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마저도 허락 받고 다니던 게 불과 몇 달 전이었어. 그런데 이제는 알아서 시간표를 고르고 진로를 결정하라니….” 인터넷에서 반응이 뜨거웠던 넋두리를 읽고, 나의 새내기 개강 총회를 떠올렸다. 신입생 앞에 선 학부장은 말했다. “여러분은 ‘좋은 선택’을 했다”고.

시간이 꽤 지나 새로운 신입생이 대학으로 들어오는 지금, 나는 다시 한 번 좋은 선택이란 게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나는 ‘욕심 많은 애’였다. 학점은 좋아야 하고, 인간관계도 그렇고, 대외활동도 열심히, 놀기도 잘 노는 그런 사람.

그래서인지 뭐든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선택도 늘 잘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1학년 봄은 고민으로 가득했다. ‘연합 동아리를 하면 과 생활이 힘들어지겠지?’, ‘CC 하다가 깨지면 어떡해?’, ‘군대는 일찍 갈까 말까?’ 무엇이 내게 좋은 선택일까. 그리고 무엇이 더 잘한 선택일까.

‘낮술을 먹네 마네’ 하는 사소한 문제야 충동적으로 정하고 즐기기도 했지만, 진로니 스펙이니 무거운 과제를 만나면 한없이 신중해지는 나였다. 누구보다 대학 생활을 잘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선택을 하려고 발버둥 쳐도, 결과물은 늘 어설프고 실망스러웠다. 하나를 잡느라 놓친 것들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곤 했다.

동아리 한답시고 동기들에게 소홀히한 것. 술값 번다고 알바 하느라 영어 공부를 뒷전으로 뺀 것. 방학 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 등등.

수많은 선택지가 내게 오고 나를 떠날 때마다 내 선택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듯했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새로 시도하기가 두려워지고, 행동들도 점점 굼떠지기 시작하는 악순환이었다.

그리고 여름방학, 아쉬움 가득한 첫 학기를 적당히 접어 담고 집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아버지와 맥줏집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내가 했던 선택과 오답들에 관하여.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선택은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이제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기보다는, 네가 고른 것을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렇다. 좋은 선택은 분석하고 예측한 뒤 엔터키를 누르는 게 아니었다.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고, 보다 좋은 선택지로 만들기 위해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었다.

그 밤으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겉보기에 나는 ‘욕심 많은 애’에서 ‘욕심 많은 화석’으로 바뀐 것 말고는 큰 변화는 없지만, 갈림길에 주저앉아 고민을 짜내던 모습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나는 작년, 지루했던 학교를 쉬고 창업이란 길에 들어서는 강수를 던졌다. 늘 자기 답보다는 매력적인 오답에 휘둘리던 내가 던진 도전장이었다.

뭐, 좋아. 나의 선택을 매력적인 오답들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정답으로 만들어 주겠다. 폼 나게 법전과 씨름할 일은 이제 더는 없어졌지만, 좋아하는 일을 택한 내 모습을 누구보다 사랑해주겠다는 뻔뻔함까지.

놓친 선택지에 대한 아쉬움 역시 두 손의 노력으로 지우면서 나는 오늘도 좋은 선택에 대한 욕심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가끔씩 내 앞에 있는 갈림길에 막막해질 때면, 또는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누군가를 발견할 때면 그 여름밤이 떠오른다. 이젠 낯 뜨거워 갈 일 없는 3월의 개강 총회, 그리고 나처럼 고민을 시작할 새내기의 모습들까지도.

공태웅은? 

제법 좋은 선택지입니다. 여성 분들은 픽미 픽미

Freelancer_공태웅 dnlriver@icloud.com

Illustrator_전하은

20대라면 누구나, 칼럼 기고나 문의는 ahrajo@univ.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