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았다. 해는 왜 나만 따라올까? 새들은 어디서 잘까? 더 자라서는 질문이 바뀌었다. 야간자율학습은 왜 해야 하지? 나는 왜 살아야 할까?
선생님은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뤄야 하는 그것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그로부터 나는 줄곧 질문을 멈추는 연습을 해왔다. 깊이 생각하면 안정적인 생활이 흔들리니까.
그러다가 얼마 전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를 읽었다. 나의 선배인 「대학내일」 전아론 편집장이 쓴 에세이집이다. 그녀는 산만함이 왜 나쁜가를 묻는다. 또한 결핍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두려움을 이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한다.
선배의 말과 행동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글이다. 나쁜 점에서도 좋은 부분을 꼭 찾아낼 만큼 품이 넓고, 나라면 무심코 흘려보냈을 느낌들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그리고 더 깊은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느꼈다. 불온한 질문은 반짝거리는 발견을 낳는다는 것을. 나 역시 질문하는 연습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Editor 조아라 ahrajo@univ.com
‘베드 없는 베드신을 좋아한다’는 작가 소개를 읽는 순간 직감했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되리란 걸.
누군가 내게 어떤 글이 쓰고 싶냐고 물으면, 아마 질리지 않는 농담 같은 글이라고 답할 것 같다. 고민 없이 남들 쓰는 대로 내뱉는 유행어는 시간이 지나면 사장돼버리지만, 예상치 못한 위트와 재밌는 발상은 우리 마음에 ‘퓨우웅’ 날아와 10점 만점 자리에 꽂힌 후에도 여운을 남긴다.
그런 문장들이 몇 줄 간격으로 팡팡 터지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궁금해하며 접어놓은 페이지가 많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의 농담이 가 닿는 방향이었다.
하드코어한 삶의 조각에 장난기 어린 시선을 섞어내는 것. 예쁜 생각과 말투가 아니더라도, 시니컬한 눈빛으로 발견하는 일상의 농담 또한 삶을 긍정하는 하나의 방식이란 걸 그는 멋지게 설득시킨다.
그런 태도가 못 견디게 좋아서 이 책은 책장 가장 아래 칸에 숨겨둔 채, 아무도 빌려주지 않고 나만 읽는다. 내 하루의 농담은 어디 숨어 있는지 더듬거리며.
덧. 이 책이 궁금하신 분은 「대학내 일」 699호 ‘빠졌다 치는 남자 정바비’ 인터뷰 일독을 권합니다. 내가 했지만 다시 봐도 재밌음.
Editor 김슬 dew@univ.me
스물여섯이 되던 해였다. 이 에세이를 읽는 동안, 나는 너무 많은 문장들을 사랑했다. 귀퉁이를 접어두거나 밑줄을 그을 수 없을 만큼.
두어 문장을 덜어내어 옮기는 것으로는, 한 편의 글에 담긴 마음을 온전히 가져올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저 여러 번 읽었다. 어떤 문장은 한 계절이 다 가도록 자주 떠올리며 걷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G. K. 체스터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사라질 때를 상상할 수 있다면. (…) 사실은 지금도 나는 뭔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시간으로부터 한참 멀어진 지금은 알 것 같다. 어째서 그 시절, 그토록 많은 문장에 사로잡혔었는지. 청춘이 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잊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풍경이, 사람이,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나의 청춘을 대신해 그의 청춘에 밑줄을 긋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봄, 나는 당신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봄의 한가운데를 지나면서도 여전히 아무것도 사랑하고 있지 않은 당신이. 이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ditor 김신지 sirin@univ.me』
솔직한 글이 좋다. 어설프게 ‘우쭈쭈’하는 것보다는 따끔하게 혼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따뜻한 에세이도 좋지만, 따뜻함을 표방하는 글의 대부분은 미지근함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그것보다야 차라리 시원하려 애쓰다 차가워진 글이 더 재밌다. 쿨한 척 하려다 선을 넘고 무례해지지만 않는다면.
이건 순전히 나의 취향이고, 그런 점에서 SF소설가 듀나의 에세이 모음집 『가능한 꿈의 공간들』은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SF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의 영역을 커버한다”는 문장 그대로, 이 책은 이야기의 넓은 영역을 커버한다.
박재범 SNS 소동에서 복수극의 여섯 가지 규칙까지, 스타워즈 이론에서 세월호 관련 낚시 기사까지. 투덜대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은 많지만, 이렇게 논리적으로 투덜거리는 사람은 못 봤다.
애써 자신을 변명하지도 않고 섣불리 불특정 다수를 위로하려 들지도 않는다. 노래 가사처럼 예쁜 단어나 ‘모두 다 괜찮다’는 속삭임도 없다. 본인이 아는 것과 느낀 것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뽑아 단정하게 써낼 뿐이다.
그런데 글을 읽다 보면 모르고 지나쳤던 시간들이 다시 돌아온다. 내가 에세이에 기대하는 바다.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고백하건대 나는 에세이를 안 좋아한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말랑한 감성과, 있어 보이는 수사들이 싫다. 그렇게 멋대로 규정짓고 에세이를 보이콧하며 살다, 대학내일 입사 후 지금의 팀장님께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책에는 “판단하기 전에 많은 것을 관찰하는 에디터가 되길 기원합니다”란 말이 손 글씨로 쓰여 있었다. 그럼에도 별 기대 없이 펼친 이 책에는 하루키의 습작과 소회들이 허세 없이 기록돼 있었다.
<좋을 때는 아주 좋다>란 친구의 결혼 축사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위트와 유부남으로서의 고충, 행복이 모두 담겨 있다.
에세이는 허세로 가득 차고 나르시즘적이라는 내 편견을 산산이 부순 한방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제 ‘슬슬’ 결혼이란 걸 준비해보려고 한다.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썩 나쁘진 않겠지.
소년 같은 위트를 간직한 하루키의 에세이처럼 나도 담백하고 달달하게 천년만년 잘 먹고 잘 살고 싶어라.
Editor 이민석 min@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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