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판관 포청천>이라는 중국드라마를 좋아했다. 포청천이 화난 얼굴로 “개작두를 대령하라!”고 호령하면, 카메라는 둔탁해 보이는 작두를 클로즈업 했다. 지금 생각하면 ‘싹둑’ 소리가 조금은 잔인했던 것 같지만, 사이다 같은 엔딩은 나를 배반한 적이 없다.

 

나도 어른이 되면 나쁜 작당들에게 개작두를 들이미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 으나, 생각보다 잘 타협하고 있어서 나도 놀랐다. 깐풍기가 먹고 싶어도 눈치껏 짜장면을 시키면서. 나의 작은 불의쯤은 허허 웃어넘기면서.

 

얼마 전 김수정 변호사를 만났다. 책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를 펴낸 글쓴이 8명 중 하나다. 그녀는 지금껏 넘어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변론해왔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스무 살 미혼모, 성형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를 당한 연예인 지망생 등등.

 

그녀는 모든 싸움에서 이기지는 않았으나, 아니라고 생각하면 손을 들어 반대한다. 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소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삶은 어떤 것인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할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혼자만 튈 거야? 너만 다르게 생각하지 마

 

양심적 병역 거부. 십 수 년 전 크게 화제가 되었던 그 사건을 초년 변호사 때 맡게 됐어요. 종교 신념에 따라 군대를 안 간다? 당시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비판도 많이 받았겠다고요? ‘비판’은 좋은 표현이죠. 엄청난 ‘비난’을 받았어요. “너네는 이 나라 국민 아니냐?” “남이 지켜주는 나라에서 너희만 발 뻗고 편하게 살겠다는 거냐?” “너만 양심이고, 다른 사람들은 비양심이라는 거냐?” 등등. 이건 선한 욕에 속해요.

 

그래요. 사람들은 “군대 가면 비양심이냐?”라고 반박했었죠. 하지만 저는 둘 다 양심이라고 생각해요. 양심은 저마다 다른 것이잖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 양심이에요. 또 누군가에게는 총을 들지 않는 것이 양심이고요.

 

일본식으로 번역된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용어 때문에 언어적인 이분법이 생겨난 것 같아요. ‘양심에 따른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가 더 맞는 용어인데, 일본식으로 ‘양심적’이라고 번역되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게 아닐까요?

 

두려움은 없었어요. 그저 잘 해결되길 바랐죠. 저도 양심을 한 번 배반한 일이 있어서 오랫동안 괴로웠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대학 시절 시국사범으로 구속된 적이 있어요. 그때 경찰은 반성문을 쓰라고 종용했고, 선배들은 “빨리 반성문을 쓰고 나와서 다시 운동에 합류하라”던 상황이었어요. 결국은 감옥에 있는 내내 반성문을 매일 썼고, 준법을 매일 약속한 뒤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어요.

 

제게는 부끄럽고 아픈 기억이에요. 잘못된 법과 제도에 맞서 싸웠던 제가 반성문을 써야 했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고 견딜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이 일은 현재 진행형이에요. 얼마 전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 변호사를 만났어요. 그는 재판을 받았고 선고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얼마 전 “지금 교도소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전화를 걸어왔어요.

 

제가 맡은 사건은 아니었지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아직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우리 어른들이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해 젊은 청년들이 죄도 없이 감옥에 가는구나, 마음이 아팠어요.


안 봐도 비디오. 걔는 그럴 게 뻔하지

 

일을 하다 보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몇 날 며칠, 몇 달이고 한 사람의 인생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직업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살인자나 강도 같은 범죄자를 보면서 진짜 무섭고 나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그들을 막상 만나보면 그저 평범한 이웃이 많죠.

 

어떤 상황이나 순간이 그들을 순식간에 범죄자로 만들곤 하거든요. 물론 범죄가 절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사람이 많아요.

 

이해가지 않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경우가 참 많아요. 한번은 자식이 부모를 칼로 찌른 존속 폭행 사건을 맡았어요. 언론에선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해치느냐’는 점이 부각됐고, 모두들 패륜아라 손가락질 했죠.

 

하지만 이면에는 잔인한 아동학대가 숨어 있어요. 군인인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남매를 나무에 묶어 혁대로 때리는 등 학대를 했고, 커서도 남매를 괴롭히자 그런 일이 일어났던 거예요.

 

언론은 이들을 향해 쉽게 삿대질을 해요.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다른면이 보여요. 20대 미혼모는 또 어떤가요. 입양 보낸 어린 엄마가 자식을 되찾으려는 사건을 맡으면서, 입양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죠.

 

이면에 가려진 엄마와 아기의 고통을 알게 됐거든요. 입양이 선한 행위임은 맞지만, 가능하면 친부모가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서면 너만 손해야

 

개인의 특성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조직의 체계나 문화 때문에 벌어지는 일도 있어요.

 

군대 안의 폭력이 대표적인 사례예요. 위계질서가 엄격해서 상관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이기 때문에, 도와 달라고 말할 수도 없어요. 외부에 알리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려요.

 

문화를 바꾸고 쓸모 있는 제도로 바꿔서 근절해야 하는데, 예방책을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이슈가 되면 그 사건만 메우는 일시적인 대책만이 나와요. 잘못을 알리려는 시도가 한 번 좌절되면, 당한 사람들은 더 안 해요. 그럴수록 폭력은 은폐되겠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 어쩌면 삶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요? 안전망이 없으니까요.

 

해고처럼 공동체에서 떨어져나가는 일을 겪으면,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는 상시적인 불안감이 생겨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자기 양심도 배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엔 마음 아픈 산업재해 사건을 맡았어요. 어떤 분이 회사 야유회에서 추락사를 당했는데, 공단에서는 인정을 못 받았죠.

 

나중에는 동료들의 증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다들 증언하기를 너무 힘들어하시는 거예요. 혹시라도 회사에 밉보이는 일이 아닐까 해서요.

 

증언하지 못하는 상황도 참 괴롭죠. 차라리 증언하고 나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죽은 동료를 위해 그것 하나 못 해주는 것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괴로워해요.

 

하지만 그런데도 못 해요. 저는 이 상황이 참 안타깝더라고요. 사실 이번 일은 회사와 싸울 일이 전혀 없는 실족사였음에도, 불안감 때문에 동료를 못 도와요. 회사에 밉보여 해고당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두려움이 상상 이상으로 커요.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냥 포기해

 

연예인을 꿈꾸던 18살 여고생이 있었어요. 기획사의 권유로 성형수술을 받기로 하고, 기획사가 소개한 병원의 수술대에 오르게 됐죠.

 

그날 소녀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식물인간이 됐어요. 부모는 의사로부터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고, 의사는 자신에겐 잘못이 없으며 불가항력인 일이었다는 설명을 반복했어요. 부모는 치료비로 집을 잃었고, 물리치료를 계속할 돈이 없어서 딸의 건강은 악화되고 있었어요.

 

물론 6년간의 소송 끝에 잘 마무리됐지만, 가족들이 그간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잘’ 마무리됐다는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어요.

 

평범한 사람이 의사의 과실을 증명하기란 어려워요. 의사들이 진료 기록을 독점하고 있고, 설령 병원에서 차트를 입수했다고 해도 평범한 사람은 의학적 지식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들죠.

 

사실 일반적인 민사 재판에선 원고(소송을 제기한 사람)가 피고(소송을 당한 사람)의 잘못을 입증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의료 사고처럼 특별한 사건들이 있잖아요. 강자와 약자가 붙을 때는 좀 더 강하고 전문적인 사람이 입증하도록 해야 할 텐데요.

 

외국에서는 의료 사고가 일어날 경우, 잘못이 없었음을 의사가 증명하도록 하는 곳도 많아요. 의사의 과실을 환자에게 증명하라고 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에 가까워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선 그래야 해요. 물론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선 안 되겠죠.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정말 잘못한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마는 일을 옳은 방향으로 돌려놓는 일. 보람도 있고 힘들기도 하죠. 그런데 오래 일할수록 소심해져요. 꼭 이겨야 할 사건인데 예측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지거나, 아니면 어떤 힘 때문에 지기도 하거든요.

 

변호사 1~2년 차 때는 열심히 하면 이긴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일이 점점 어렵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의뢰인의 삶의 무게까지 짊어져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승패에 대한 부담으로 몇날 며칠 못 자기도 해요.

 

그럼에도 저는 현재 삶이 그냥 저냥 괜찮습니다. 물론 제가 쓴 글에 악플이 달릴 때도 있고, 제가 맡은 사건에 반대해 멱살 잡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요.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요? 원하지 않아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할 것 같아요.

 

직업이 필요해서 고시를 공부했는데 다행히 변호사가 됐어요. 번역가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랬더라면 지금보다 창의적인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겠죠.

 

그래도 제 일이 가끔은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돕고, 또 가끔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어 후회는 없어요.

 

Photographer_이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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