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내가 개복치인 부분?

‘살아남아라! 개복치’ 게임이 유명해진 후, “이거 내가 너무 예민한 거니?”라는 말은 “나 개복치임?”이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개복치, 바다에 사는 주제에 물이 차가워 죽고 바다거북을 만날 것이 두려워(지레 쫄아서) 죽고 아침 해가 강해서 죽어버리며 수많은 게임 유저들을 농락했던 예민 종자.

 

어떤 관계보다도 섬세한 연애에서는 때로 별거 아닌 일에 서운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연애 중에 내가 개복치는 아닌지 걱정하며, 서운하지만 서운한 티를 낼까 말까 고민하는 네 가지 사례를 수집했다. 오늘은 내가 개복치 감별사!

 

case 1. 연인의 틀린 맞춤법이 거슬려요

문자 보낼 때마다 맞춤법 검사를 하는 건 힘들겠지만…

 

사실 평소에도 거슬리긴 했다. 연애 초반에는 감히(?) 지적질을 할 수가 없었고 내 눈으로 보면서도 ‘에이, 오타겠지’ 넘어가려 했다. ‘어의없는 일을 당했내.’ 같은 맞춤법 파괴 현장에 근조 리본이라도 달아주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던 A가 결국 폭발해 버렸다.

 

평소 운동에 관해 깊은 식견과 자기만의 철학을 뽐내던 연인이 “오랜만에 운동하니 ‘보갑’ 쓰는 법을 몸이 까먹었더라.” 라고 말했다. A는 ‘보갑’이 뭔지 몰랐다. 새로운 운동 용어이니 하며 혼자 이리저리 추측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A는 물었다. “나 ‘보갑’이란 말은 처음 들어봐. 무슨 말이야?” 그는 당연하다는 듯 “보갑 몰라? 보갑. 코어를 이용해 파워를 내는 거.”라고 답했다. 보갑은 ‘복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맞춤법에 1. 무지하고 2. 그것을 지적했을 때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과는 연애 못 하겠다고 말하고 싶지만(그래, 나도 개복치인 것이다), 2번까지 가지 않고 1번에만 해당하는 이를 연인으로 두고 있다면 감정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해보자.

 

틀린 맞춤법 때문에 사랑이 식는 건, 그것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이후 그의 노력 여하를 지켜본 후에도 늦지 않다. (조심스럽게) 지적했을 때 파르르 떨며 화를 내거나 자길 무시하냐고 따진다면, 개복치만큼 예민한 당신의 촉을 고맙게 여겨야 할 때다. 아마도 그는 그가 갖추지 못한 덕목이 드러날 때마다 불같이 화를 낼 테니.

 

case 2. 내 사진만 이상하게 찍는 연인이 거슬려요

 

우리는 사이가 아주 좋았다. 식성이나 영화 취향, 여행스타일도 잘 맞았다.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서로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그가 카메라를 꺼내기 전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두 사람이 함께 나온 셀카를 처음 찍었을 때, 반쯤 눈을 감고 있는 내 얼굴이 못마땅했지만 어디에 올리지만 않는다면 참을만했다.

 

내가 카메라 들고 내 타이밍에 맞춰 다시 찍으면 되니까! 문제는 그가 멋진 풍경 속에 날 세워놓고 찍은 사진이었다. 음식 사진도 잘 찍고 풍경 사진도 잘 찍는데 왜! 내! 얼굴은 커 보이고 다리는 짧아 보이게 찍는 것인가!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작정하고 꾸미고 나온 벚꽃놀이 날, 그가 찍은 내 못생긴 사진을 보고는 더는 못 참고 소리 질러버렸다. 이거, 내가 너무 예민한 거니?

 

– 후…(한숨). 이거 사실 본인 경험담이다. 그는 자기 고양이, 자기가 먹은 밥, 자기 오토바이, 자기가 본 풍경은 기가 막히게 잘 찍는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 내가 예쁘게 보이지 않는 걸까? 아니라는 걸 뻔히 알지만 계속 그딴 식으로 사진이 나오면 근본적인 것부터 의심하고 슬퍼진다.

 

본래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든, 사진 같은 거 찍어본 적도 없는 흙손이든 서운한 건 서운한 거다. 근데 그거 애정도랑 딱히 상관관계는 없더라. 그러니 요구하자. 사진 찍을 때 수평 수직 맞추는 기본적인 것부터 구체적인 포인트까지. 그리고 둘이 셀카 찍을 때, 내가 만족할 때까지 찍고 내가 더 잘 나온(!)게 나올 때까지 찍자. 애정이 있다면 그 정돈 참아 줄 거다.

 

case 3. 남친의 섹드립이 거슬려요

 

실은 썸을 탈 때부터 약간 꽁기하긴 했다. 19금을 암시하는 말 같긴 한데 내가 거기서 뭐라고 반박하면 분위기 조금 싸해지는 그런 거. 왜, 그런 거 있잖아. 내가 지금 설명을 잘 못 하겠는데, 듣고 있다 보면 뒤늦게 ‘당했다’ 싶은 그런 거. 그런 상황이 두어 번 있었는데 좋아해서 잘 보이고픈 마음이 커서 쏘아주질 못하고 흘러가 버렸네.

 

근데 남친형… 우리 아직 사귄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같이 밤을 보낸 적도 없는데, 그런 과감한 농담은 좀 아니잖아요…. 형이랑 내가 나이 차이가 좀 나니까, 아재 개그라고 관대하게 넘어가려고 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내가 개복치인가요.

 

– 개복치 아닙니다. 예민 보스 아닙니다. 어떤 농담이든, 상대가 불쾌하면 이미 그 시점에서 그건 농담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송재림과 김소은이 마주 앉아 새우를 까먹는데, 송재림이 “나는 참 벗기는 거 잘하는 것 같아”라는 되도 않는 농담을 했다.

 

TV 예능+부부 콘셉트지만, 저 장면에서 김소은이 송재림에게 불쾌감을 표했다면 그건 망한(하면 안 될) 농담이다. 남 눈치 보고 다른 사람 의견에 기대기보다 나 자신에게 먼저 물어라. 못 받아들이겠다면, 그렇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가 아닌 단 한 사람과의 관계니까 그래야만 한다.

 

case 4. 내 편 안 들어주는 남친이 거슬려요

 

친구 B와 싸웠다. ‘연애 – 망함 – 나에게 감정 쏟아냄’ 테크트리를 반복하는 B에게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너의 연애를 되돌아보고 스스로 어땠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안다. 기분 나쁠 얘기일 수 있다는 거.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말 다 거짓말이라며 울부짖는 사람한테 ‘사실 네가 똥차 수집가 아냐?’라고 기름 붓는 격이라는 거.

 

근데 벌써 몇 년째 똑같이 위로하고 있다. 이제는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얘끼를 꺼냈다가 대판 싸웠다. B와 싸운 후, 빡친 마음을 남친에게 털어놨다. 근데 이 남자가 내 편을 안 들어 주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왜 남 일에 참견해서 긁어 부스럼 만드냐며 은근 친구 편을 들기까지 하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더 열 받는다.

 

– 물론 공감능력이 탁월한 남자도 세상에는 많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이다. 그런데 내 남자는 쿨몽둥이로 때리고 싶게 포청천 흉내를 내려고 한다. 세상의 많은 여인이 말한다. “의견을 내고 잘잘못을 따져 달라는 게 아니라, 내 말에 공감해주길 원해.” 남성들은 원활한 연애, 혹은 인간관계를 위해 저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설령 ‘공감’하지 못한다 해도, 일단 여자친구의 말을 고개 끄덕이며 들어라. 여친은 당신이 포청천, 솔로몬이길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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