 셋을 모아야 3점이 겨우 될정도지만, 원 없이 연애를 한 덕에 후회는 없다”고 대학 시절을 한마디로 말한 글을 봤습니다. 대체 연애를 얼마나 하셨기에….

 

(먼 산) 가히 연애의 시절이었죠. 연애 많이 했습니다. 많이 해서, 그나마 좀 나은 인간이 된 케이스 같아요.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도 오만방자했을 거예요.

 

그땐 글을 쓴답시고, 삶에 대해서 잘 아는 척을 했어요. 연애를 한두 달 하면 상대방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할 것이다,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런 것들이 연애를 하면서 다 깨졌어요. 아,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타인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란 어려운 일이구나,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한데, 학생들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 또한 연애하라는 말이라고요. 비슷한 맥락에서일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굉장히 중요하죠.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지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계속 정체성의 문제가 야기되는 거겠죠.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잘 안다고 좋은 삶이 되나?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타인과의 관계, 타인이 나를 부를 때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달라지거든요. 타인이 ‘있다’, 타인이 저쪽에 있다, 하는 것을 알려주는 데 연애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차남들의 세계사』에 나온 김순희를 언급하며, 나름대로 희망을 갖고 쓴 인물이라 하셨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요. 어쩌면 작가님은 힘든 시대의 희망을 사랑에서 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이 그나마 인간다워질 수 있는 가능성 중 하나가 사랑인 것 같아요. 요즘엔 생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지 않습니까. 오로지 생존만 따지는 사회적 흐름이 만연하다 보니, 정글의 세계와 흡사하게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모든 게 돌아가잖아요.

 

이런 세계 속에서 그나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저는 결국 사랑인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법칙들을 위반하며 그 위로 지나가는 것이거든요.


배움,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지는 세계 안에서

 

작가님도 스무 살에 문창과에 입학했을 때 재능의 격차를 크게 느끼셨다고요. 지금의 문창과 학생들이 고민하는 지점을 누구보다 잘 아실 것 같아요.

 

제 경우엔, 대학교 들어올 때까지 흔히 말하는 필독서들 같은 것을 하나도 안 읽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연애편지 쓰다가 문장력이 좋아져서 문창과 들어온 케이스였죠.(웃음)

 

문창과에 들어왔더니 다들 감각이 너무 뛰어난 거예요. 글 쓰는 사람은 타인의 글을 보면 너무 잘 알거든요. 난 망했구나, 싶었죠. 그래서 연애만 했어요.

 

그러다 군대에 갔더니 선임들이 또 문창과 출신이라고 연애 편지를 부탁하는 거예요. 쓰다 보면 한계가 있어요. ‘순영아, 보아라. 카프카가 그랬단다.’ 이런 걸 쓰려면 당대의 명언을 살피기 위해 책을 읽어야만 했죠. 그래서 계속 책을 읽었고, 재능은 없지만 소설을 한번 써보자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어요.

 

그런데 전역 후에 작품 응모만 하면 우수수 떨어지는 거예요. 본심에 오른 적도 없고. 열 받아서 밤중에 일간지 건물 유리창에 돌멩이 던지고 도망치기도 하고, 술 마시고선 심사위원들한테 전화해서 ‘네가 소설을 알아!’ 그러고.(좌중 웃음)

 

재능 없고 실력 없는 애가 할 만한 못된 짓은 다 했죠.(웃음) 계속 절망뿐이었는데 그래도 용하게 포기만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재능 없음에 고민하는 학생들한테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쓰란 말을 하시나요?

 

소설이란 것이 예술 같기도 하고 예술 같지 않기도 한 지점이 있어요. 시는 분명 예술의 영역인데 소설은 달라요. 이것이 타고난 재능의 산물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갖고 기대는 거죠. 정말 노력한다면 100이란 수치의 70까지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1학년 때 아이들이 써온 소설이란 것이, 눈뜨고 못 볼 수준이에요.(웃음) 제가 이 교수실에서 꽤 늦게까지 아이들 작품을 읽는데 대부분 해독이 안 돼서 그래요. 오랜 시간 걸려서 몇 번씩 읽어 해독해내면… 막상 또 별 내용 아닌 거예요!

 

이런 놈들이 2학년, 3학년 올라가면 소설이 눈에 띄게 달라져요. 그런 것들이 희망의 근거가 되죠. 저도 똑같았어요. 대학 1학년 때 썼던 소설을 지금 보면 정말 참혹해요.(웃음)

 

그래도 열심히 하면 조금씩 나아지는 세계에 있다는 건 좋은 거네요.

 

확실히 그런 식으로 좋아지는 지점이 있는 거 같아요. 소설을 읽다보면 삶의 세부적인 것들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삶에 적용해서 살다 보면 또 소설이 조금 더 늘어나 있고….

 

정말 재능 있는 작가도 있지만 저처럼 그렇지 않은 작가들은 삶과 소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소설은 철저히 노력의 산물이죠. 그리고 작가라는 존재는, 내가 삶에 대해 뭔가 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설에 대해 좀 알게 됐다 자부하는 순간, 망가지는 것 같아요. 그럼 작품이 한순간에 추락하죠.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올해로 9년째, 학생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자리에 있습니다. 매해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요즘 보면 어떤 상징 언어나 3포, 5포 같은 세대 명명으로 추상화시키고 구분 지으려는 시도들이 많은데, 그런 것은 그저 기성세대들이 개별성을 지우고 빨리 규정짓고 싶어 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질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획일적인 시대 가치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와 신념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인문학만 해도 그래요. 대학이란 것이 그저 취업준비학원처럼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인문학을 전공하겠다고 오는 학생들을 보면 기특해요. 저희 때만 해도 인문학과를 가는 게 당연했어요. 그게 대학의 꽃이었거든요. 당연한 걸 하는 건 특별할 게 없죠.

 

하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 인문학을 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겠다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용기죠. 그런 용기가 저한테는 희망의 근거예요.

 

그런 친구들이 꾸준히 있다는 것, 두려움이나 예견된 고난이 예전보다 더 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해내고 있는 것이 짠하기도 하고, 한편 저를 부끄럽게 하기도 하고 그래요.

 

제자들한테도 그래요. 너희들은 소설 쓰기 최악의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다.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려고 하는 것만으로, 그러려고 여기 온 것만으로 너희는 이미 문학적이다.

 

이 질문은 조심스럽지만 여쭤보고 싶었어요.『김 박사는 누구인가』 작가의 말을 보면, 몇 년 전에 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겪으며 보낸 시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요. 지금 이순간에도 어딘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일도 이제 오래됐네요. 당시엔 이해를 못 했고, 그럼에도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고, 저한테는 꽤 오랫동안 상처가 되었던 일이었어요.

 

저하고 꽤 가까웠던 친구였는데 숨이 끊어지기 전에 응급실에 도착해서 제 품에서 그 친구가 죽는 것을 봤어요. 그 기억이 오래 힘들었어요. 좀 힘들게 살던 친구였거든요. 자꾸 반추하게 되고,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어떤 신호였던 것 같은데, 하는 자책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잠시 침묵)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힘든 친구들에게 희망을 갖자, 인생은 길다, 삶의 다른 영역들도 많다, 같은 말은 전혀 와 닿지 않는 벽돌 같은 말이 될 수 있어요.

 

고통은 사실 다 개별적이죠. 우리가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겐 너무 힘들고 삶을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는 문제가 되기도 하고요.

 

그러니… 무슨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들어야죠, 제가. 예전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가장 후회되었던 것 중 하나가, 같이 얘기를 꽤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얘기를 전혀 들어주지 못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들어야죠,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함께 살아가는 것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언제든 ‘듣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여태껏 소설가들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겠다.

 

소설가는 소설가의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듣자.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 누군가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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