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만화에서 이런 대사를 보았다. “찢어질 땐 찢어지더라고.” 그건 콘돔 얘기였다. 뭐, 맞는 말이긴 하다. 아무리 섬세하게 공기를 빼고 씌우고, 중간중간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도 일이 끝난 후에 보면 찢어지거나, 빠져서 유실(?)되기도 한다.

 

콘돔 바르게 쓰는 법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인터넷에서 충분한 찾을 수 있잖아? 오늘은 찢어지거나 사라져서 본연의 목적인 ‘피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게 ‘옳은지’ 말하려 한다.

 

1. 사태 파악 직후: ASAP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씌운 것 벗기고 바른 것 닦으려고 보니 콘돔이 찢어져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제대로 씌우지 않아 공기가 들어갔거나, 윤활유가 부족했거나 불량이라 애초에 결함이 있었는데 몰랐거나 등등.

 

임신의 공포를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여자는 대체로 패닉 상태가 될 확률이 높다. 지금은 다른 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물 마시고 소변을 본 뒤 샤워하고 곧장 응급피임약을 사러 출발하자. 두려움과 자괴감, 원망 등이 뒤섞여 순간 여자는 남자에게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에 발끈해 싸우려 들지 말자. 일단 이 일에 대처하는 것이 먼저니,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약을 먹고 난 다음에 충분히 이야기하자고 설득한 뒤 바로 집을 나서라.

 

응급피임약 복용은 게임으로 치면 타임어택이다. 빨리 복용할수록 피임확률도 높아진다. 72시간이 지나면 효과는 반 이하로 떨어진다. 한밤중이라고? 응급진료를 보는 병원(굳이 대학병원이 아니어도 괜찮다)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라. 가는 동안 여자 친구 손을 꼭 잡아주자.

 

응급진료를 보는 병원이 없다면, 병원 개원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수밖에 없다. 이때도 가급적 동행하기를 권한다. 여자 친구가 혼자 가겠다고 해도 한 두 번은 더 동행 의사를 물어보기를.

 

2. 응급피임약 구입하기: 함께’가 원칙이다

 

남자인 당신은 병원에 도착하면 접수대 근처에 앉아있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대개 산부인과로 갈 것이고, 여자는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병원을 찾은 목적과 마지막 생리일 등을 상담자에게 미리 말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울 것이다.

 

젊은 두 남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이 지긋한 여성도 있을 테지만, 대체로 누가 뭘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여자친구와 간단히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옆에 사람이 앉아 있다면 조금 민망할 수도 있으려나? 말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옆에 꼭 붙어 앉아 손이라도 잡아야 함이 마땅하다.

 

병원에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은 최악이지만, 절대 갈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게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땐 메시지 보내지 말고, 전화해라. ‘병원은 잘 다녀왔어? 약은 잘 먹었고? 혼자 겪게 해서 미안해. 이따가 보러 갈게.’라고 말하는 거다. 함께 만든 일인데 자신이 빠져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너를 걱정한다는 걸 어필해라.

 

여자친구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지 마라, 결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짝에 쓸모없다.

 

3. 약 복용 후 일주일: 멘탈 집중 케어

 

응급피임약은 경구피임약의 열 배에 달하는 고함량 호르몬이 들어있는 약이다. 설명서에 적힌 부작용 메시지는 사실 조금 겁난다. 그러나 예정에 없던 임신만큼 두렵진 않을 테니, 먹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약 복용 후 찾아올 수 있는 부정출혈이나 구토감, 복부팽만감 등은 여자를 한층 불안하게 만든다.

 

이 약을 한 번 먹는다고 영구적인 장애나 내성이 생기진 않는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여성을 힘들게 만드는 건 바로 ‘먹었음에도 피임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과 ‘이 고통은 왜 오롯이 혼자만 겪어야 하는가’ 같은 원망이다. 피임에 실패한 시점이 가임기라면 특히 불안은 높아진다.

 

남자친구라면 어느 때보다도 섬세하게 여자친구의 몸과 마음을 살펴야 한다. “약값도 내가 냈고, 약도 다 먹어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왜 자꾸 짜증 내?”같은 말이 입 밖에 나온다면 당신은 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탈락이다.

 

도저히 여자친구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입을 닫고, 평소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이나 (환자 병문안을 하듯) 꽃을 사 들고 찾아가서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다. 여러 번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고 부주의해서 미안해.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할게. 같이 더 잘하자.’ 정도는 확실히 전달하자.

 

4. 그 후, 2~3개월: 사랑한다면 공부해라

 

응급피임약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해 다행히 생리를 시작했다. 아프고 지긋지긋하던 생리 주기가 이렇게 반갑다니! 하지만 고함량 호르몬을 복용한 여성의 몸은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 일 없이 정상적으로 생리 주기가 돌아오면 다행이지만, 2, 3개월 정도는 주기가 들쑥날쑥하거나 부정출혈을 동반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남자들은 이것을 계기로 여자 친구의 생리 주기를 챙겨보는 것도 좋다. 연인이 섹스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말과 같으며, 서로의 몸과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다는 말과도 같다. 다시 찢어지는(…) 일이 없도록 좋은 콘돔도 수소문해보고, 윤활제를 구입하고, 다른 피임방법도 고민해보자.

 

앞으로 영원히 섹스하지 않을 게 아니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다. 남자들은 임신의 공포와, 여성들만이 겪는 그에 수반되는 일에 대해 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없는 일처럼 여겨도 되는 건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니까,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모르면 묻고, 공부하고, 노력했다는 티를 내라. 평생 2D 연애만 할 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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