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밖에 쓸 수 없는 트위터지만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촌평을 쏟아낸다. 짧은 트윗에는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느낀 역사학자만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트위터로 소통하는 역사학자 전우용 이야기다. 서울시청 근처 예스러운 카페에서 그를 만나 물었다. 오늘날 우리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느냐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맞는 것이냐고.
140자로 시대를 쓰다
사회 이슈에 대한 본인 생각을 트위터에서 늘 소신있게 이야기한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건가?
계정만 만들어놓고 놀리고 있는데 어떤 분께서 “이건 일종의 구독”이라고 말해줬다. 신문이나 방송에 안 나오는 이야기를 볼 수 있단 사실을 깨닫고 여기 저기 팔로우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아, 남의 글을 보는 대가로 나도 뭔가를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단순히 재미 삼아 시작한 게 지금은 관성이 붙어 주된 발언장이 됐다.
당신과 달리 대다수 사람은 불만이나 의견이 있어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걸 귀찮아하고 불편해한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개인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부모님에게 “데모하지 마라”, “출세하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거 해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지금 젊은 친구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듣고 자랐다. 지금 대학생들이 카톡이나 술자리에서 의견을 교환하긴 해도 SNS 같은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언을 안 하는 건 저 이야기의 영향이 크다.
무언가 이슈 될 만한 걸 발언했을 경우 불이익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젊은 세대는 물론 전 세대에 침투해 있다. 이런 분위기는 사회나 개인에게 크나 큰 불행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끝내 ‘단 하나의 목소리’로 역사를 교육하는 국정교과서가 도입된다.
지금 우리 세대는 획일화된 역사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 결과 수많은 바보들이 생겨났다. “박정희 대통령 없었으면 우리 경제성장 못했지”라고 말하면서, 경제가 나빠지면 “그게 박근혜 대통령이랑 무슨 관계냐”고 말하는 사람들. 이런 식의 비논리적인 사고들이 일반적인 생각이 돼버렸다.
역사는 인과관계의 학문이다. 역사를 통해 논리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몇 년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만 배우고 자랐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을 두고도 경우의 수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역사의 경우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 이세돌, 이창호, 조훈현의 바둑이 모두 다르듯, 국민들도 내가 더 끌리는 역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근데 지금 그걸 원천봉쇄하는 게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다. 인간이 가장 익히기 어려운 게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건데, 그걸 배우는 게 역사란 학문의 존재 이유다.
내 역사가 있으면 남의 역사도 있다는 걸 배워야 하는데, ‘단 하나의 유일한’ 역사를 정해 놓고 가르친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럼 국정교과서의 순기능은 단 하나도 없는 건가?
사회적으론 없고, 권력자에겐 있다. 현대사회에선 대부분의 사회현상이 옳고 그름이 정해지지 않은 논쟁적인 것들이다. ‘퀴어 축제’를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악마의 행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근데 역사의 옳고 그름을 정해 놓는 건 수평적인 토론 관계를 수직적인 관계로 전환시키는 행위다. 옳다고 여겨지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을 체제 부정자이자 반역자로 몰아갈 수 있으니깐.
말로는 국민 통합을 내세우지만, 권력자의 의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을 차별하고 억압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바람직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말 자체가 모호하다.
지금은 2016년이고, 국적을 바꿀 수 있는 시대이고, 헬조선을 탈출할 수도 있는 시대다. 이런 때 요구되는 역사의식은 ‘톨레랑스’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할 줄 아는 태도.
평생을 같이 산 부부가 다투면 그 이유는 대부분 ‘역사’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가 아니라 가족사를 두고 말이다. “그때 당신이 이랬잖아”, “무슨 소리야, 당신이 그렇게 했었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과거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으니 물증이 없는 이상 누구 말이 옳은지 100퍼센트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럼 이때 어떻게 해야 다툼이 끝나느냐? ‘당신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란 마음가짐이다. 바람직한 역사의식이란 이런 거다. 역사는 하나일 수 없다는 것, 이걸 가르쳐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왜 헬조선이 되었나
오늘날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란 말을 부르짖는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가 이야기했다. 지금의 2030세대는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난 이게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니라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줄어드는 걸 못 견긴다. 20평 살던 사람이 쭉 20평에 살면 상관없는데, 60평 살던 사람이 30평으로 가면 그건 ‘헬’이다.
우린 그동안 공간을 확장하며 살아왔다. 근데 지금은 커지고 있던 세계가 점점 닫히고 있다. 식민지 시대조차도 생활 자체는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아지기는커녕 지키기도 어렵겠단 불안감이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청년층이 문제의식 없이 기존의 이데올로기만 좇으려 든다면, 80% 이상의 젊은이들은 죽을 때까지 ‘헬’에서 살아야 한다
문제의식이 있다고 해서 무언가 행동을 취하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냉정하게 개인이 잘살 수 있는 가능성은 2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전체 파이가 그만큼 적다. 근데 그 20퍼센트의 가능성만 보고 모두가 올인한다. 이런 방식으론 헬조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열심히 살면 나는 잘살 수 있다.’ 이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다. 이 담론은 개천에서 용 난 1퍼센트의 가능성을 부풀려서 ‘저것 봐라, 열심히 살면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부추긴다. 완벽한 일반화의 오류다.
청년들 스스로가 이걸 받아들이는 순간 나를 아주 적은 가능성만 있는 사람으로 규정짓는 거다. 근본적인 가능성을 높이기보다, 소수의 가능성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순간 헬조선 청년이 된다.
문제의식을 갖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해선 청년들이 ‘세력화’해서 집단 지성을 모아야 한다.
‘열심히 하면 그래도 잘살 수 있다!’는 의식이 여전히 팽배하다.
80년대 초중반엔 지식인, 민중, 지배 세력 같은 말을 많이 썼다. 그 시대의 강박관념이 담겨 있던 말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 서럽게 사는 일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의 강박.
근데 지금은 그런 논의가 아예 없다. 모든 개인의 불행을 노력 부족으로 여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배려의 대상으로 보기는커녕 무시와 경멸의 대상으로 삼는다.
결국 내가 무시의 대상이 되는 게 두려워 어떻게든 올라서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나면, 다른 사람이 못 올라오게 사다리를 걷어차버린다. 이건 정말 위험한 현상이다.
이게 위험하다는 걸 깨닫는 게 제대로 된 사회로 가는 출발점인데, 지금 기성 언론은 굉장히 나쁜 짓을 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걸 굉장히 꺼린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반사회적인 사람이 늘고 있다.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고, 교류하고, 공감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말이다.
얼마 전 통과된 테러방지법 이야기를 해보겠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여 법안이 통과됐다.
국정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옳음에 대한 판단권’을 독점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옳다고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자, 국가 시책에 동조하지 않는 자, 정부에 대해 불평불만을 갖는 자. 모두 잠재적인 테러범으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사람들을 임의로 뒷조사할 수 있게 만든다. 의심하는 자와 의심 받는 자가 나눠지는 거다.
근데 그런 경험 없는가. 밤길을 걷는데 앞에 걷는 여자가 힐끗힐끗 당신을 쳐다보며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던 경험. 이건 당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한 행위다.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겪는 에피소드다. 그런 상황에서 보자면 ‘의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근데 이 의심이란 일상적인 행위를 국가권력이 독점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의심하고 사생활마저 뒷조사할 수 있게 된 거다.
이 법안이 앞으로 우리 국민들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법이 제한한 범위는 명백하다. 근데 법이 한번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금지선보다 더 크게 선을 그어 자기 금지선을 만든다.
캠핑을 가도 물가에만 안 가면 물에 빠질 가능성은 0퍼센트다. 근데 그게 무서워서 아예 캠핑 자체를 안 가게 된다. 그런 것처럼 법이 만들어낸 금지선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관계 맺을 공간을 줄여버린다.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법들은 이런 자기 검열의 효과를 노린다. 지금 필요한 덕목이 배려와 소통이라고 했지만, 정부의 의지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자들과는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끊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도 용의자로 몰릴 테니깐.
흙수저 젊은이가 살아갈 세상
현 정부는 애국심을 강조한다. 공무원법 개정안을 봐도 민주성, 다양성, 공익성 대신 유독 애국심만이 부각된다.
한국 사람이 애국심을 느낄 땐 언제일까. 축구 경기할 때 말고는 그런 순간이 거의 없다. 지금 정부에서 강조하는 애국심이란 건 결국 ‘정부 지지’와 같은 말이다. 축구 경기 때의 그것과는 다르다. 애국가 잘 외우고 정부가 하자고 하는 거 열심히 잘 따르는 걸 애국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애국심을 강조하는 권력은 자기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사랑해달라고 콤플렉스를 외치는 것이다. 남녀가 다툴 때 자기가 잘못했는데 상대가 뭐라고 하면 괜히 할 말 없어서 “너 나 안 사랑해?” 이러지 않는가.
‘모든 국민은 딱 그 수준만큼의 지도자를 가진다’는 말이 있다.
국민 국가에선 국민에게 책임이 생긴다. 국민의 평균 수준이 세종이면 지도자가 세종 같은 정치를 할 것이고, 연산군이면 연산군 같은 정치를 한다.
세종은 권력자이지만 끊임없이 공부하고, 백성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했고, 소통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나무랐다. 연산군은 여자 밝히고, 노는 거 좋아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 한국인의 평균 수준은 연산군에 훨씬 가깝다. 자기들이 연산군처럼 살고 싶으면서 어떻게 세종 같은 정치를 바라는가.
역사는 전진과 퇴행을 반복하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의 2016년 역사는 어떠한가?
민주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의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퇴행의 시기다. 지구와 나누고, 이웃과 나누려는 의지가 크게 후퇴했다.
인간은 오직 경쟁의 주체다. 1퍼센트는 99퍼센트를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믿고, 99퍼센트는 지배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미국에서 샌더스가 이야기하는 게 이런 세상에 대한 반성이고 자각이다. 근데 아마 샌더스가 한국에서 이런 얘기했으면 종북 좌파니 뭐니 하면서 감옥 갔을 거다. 지금 한국은 이런 얘기조차 꺼내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게다가 한국은 전 세계에서 세습 부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노력이 필요하다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 모두 퇴행하는 사회에서 나오는 단어들이다. 젊은이들이 정신 상태가 썩어서 노력도 안 하고 세상 탓만 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이렇게 나무라는 사람들이 썩은 거다. 왜 그들이 헬조선을 부르짖는지 이유를 찾으려는 의지조차 없는 거니까.
어떤 발언에 대해 공격만 할 줄 알지 그 말이 한국 사회에 퍼지게 된 배경, 그 배경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걸 모르고 있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철저히 퇴행 중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흙수저 젊은이’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젊은 세대가 못 보고 있는 문제도 있고, 그들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많다. 근데 내가 여기서 ‘수’를 둘 순 없다. 훈수를 두는 순간 꼰대가 되는 거고, 내 생각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미래를 개척하는 건 미래를 살아갈 이들의 몫이다. 젊은 세대가 가는 길이 그들의 역사가 된다. 우리는 이제 역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세대이고, 역사를 만들 세대는 젊은 세대다. 그들이 어떤 길을 찾아갈지 나는 모른다.
그 미래가 아름다울지 추할지는 그들이 결정하기에 달렸다. 나는 아들에게도 말했지만 70살이 넘어선 투표하지 않을 거다. 그때가 되면 내가 역사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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