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일 년에 한 번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 누구나 그날에는 진심 어린 축하와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애매한 날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생일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나는 왜 하필 이런 날에 태어난 거냐며 투덜거리는 사람 4명을 모아 그들을 이야기를 들어 봤다. 자 울지 말고 얘기해 봐요. 누가 더 불운한가 봅시다.

 


4월 2일(만우절 다음 날이 생일) 
내 생일은 완벽하다, 물론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나 내일 생일이라고. 제발 믿어 줘. 얘들아.

 

솔직히 말하자면 내 생일은 꽤나 불행했다. 생일 전날, 친구들에게 “나 내일 생일이다!” 라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 왜냐면, 내 생일이 만우절 다음날인 4월 2일이니까. 나중에 진짜 생일임을 안 친구들은 “차라리 만우절 날 태어나지 그랬어?”라며 멋쩍은 위로를 보냈다.

 

불운한 생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4월. 누가 죽음의 4 아니랄까 봐 생일이 되면 안 좋은 일이 종종 생겼다. 4월만 되면 가세가 기울어서 생일파티를 해본 적이 없다. (진짜로 거짓말처럼 내 생일 즈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고등학교 때는, 야자 끝나고 집에 왔더니 가족들이 다 자고 있어서 그냥 그렇게 생일이 지나갔다.

 

사연을 아는 친구들은 불운하다며 놀리지만, 난 그럼에도 내 생일이 완벽하다고 자부한다.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보면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해답은…!!”
“42입니다.”


 

라는 대목이 있다.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42이라니. 그렇다. 내 생일 4월 2일! 고로 내 생일은 완벽하다. 절대 내 생일은 불운한 게 아니라고! 믿어 줘!

 

서부엉 에디터 moowlon@univ.me


2월 29일(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생일)
내 생일은 매년 있었다. 너무 짧아 챙기기 어려울 뿐.

29일을 만들어서 붙이고 싶다.

 

“진짜 4년에 1번씩 생일이 와?” 혹은 “그러면 지금 몇 살인 거야. ㅋㅋ”
라는 질문을 살면서 정말 자주 들었다. 2월 29일 윤년 생일인 탓이다. 2월 29일생의 최악의 단점은 사실 이런 상투적인 질문을 매년 듣는다는 점이다. 굳이 질문에 답변을 하자면. 윤년이어도 법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나이는 먹는다. (안 먹었으면 좋겠지만) 그리고 진짜 생일이 4년에 1번씩 오느냐? 그건 관점에 따라 다르다.

 

어릴 적 나는 윤년의 의미를 알지 못해, 왜 내 생일만 있다가 없다가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올해엔 생일이 있다고 하면 “와! 있다! 있어!” 이러는 실정이었다. 퍽 궁금해진 나는 이유를 물었고, 그 순간 어머니는 내 일생을 흔들어 놓을 구라를 치셨다. “음… 원래 잠깐씩은 있어. 2월 28일과 3월 1일 사이에 잠깐.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어린 나로선 그 이야기가 제법 신비한 진실처럼 들렸다. ‘그렇다. 내 생일은 매년 있었다. 너무 짧아 챙기기 어려울 뿐.’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2월 28일 밤 11시 50분쯤부터 응접실 소파에 앉아 시계를 응시하는 버릇이 생겼다. 초침이 째깍 대고 마침내 분침이 12자에 다다르는 신비한 순간 ‘지금이 내 생일이닷!’이라는 약간의 희열이 찾아온다. 잠깐의 시간을 만끽한 다음 다시 침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 뒤 그 신비한 시간에 대해 다시 물었지만 정작 어머니 본인은 기억을 못 하셨다. 아마 어머니 당신도 이유를 몰라 이리저리 둘러대셨을 테다. 하지만 어머니의 ‘구라’ 덕에 나는 시간에 대해 환상적인 관점을 가지게 됐다. 감수성 예민한, 물고기자리들만이 느낄 수 있는 신비한 순간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4년마다 한 번씩 생일이 오느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아주 짧은 신비한 생일 3번과, 그냥 평범한 긴 생일 1번이 온다고 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정상적으로 답하지만.

 

이정섭 에디터 munchi@univ.me


12월 25일(크리스마스가 생일)
더는 내 생일이 크리스마스에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크아앙! 크리스마스 때문에 내 생일 묻혔어!

 

내 생일은 예수님과 탄생을 함께한 크리스마스이다. 언젠가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생일을 크리스마스라고 알리는 순간, 돌아오는 답변이 뻔히 예상됐다. “특별한 날에 태어나서 좋겠어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크리스마스가 생일이라서 좋은 점을 굳이 꼽자면,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는 생일이기 때문에 두 번 말하는 수고로움을 던다는 것 외에는 딱히 없다. 뇌리에 강렬히 남을지는 몰라도, 크리스마스에 생일이 파묻히기에 십상이다. 생일 선물로 케이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위를 둘러보니 너도나도 손에 케이크가 들려 있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서글펐다. 흔히 말하는 ‘개나 소나’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나만의 특별한 날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언제나 생일 축하 메시지에는 ‘생일 축하’와 ‘메리 크리스마스’를 동시에 받아야만 했다. 어렸을 땐 크리스마스와 생일 선물을 하나로 합쳐서 주는 부모님이 야속했다. 한 번은 교회에서 받은 과자 선물 꾸러미를 생일 선물로 치자는 엄마의 장난에 한바탕 엉엉 운 적도 있었다.

 

주인공 자리를 뺏기고 조연으로 밀려난 여배우의 마음이 이랬을까? 예수님 생일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더는 내 생일이 크리스마스에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야, 빼앗긴 내 생일을 돌려줘.

 

최현정 ochoic@univ.me


5월 8일(어버이날이 생일) 
어버이왕 vs 생일왕

생일에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 먹을 때 마다 죄지은 기분…

 


“남들은 어버이날이라고 자식들이 여행을 보내준다, 용돈을 준다, 하는데… 뭔 놈의 팔자가 평생 어버이날 미역국이나 끓여대고 있으니, 원…”
“누가 미역국 끓여달라고 했어요? 나는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아세요? 나도요, 매번 생일 때마다 죄지은 기분이라고요!”


 

소설가 이기호 신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에는 생일이 5월 8일이라서 불운한 남자가 나온다. 그는 늘 자기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어버이 은혜’를 불러야 했으며,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친구들이 어버이날에 술을 마시고 들어갈 수는 없다며 일찍 집으로 돌아가 버려 쓸쓸한 생일을 보내야 했다.

 

나는 그 남자를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초등학교 때는 그 제대로 된 생일 파티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어버이날에 자식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수고로움을 드릴 수는 없으니까! 한번은 너무 생일 파티가 하고 싶어서 어머니께 말하지 않고 친구들을 초대한 적도 있었다. 문구 세트를 손에 든 초딩 무리가 갑자기 찾아오자 어머니께서는 당황하셨고, 급하게 나가서 케이크와 간식을 사 오셨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후 나는 어머니께 혼이 났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 파티였다.

 

물론 어버이날이 생일인 덕분에 우리 가족은 내 생일과 어버이날은 절대 잊지 않는다. 어버이날 선물을 드리면 부모님은 “너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씀하시곤 한다. 나중에 자식을 낳는다면 그 애들은 아버지 생신과 어버이날을 ‘퉁칠 수’ 있어서 좋아할 것이다. 아 그보다 먼저, 결혼하면 내 생일에 챙겨야 할 어버이가 2배로 느는구나. 휴…

 

이성규 LEESGY@schaeffler.com


photographer 김수현
editor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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