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애인이 혹은 절친이 갑자기 채식을 선언한다면? 얼핏 생각하기엔,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닐 거에요. 뭐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하루 세끼를 다 그 사람이랑 먹는 것도 아니고. 요즘 많이들 시도하니까.
한국 소설 최초로 맨부커상* 을 수상해서 화제 된 한강 작가의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꿈을 꾼 후 채식을 고집하게 된 여자, 영혜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단순한 선언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을 허물어뜨려요.
*멘부커상: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 과거 수상작으로는 <파이 이야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등이 있다.
<채식주의자>는 다수의 폭력, 영혼에 상처를 줄 만큼 치명적인 사건, 일상을 파괴할 만큼 강력한 욕망, 인생의 허무함 같은 것들을 다루고 있어요. 읽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 지고 생각이 많아질 겁니다. 서정적인 문체로 쓰여 있지만, 장면 묘사가 워낙 생생하다 보니, 사람에 따라 섬뜩하다고 느낄 수 있겠네요.
영혜는 겉보기에 무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말이 없었고. 감정 표현을 강하게 하는 사람도 아니었죠. 오죽하면 그녀의 남편은 영혜가 평범해서 좋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녀를 흐릿하게 기억했어요.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요.
그러던 어느 날, 영혜는 갑자기 채식 선언을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고기를 못 먹겠다는 거예요. 냉장고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싹 다 버리고, 계란이나 우유도 버립니다. 육식이, 고기 냄새가 역겹다고 말해요. 그뿐만 아니라 육식을 하는 남편에게서 고기 냄새가 난다며 잠자리를 거부하기까지 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기 시작하면서 영혜는 점점 말라갑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 잘하던 요리도 하지 않고, 잠자리에도 응해주지 않는 아내를 당혹스러워해요. 그는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무리해서 좋은 대학을 원하기 보다는 장학금을 넉넉히 받을 수 있는 곳을 선호하고, 직장도 자신의 대단찮은 능력을 귀하게 여겨주는 작은 회사로 잡았어요. 그런 그가 고르고 고른,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니.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는 질문에 영혜는 “꿈을 꿨다.”고 답합니다. 채식을 선언하기 전날 밤 꾼 꿈이랍니다. 헛간에 들어갔는데 사방이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들로 가득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자기가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고 있더래요.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꿈을 깨고 나서도 생생했다고. 그 섬뜩한 꿈을 꾸고 나니 고기를 못 먹겠다는 거예요.
설상가상으로 어렸을 때의 기억까지 되살아나 영혜를 괴롭힙니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그녀를 물자, 아버지가 그 개를 잔인하게 죽였거든요.
내 다리를 물어뜯은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묶이고 있어. (중략)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 오토바이의 시동이 걸리고, 아버지는 달리기 시작해.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축 늘어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
<채식주의자> 53p
악몽은 계속되고, 영혜는 5분 이상 잠들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얼굴은 긴 불면으로 검게 타서 중병 환자처럼 보여요. 애초에 영혜를 사랑한 적 없는 남편은,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좀 이상한 여자와 산다고 해도 나쁠 것 없다”고 마음을 놓아 버립니다.
그러던 중 영혜는 남편 회사의 부부 동반 모임에 초대됩니다. 사장 부부가 참석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에요. 남편은 영혜가 그곳에서 ‘잘’ 행동해 주기를 바랍니다. 튀지 말고, 별난 행동을 하지 말고, 얌전하게 굴길 바라죠. 채식 선언 전의 영혜가 그랬듯 말이에요.
하지만 사회에서 남과 다른 사람은 필연적으로 불편한 시선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죠.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작은 목소리에 모두가 집중하는 건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다수가 사랑하는 것을 싫어하는 죄로, 영혜는 눈총을 받아요.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남편은 생각합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그녀를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은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채식주의자> 43p
정상과 비정상은 어떻게 나뉠까요? 간단합니다. 당신이 다수의 무리에 포함되면 정상. 포함되지 못하면 비정상이에요. 예를 들어 모두가 네 발로 걷는 나라에 가면, 두 발로 걷는 사람이 비정상이 되는 거에요. 뭔가 이상해 보이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식이 다수의 무리에 들지 못할 때,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억지로라도 정상 범주에 욱여넣으려고 애를 쓰죠.
영혜의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다 함께 모인 자리. 가족들은 영혜가 채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마디씩 하려고 벼르고 있어요. 그녀가 왜 고길 먹지 않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떻게든 그녀에게 고기를 먹이려고만 해요. 다 널 위한 거라고 하면서요.
끝내 고기를 먹지 않는 영혜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는, 그녀의 입에 억지로 탕수육을 쑤셔 넣습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영혜가 그걸 뱉어 버리자 아버지는 폭발해요. 핏줄이 보일 정도로 그녀의 뺨을 세게 때립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데 강제로 먹이는 부모. 그것을 방관한 남편과 형제. 영혜에겐 그들이 가족이 아니라 적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테이블에 놓여 있던 과도를 집어 듭니다. 그것을 치켜들고 가족들의 눈을 차례로 쏘아 봐요.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불안해하던 그녀는 과도로 자신의 손목을 긋습니다. 폭력적인 세상에서 영혜가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었던 거에요.
그 사건 이후 사람들을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병원에 갇힌 영혜. 망가진 시계나 가전 제품을 버리는 것처럼 당연한 태도로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미쳐버린 딸을 더는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부모. 그리고 오직 책임감만으로 영혜를 돌보는 언니. 영혜가 다수의 범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녀를 포함한 그녀 주변의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어요.
폐쇄 병동에 갇힌 영혜는 결국에 자신이 나무라고 믿어 버립니다. 식물이기 때문에 고기뿐만 아니라 음식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마치 나무라도 된 양 물구나무를 서는 영혜에게 언니는 “너 이러다 진짜 죽는다”며 소리칩니다. 그러자 영혜는 답하죠.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
미처 책에 나오는 인물 각각의 이야기를 다 담지는 못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채식주의자>는 세 개의 단편을 묶은 연작 소설이에요. 그리고 이야기마다 화자가 달라집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영혜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요,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그들도 독자 입장에선 위태로워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미쳤다는 진단을 받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 일지도 모릅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정상의 범주에 자신을 억지로 욱여넣고, 고통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무언가를 죽여서 그것을 먹는 행위. 육식은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행위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그래요. 영혜는 그 정상적인 행위에 혐오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 세계 밖으로 튕겨져 나갔어요. 다음은 누구의 차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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