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에게 약한 간을 물려주셨다. 술을 많이 마셔서 좋을 것 없다는 교훈을 몸소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술이 약해서 술자리가 싫은 건지, 술자리가 싫어서 술이 약해진 건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모두가 술잔을 들고, 병들이 술상 위를 날아다니는 이 전쟁터 같은 상황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피를 뒤집어쓴 듯 붉게 물든 얼굴로 잠기어 가는 의식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모습은 흡사 전쟁에서 진 패잔병의 모습이다. 알코올의 침략에 중추신경계와 ‘즐거운 분위기’를 지키지 못한 채 하나둘 쓰러져 가는 병사들의 모습은 비참하고 처절하다.

 

“나 너무 취해서 먼저 올라갈게.” 술로 떡이 된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다락방 속, 먼저 이불을 펴는 사람은 나다. 다락방 아래에선 술 게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술로 인해 달아오른 것은 얼굴이 아닌 분위기.

 

늙은 나이에 들어간 대학이라 세대 차이를 느끼는 걸까? 당최 저 ‘두부 게임’이 무슨 게임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욕설과 비명소리가 웃음 소리와 섞여서 피어오른다. 다락방 위에서 내려다본 아래 세상은 고기 냄새, 술 냄새, 욕설과 웃음, 비명이 섞여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그마 같다.

 

“00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초성 게임! ㄱㅈ!!”

“과자!”

“걱정!”

“고자!!”

“아악! 뭐야, 이 새끼 미쳤나봐!”

“왜, 고자도 표준어다!”

 

술 게임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초성 게임’을 좋아한다. 쉴 새 없이 ‘딸기’를 외치며, ‘아악! 쇼킹~’ 비명을 지르는 게임보다는, 술로 마비돼가는 이성의 끈을 붙잡아주는 것 같다. ‘어떤 개그가 이성에게 호감을 일으키는가?’라는 엉뚱한 연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개그’가 제일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억지로 술을 들이켜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아이들은 구호를 외치며 환호한다. “으! 으! 술이 들어간다! 쭈욱 쭈쭈쭉!” 음담패설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자신의 밑바닥을 거침없이 드러내주는 녀석은 오늘 술자리의 MVP이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하여, 드러내는 자신을 잊기 위하여, 아니면 잊기 위한 변명을 만들기 위하여 소맥으로 정신을 흥건히 적신다. ‘지금 내 모습’을 외면하려 발버둥 친다. 술은 모두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섹시 댄스’ 타임이 왔다. 다시 한 번 비명이 울려퍼진다. 시끄러움에 잠을 청하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소란스러움은 술자리의 패잔병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벌이다. 지금 이 순간은 누가 승자이며 무슨 룰을 따라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가?

 

“커플 샷! 커플 샷!”

“무릎 위! 무릎 위!”

 

주변 외침에 어린 여학생이 쭈뼛쭈뼛 오빠의 무릎 위로 향해간다. 팔과 팔이 서로의 목덜미를 휘감는 순간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즐거운 분위기’라는 명목하에 모든 행동이 ‘놀이’로 바뀌는 이 순간, 누군가는 이번 엠티에 큰 수확을 얻어간다. 한 달 동안의 술자리 안줏거리로 손색없다.

 

섹시 댄스가 이어진다. 형광등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하며 어설픈 조명 효과가 퍼져나간다. 섹시 댄스 타임 때 불이 번쩍거리는 이유는 분명 부끄러워하는 댄서의 얼굴을 가려주기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조명의 깜빡거림에, 자야겠다는 의식마저도 깜빡거리지만 별수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침묵은 패잔병들이 감내해야 할 벌이다. 지금 이 순간은 누가 승자이며 무슨 룰을 따라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가?

 

오줌이 마려워 몰래 방을 빠져나간다. 발에 뭔가 밟힌다. 먹다버린 닭강정 소스가 찐득거린다. ‘강정….’ 즐거운 표정으로 ‘고자’를 외치던 친구에게 ‘강정’이라는 단어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그치만 가려쳐준들 그 친구는 당당하게 ‘고자’를 외치겠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그제서야 엠티를 온 이곳이 자연휴양림임을 알았다. 아침 일찍 방을 나선다. 바닥에는 새벽까지 술을 마신 친구들이 누워 있다. 밤의 승자들이 아침의 패자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아침 새벽의 편백나무 숲을 조용히 걸었다. 엠티비가 아깝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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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lancer 송은호 bearboysong@naver.com

Illustrator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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