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현실적인 고민이 있다. 연애를 하고 싶다. 너무 한심해서 어디 가서 말하기도 뭐한 고민이다. 잡지사 기자로 몇 년간 일하면서 수많은 독자의 연애상담을 해줬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변한 것 같아요.” / “기념일에 여자 친구에게 어떤 선물을 해주면 좋을까요?”

 

그간 이런 뻔한 질문에 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 역시 연애를 글로 배운 사람이니까. 하… 수학 선생님이 학습지를 못 푸는 상황이 발생하다니. 늘 그렇듯 남 연애는 참 쉽다.

 


– 주변의 사람들에게 소개팅을 받아보세요.
–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세요.
– 용기를 내서 먼저 번호를 물어보세요.
– 그것이 어렵다면 SNS를 통해서 마음을 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진심이 전해진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이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곤 했다. 옆 동네 구멍가게 할머니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말로는 누가 못하나. 연애가 어려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모든 상황이 공식처럼 딱딱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1. 소개팅으로 잘 될 수 있을까요?

주변 사람에게 소개팅을 요청한다. 그쪽에서 스펙을 물어본다. 직업과 나이는 적당하게 둘러대고 키는 살짝 2cm 정도 늘려서 알려준다. 사진을 요구한다. 적당하게 뽀샤시한 사진을 보낸다. 까인다. 실망한다. 외모지상주의라며 욕한다. 다시는 소개팅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다음날 또 소개팅해달라고 조른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 그렇게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결국 소개팅 자리가 생긴다.

 

“만나기 전에 카톡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건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소개팅을 앞둔 이들에게 제일 먼저 해주는 말이다. 만날 장소와 시간만 정하고 호구조사는 만나서 하기로 한다. 장소는 너무 번화한 곳은 피한다. 조용하고 감성이 묻어나는 곳이 좋다. 이를테면 홍대가 아닌 상수동이라던가 가로수길이 아닌 세로수길 정도가 좋겠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라고는 묻지만, 그녀의 취향을 고려하여 양식, 한식, 브런치 등으로 가볼 만한 곳 두 곳 정도를 검색해둔다. 내친김에 식당 근처의 분위기 좋은 카페까지.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야 옳다.

 

소개팅 자리는 부담감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좋아해줘> 中)

 

소개팅 자리는 부담 없이 풀어간다. 먼저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아, 정말요? 여행을 좋아하신다면 파리도 가보셨어요?”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내 경험담+다시 질문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간다.식사는 가볍게 하고 미리 검색해 둔 분위기 좋은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카페 배경음악으로 ‘멜론 TOP100’이 나오지 않는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이제야 가족관계나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최근에 근황도 묻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언제가 가장 행복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최신가요가 나오지 않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 이제야 속깊은 얘기를 꺼낸다. 최근의 근황도 묻는다.

 

“홍제동이 그렇게 분위기가 좋대요. 나중에 같이 가요” 자연스럽게 다음 만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렇게 두 시간이 후딱 갔다.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헤어지고 집에 가면서 카톡을 남긴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정말 오랜만에 풍성한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아요.” 그녀도 그렇다고 답장이 온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다음에 또 만나자는 카톡을 보냈다. 그녀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에 만날 날짜까지 잡았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약속 시간이 다 돼서야 “몸이 안 좋아서 못 나갈 것 같다. 미안하다”는 짧은 카톡이 왔다. 몸은 괜찮은지, 어떻게 약은 먹었는지 카톡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낸 카톡은 4일이 지난 지금도 1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소개팅녀와의 실제 카톡

 

2. 사람을 많이 만나면 기회가 찾아올까요?

‘집돌이’에게 늘 해주는 조언이 있다. “우선, 사람을 많이 만나세요. 집 밖으로 나가면 기회는 더 많아집니다.” 에디터 역시 집돌이다. 회사 말고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아서 약속도 집 근처에서만 잡는 소라게형 인간. 이 습성을 버려야 한다.

 

집 밖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먼저 주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평일에 저녁 약속을 잡기도 하고 “언제 한번 밥이나 한 끼 하자!”라는 말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약속을 잡았다.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친구들끼리 모이는 자리에서 우연하게 눈이 맞아 커플이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나는 왜 그런 자리가 안 생기는 걸까. 하나같이 친구들은 나와 단 둘이 보는 것을 선호했다. 아는 친구를 부른다거나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만드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끈끈해서 탈이었다.

 

동성 친구가 너무 많아도 문제다(영화 <글로리데이> 中)

 

그 무렵 작은 동호회 활동도 시작했다. 사람 만나는 덴 작은 소모임이 최고다. 알고 있는 지식대로라면 이미 카사노바가 됐어야 하는데 이상하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러닝을 했다. 우리 크루는 30명 정도 모여서 달린다. 관심사가 비슷하니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다.

 

러닝이 끝나고는 치킨에 맥주를 먹거나 커피를 마셨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속 얘기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라이프 스타일은 점점 긍정적으로 변했다. 자연스럽게 대회에도 출전하게 되었고 점점 다른 러닝 동호회 사람들까지 친해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에 지금도 놀라곤 한다. 난 아주 건강하고 라이프 스타일이 확실한 솔로가 되어 있었다.

 

3. 용기를 내서 번호를 물어보세요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천 년은 족히 넘었을 진부한 명언이다. “용기내서 마음을 고백해보세요.”, “남자는 자신감입니다.” 좋아하는 이성을 두고 전전긍긍하는 이들에게 처방해주는 만병통치약이다.

 

우리 주변에 괜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거리에만 나가도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들이 가로수보다 많다. 문제는 자신감이다. ‘어차피 다시 볼 사이 아닌데’ 라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심장에서 내뿜는 피는 배가 된다. 손바닥은 기저귀라도 차고 싶을 정도로 땀범벅이 된다.

 

번호를 묻는 게 많이 실례되는 일일까? (영화 <좋아해줘> 中)

 

얼마 전에 파주 헤이리에 다녀왔다. 희희낙락대는 커플들 사이를 비집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 두 잔에 15000원이나 하는 커피를 시켰다. 허세인 줄 알지만, 그날만큼은 돈을 쓰기로 했다. 그러던 중 저쪽 테이블에 있는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짧은 단발에 청바지에 운동화, 수수한 여성이었다. 보급형 아이유 느낌. 옷차림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풍기는 아우라에서 기품이 느껴 졌다. 자린고비가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굴비처럼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를 쳐다보고를 반복했다. 아마 그녀도 느꼈으리라. 곧 그녀가 나갈 채비를 했다. 그렇게 그녀의 퇴장을 하염없이 바라만 봤다.

 

시험시간 1분 전에 답안지 마킹을 틀린 것처럼 초조해졌다. 심장 소리가 고막을 사정없이 휘갈겼다. ‘용기를 내자’ 조급해 보이면 안 된다. 반박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날티가 나서는 안 된다.

 

최대한 정중하게 “안녕하세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시 대화가 가능할까요? 아까 카페에서부터 눈에 띄셔서 이렇게 용기 내어 왔습니다.” 어렵게 운을 뗐다. 그녀가 미소를 짓는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휴대폰 번호를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이 정도면 예의범절이 청학동 고등교육 수준이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저 결혼 했는데요.” 하…. 이런 대답에 대한 대처법은 고대 문헌에서도 본 적이 없다. 매몰차게 까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난 최선을 다했다. 한 가정의 행복을 지켰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집으로 왔다.

 

 

4. SNS로 진심이 통할까요?

영화 <좋아해줘>는 SNS상에서 ‘좋아요’를 누르다가 정말 좋아진 세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깟 따봉을 서로 눌러준다고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도 SNS로 애인을 사귀었다는 사례를 심심찮게 듣곤 했다. 물론 “찔러보는 식의 가벼운 메시지가 너무 많이 온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여성들을 훨씬 많이 봤다.

 

에디터도 SNS를 하는지라 종종 눈팅을 하곤 한다. 그렇게 구경하다 보면 간혹 나와 ‘#감성’이 맞는 이에게 잠시 멈춘다. 외모, 스타일, 사진을 찍는 감성, 라이프스타일, 무엇보다 적은 글귀가 윤동주의 시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 사진이 좋고 감성이 맞으니 자동으로 ‘좋아요’에 손이 간다.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렇게 용기 내 쪽지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아무리 익명성의 세계라지만 버젓이 내 사진이 올라가 있고 학교, 직업, 사는 지역까지 노출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체 문자 보내듯 아무에게나 추파를 던질 수는 없다. 한 자 한 자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조심스럽게 마음을 적어 쪽지를 발송했다.

 

지극히 경험상의 이야기지만 SNS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건 뭐 어떤 공식도 통하지 않는다. 결국은 ‘완얼’이기 때문이다. 내 얼굴은 어떻게 코치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렵사리 보낸 쪽지는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역시 그렇다. SNS는 인생의 낭비다. 우선순위 영단어나 외워야지.

 

‘ㅇㅇ’ 라도 보내주던가

 

5.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많습니다

가장 싫어하는 속담 중 하나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다. 물론 넘어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철저하게 나무 얘기다. 사람이 나무는 아니잖은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안 되는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접고 다른 숲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용기’다. 나무꾼에 소질이 없다면 일찌감치 호미질이라도 하던가. 결국, 이 칼럼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연애에 공식이란 없다’란 얘기다. 연애 칼럼을 보든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든 그건 참고만 했으면 좋겠다. 분명 본인에게 잘 맞는 연애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문장조차 누구한테 썼던 것 같다. 이 상황에도 말은 청산유수처럼 나온다. 정작 나도 어떻게 연애를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 말이다. 이러다 정말 혼자 사는 건 아니겠지? 다 적고 글을 다시 한 번 훑어보니 아무 데나 찌르고 다니는 한심한 한량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마지막으로 위의 에피소드는 30년을 살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풀어놓았을 뿐이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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