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벗겨져도 맛만 있더라

스텔라 아르투아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성은 특별하다. 여행이 주는 들뜬 분위기, 일상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 오늘이 아니면 그녀를 볼 수 없단 절박함이 어우러져 평소보다 과감해지고 쉽게 설렌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후 다시 만나면 대체로 별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였을까. 유럽에서 맛본‘스 텔라 아르투아’가 처음 편의점에 출시됐을 때도 계산대로 가져가길 주저했다. 잠시나마 날 설레게 했던 H양과의 추억이 서린, 정말 맛있게 먹었던 맥주였지만 그때의 감정과 환상이 깨지는게 두려웠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 손엔 차가운 캔이 들려 있었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들이켠 첫 한 모금. 걱정은 기우였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날의 공기,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기억날 만큼 완벽한 맛의 재현이었다. 22살 청년이 30살 아재가 됐고, 벨기에에서 판교로 장소가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건 이 녀석의 훌륭한 맛뿐이다. 조금 슬프니 오늘은 맥주를 마셔야겠다…!

 

Editor 이민석 min@univ.me

 

 

쫄깃하고 폭신한 치즈의 보살핌

덴마크 인포켓 치즈 오리지널

우리의 첫 만남은 불닭볶음면 덕분이었다. 웬만큼 비운 볶음면에 삼각김밥을 올리고 스트링 치즈를 얹은 다음 전자레인지에 1분만 돌리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는 말에 솔깃했다. 설레는 맘으로 편의점에서 필요한 재료를 담았다. 그러다 ‘덴마크 인포켓 치즈’를 발견했다. 조막만한 크기에 통통한 몸매를 가진 치즈는 모양만으로도 “나 한 쫄깃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돌아와 라면물이 끓기를 기다리는데 자꾸 치즈로 눈이 가는 거다.

 

에잇, 모르겠다. 먼저 한 입. 물 부으며 또 한 입. 볶음면 먹으면서는 매우니까 크게 한 입…. 전자레인지에 돌려야 할 때쯤 치즈는 영예롭게 없어져 껍질만이 남았다. 그날 이후 삼시세끼 챙겨 먹어야 할 약처럼 이 치즈를 달고 살았다. 바쁜 등굣길에,긴 오후에, 출출한 새벽에 치즈는 든든한 동반자가 돼줬다. 어느새 치즈를 온갖 음식에 넣어 먹는 스킬을 발휘하고 있지만 우윳빛깔 인포켓 치즈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순수해져 이렇게 고백하곤 한다. “네 있는 그대로의 맛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런 치(킨 말고 치즈)덕이 될게.”

 

Intern 손수민 sum@univ.me

 

 

마에스트로의 달걀

감동란

달걀 껍질을 조심스레 깐다. 반들반들한 아기 얼굴 같은 동그란 몸체가 눈에 들어온다. 바닥에 던지면 톡 튀어오를 것처럼 탱글탱글한 흰자, 퍽퍽함과 쓴맛은 1도 느껴지지 않는 촉촉한 노른자. 간이 잘 배어 있어 소금은 필요 없다.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아서 내 입맛에 딱 맞다. 편의점 달걀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나 싶었는데. 두 알에 1600원짜리 계란이 나에게 감동을 준다. 내가 삶아도 이렇게는 못 삶을 것 같다.

 

이쯤 되면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20년 경력의 물 사업가와, 40년 노하우의 계란 사업가가 마음을 합쳐 만들었다. “남은 인생은 이 달걀에 걸고 싶습니다”는 마음으로 달걀만을 만들었다니. 이쯤 되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본다. 나는 이 달걀을 장인의 달걀이라 부르고 싶다.

 

Editor 조아라 ahrajo@univ.com

 

 

다이어트 하는 척

비요뜨

편의점에서 뭘 사 먹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맛이 없다. 삼각김밥이 아무리 맛있어 봤자 분식집에서 파는 참치김밥의 고소함을 따라올 수 없다. 컵라면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집 찬장에서 대충 집히는 대로 냄비에 끓인 라면의 국물 맛을 따라잡을 수 없다. 아무리 반찬 수를 늘렸다 해도 편의점 도시락은 김혜자 선생님의 따뜻함과 ‘비교 불가’다. 그럼에도 우리는 편의점에 간다. 싸서, 바빠서, 귀찮아서. 그러나 딱 하나, ‘먹고 싶어서’ 편의점을 찾게 만드는 것이 있다. 다양한 음료들 사이에서 이채로운 모양새를 뽐내는 비요뜨다.

 

콘푸로스트도 아닌것이, 요거트도 아닌 것이, 초콜릿도 아닌 것이 애매하게 뒤섞일 법도 한데 요거트와 초코링의 조화가 서로의 맛을 살려주니 윈-윈! 그리고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편의점 음식들에 비해 건강한 느낌을 준다. 초콜릿이 들어 있음에도 심지어 ‘다이어트’ 음식 취급까지 받는다. 물론 비요뜨 하나로 한 끼 식사를 마쳐야 다이어트가 가능하겠지만, 편의점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훌륭하다.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가늘고 길게 가는 맛

끌레도르 녹차

꿀 강의를 잡는 것보다는 월요일 공강을 만드는데 온 우주의 힘을 집중한다. 토·일·월 연속 사흘을 게으르게 보내야만 나머지를 근근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월 공강은 봄에 더욱 빛을 발한다. 활기찬 일주일의 시작점인 월요일에 월 공강파는 게으름으로 맞선다. 월요일이면 친한 동기들과 한강에서 해 질 녘까지 봄의 풍류를 즐기곤 했다. 사실, 놀다가 돌아가는 길은 좀 허무하기도 했다. 바로 옆에서 웃고 떠들던 소리가 사라지면서, 청춘도 금방 지나갈 거란 게 와 닿았다. 지난주에 핀 꽃이 이번 주엔 지는 게 보이니 더욱.

 

그때마다 위로가 되었던 건 집 가는 길에 있던 편의점, 그리고 거기서 파는 ‘끌레도르 녹차’. 맛은 참 밍밍하다. ‘내가 녹차 아이스크림인가?’ 하고 정체성에 대해 고민까지 했을 그런 맛. 근데 여운은 은근히 오래간다. 230kcal나 되는 열량 때문일지도…. 또르르. ‘또 처음부터 흐지부지하게 살았구먼….’ 한량도 자책을 하긴 한다. 그렇지만 곧바로 셀프 위안도 한다. 마음을 통통히 살찌웠던 날들이다. 지금도 그날의 농담들이 떠올라 웃곤 하니까. 그 월요일들은 참 밍밍하고, 길고 가늘고 그랬다. 끌레도르 녹차 맛처럼.

 

Intern 공민정 gong@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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