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편집장이자 나의 사수였던 아론 선배의 책이 나왔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 선배와 쏙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범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배는 무엇보다 ‘사랑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애정이 넘실거려 눈물을 쏟는 일도 잦고, ‘좋아하는 게 특기’라고 말한다.

 

그런 선배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애정으로 가 닿으리라 믿으며, 그녀와 마주 앉았다.


# 금방 사랑에 빠진다는 것

저자 소개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좋아하는 게 특기다.” 어떻게 좋아하면, 좋아하는 게 특기가 되나요?

남들보다 많이, 자주 좋아하면 특기가 됩니다.(웃음) 긍정주의자는 아닌데, 기본적으로 뭘 볼 때 마음에 드는 점을 먼저 봐요. ‘귀엽다’는 말을 진짜 자주 하는데, 그 이유가 내가 느낀 애정을 가장 빨리 표현할 수 있는 말 같아요.

 

예쁘다, 어떻다… 면밀히 표현하기엔 복잡하니까, 나름의 매력이 있거나 날 기분 좋게 해주는 것들에 대해 ‘귀엽다’고 하는 거죠. 그만큼 타고난 성격인 것 같아요. 뭔가를 자주 좋아하고, 자꾸 좋아하는 것.

 

책에 보면 피아노, 기타, 노래, 일어, 발레 등등 굉장히 다양한 것에 도전해보셨다고 하던데, ‘금사빠’ 기질이 삶의 지평을 넓혀준 거라고 봐도 될까요?

관심 갖는 것들이 많고, 이것저것 많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좀 더 재밌는 것 같긴 해요. 내 세상에 한국어밖에 없는 것보단 영어도 있고 일어도 있는 게 더 풍요로울 거고. 전문적이진 않겠지만 스스로의 풍요 측면에선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뭐든지 양면이 있는 것처럼 금사빠 기질 때문에 내가 받은 상처나 단점도 진짜 많죠.

 

단점이라면, 금방 달아오르지만 빠르게 식는다는 점이겠죠 ?

그렇죠. 끈기가 굉장히 없죠. 그런데 그 ‘식는다’는 개념이 안 좋아하게 됐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 좋아하긴 하는데 거기에 매진하는 힘이 점점 떨어진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3~4년 전에 기타를 처음 배웠는데, 집중력 있게 그것만 하지 않으니까 진도가 무척 더뎌요. 그래도 “에이, 내가 무슨 기타야” 하면서 시작도 안 해봤다거나, 잠깐 배우고 “어휴, 나랑 안 맞아” 하고 등 돌려버렸다면 기타의 코드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텐데. 계속 계속 좋아해서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인정해주려고 해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라잖아요.

맞아요. 책에서도 늘 가르쳐요. 인생을 걸만한 일을 해야 되고, 하나에 푹 빠질 수 있어야 한다고. 사랑도, 인생도 ‘온리 원’이어야 된다고 가르치는데… 그렇게 해보려고 해도 안 되니까. 예전엔 내가 어려서 관심사가 많은 거고 어른이 되면 변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안 변하더라고요.

 

전 많은 나이가 아닌데도 호기심이나 관심사가 점점 줄어들던데….(우울) 선배는 여전히 궁금한 것도, 좋은 것도 많으신가요?

오히려 끈기가 조금 늘어났다고 해야 하나. 어릴 때는 마음이 더 쏠리는 게 있으면 집어던지고 도망가고 그랬어요. 사람이든 일이든. 지금은 그래도 하나를 쥐고 있는 시간이 길어진 것 같아요. 그때보다는. 옛날에 몰두했던 관심사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요.

 

사람도 엄청 친했던 사람과 소원해지는 때가 있는데, 어느 순간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인생이 워낙 기니까. 백세 인생이잖아요.(웃음)


# 이토록 뜨거운 허무함

“마음이 더 쏠리는 게 있으면 집어던지고 도망갔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그렇게 뜨겁게 살다보면, 반대급부로 엄청 불안하고 허무할 때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허무’라는 걸 빨리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사람이고, 얕은 우물만 팔 줄 알지 안정적인 삶을 쌓아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허무가 찾아오는 순간이 많았어요.

 

우리가 ‘ 허무하다 ’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 그 ‘허무’란게 무슨 뜻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

스물두 살 때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어요. 학교를 다니면서는 친구들과 밴드를 했는데, 그 삶이 나를 꽉 붙들고 있었어요. 나는 밴드와 그 사람들이 없으면 내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로밍도 안 되고 스마트폰도 없으니 그들과 접촉이 끊어진 채 두 달 반 정도를 살아야 했어요. 유학원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새롭게 그룹을 꾸려가면서 내게서 보지 못했던 성격과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지내다가 생각했어요. 이전까지 내가 말하고 믿어왔던 것들이 사라져도 나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구나. 여기서 이렇게 지내는 것처럼.

 

삶이 언제든지 끝나거나 바뀔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허무’ 같아요. 우리는 우연히 같은 자리에, 같은 세대에 태어나서 함께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소중하고.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직시하는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이나 결핍을 피하거나 다른 것으로 덮어버리지 않는게 좋아 보였어요.

나 자신을 좋아하려면 내 마음부터 들여다봐야 했어요. 내 감정을 감출 만큼의 큰 감정을 다른데서 찾아서 덮어버리면 나를 잊게 되잖아요. 그게 오히려 불안했던 것 같아요.

 

내가 스스로한테 묻고, 그 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날 끌어 안아주고 있단 느낌이 들었어요. 얕은 우물만 많이 파고, 사람에게 자꾸 상처 받는 내 모습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멍청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내 성격을 있는 그대로 끌고 나가려면 내가 나한테 괜찮다고 계속 얘기해줘야 했어요.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많은 친구들이 ‘단점은 고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선배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이유를 모르겠다고 느낄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해요. “네가 너무 사람의 좋은 면만 보고, 좋은 말만 듣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어요, 사실. 전 원래 좋아하는 사람들의 좋은 이야기만 기억하기 때문에.(웃음) 이것저것 좋아하는 저를 나쁘게 보는 이들도 있었고, 왜 그렇게 헤프냐고 했던 연인도 있었지만…

 

날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난 그냥 그렇게 느껴서 내뱉은 칭찬인데, 누군가에겐 정말 필요한 순간에 와 닿는 말일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모든 것이 무(無)’라는 걸 알게 되면, 무척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힘. ‘절대적인 무의미함’을 안다는 건 분명 괴로운 일일 수 있지만, 대신 삶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보편적인 행복이 아니라도 자신있게 의미있는 것이 생긴다면 지 까지의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무(無)로 돌아갈 거니까, 그동안 최대한 ‘나로 살아가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 中


#어른이기 전에 나

회사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부족한 건 채우고 넘치는 건 깎아서 나를 둥글게 만드는 건가?

저도 그런 생각 정말 많이 했어요. 지금도 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요. 사회적 자아를 만들거나 정말로 자길 고치거나.

 

전 전자 쪽을 택하는 편인데, 가끔 사회적 자아로 아무리 덮어도 삐져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아닌 척하려고 해도 안 되는 부분들. 자책도 많이 했지만, 어쨌든 일을 하기 위해 자아를 하나 더 만들었다는 자체가 응원 받아 마땅한 일 같아요.

 

‘일 자아’란 걸 만드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데. 거기서 까지 완벽한 밸런스를 맞출 필요 없어요. 이만큼 해나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거죠. 그러니까 스스로 응원해주면서 앞으로 더 나아가면 돼요.

 

쿨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요. “일 말고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그런데 자꾸 회사에서의 ‘나’가 ‘지배적인 나’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어요.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여기서 잘 하지 못하면 스스로가 ‘별로’인 인간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나는 싸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일을 계속하고 돈을 벌겠지만, 결국엔 일을 하지 않는 날이 오잖아요. 정년까지 일을 한다고 해도, 일하지 않으며 살아가야 할 날이 그만큼 남아 있는데. 백세 인생이니까!

 

좋은 직장인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덕목이 있잖아요. 그것을 충실히 따라서 정말 좋은 직장인이 됐다 쳐요. 그건 그냥 좋은 직장인 전아론이지, 좋은 인간 전아론은 아닐 거예요.

 

저는 ‘나’로서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요. 이 책에도 제 삶에도 그 생각이 짙게 녹아있죠.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데, 내가 아닌 어떤 ‘좋은 존재’가 되기 위해 나를 죽일 필요가 있나?

 

‘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들 특별한 부분이 있어요. 그게 늘 좋은 점은 아니겠죠. 하나에 집중력이 대단히 높으면 다른 여러 가지를 못 본다든가, 저처럼 이것저것 좋아하면 깊이 못 판다든가.

 

자기가 모났다고 여기거나 삐져나왔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나에게 있어 예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책 제목에 ‘빛나는 예외’란 단어를 쓴 이유예요.

 

우리가 스스로를 모두 ‘빛나는 예외’라고 여기며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랑한다는 건 그냥 받아들인다는 뜻 같아요. 내가 내 애인을, 내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그들이 최고라서가 아니에요.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이니까.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도 그냥 나니까 사랑해주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나쁜 면이 있어도 그냥 ‘난 이런 사람이구나’ 받아들여주는 것. 누군가 욕을 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거울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그런 생각을 한 날이 있다. 마치 모자이크처럼, 여러 가지 나의 조각들이 모여서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거라고. 어떤 조각은 아프고 어떤 조각은 예쁘지만 좋은 것만 골라내 나를 만들려고 하면 부분 부분 구멍이 뚫리고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하다고.
–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 中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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